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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1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0- 거제도2

2023년 4월 22일 토요일


 친구들이랑 수다를 떠느라 오전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서 떠들고 있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다. 다른 방에서는 6시도   시간부터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친구들의 대화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있으니 8시쯤 친구들이 깨우러 왔다. 9시에 조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며 빨리 일어나 준비를 하라고 한다. 비몽사몽  채로 일어나서 보니  명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심지어 아침에 혼자 노천탕까지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열정에 박수를 쳤다. 역시 평범한 인간들은 아닌  같다.


 조식으로는 간단하게 오니기리와 미소된장국이 나왔다. 남김없이 야무지게 먹고 다시 올라와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외출을 하려고 화장을 하고 있으면 꼭 누군가는 옆에서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조잘거리면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각자 짐을 잘 챙겼는지 확인을 하고 나서 거제 식물원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어제 각자 퇴근을 하고 거제로 바로 모여서 그런지 자동차만 4대가 움직였다. 지금 이 기분에 맞는 선곡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식물원에 도착을 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익숙한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어딜 가더라도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존재감이 장난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매표소 앞에 6명이 모여서 다른 친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모이자마자 몇 년은 떨어져 있던 것 마냥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낯선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와 표를 건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찰나에 친구가 감사하다며 일단 티켓을 넙죽 받아 들었다.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그 옆에서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아저씨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라며 농담을 했다. 그 말을 듣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니 아저씨의 일행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젊은 사람들 그만 귀찮게 하고 표만 곱게 주고 오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깜짝 선물을 남기고 봄날의 산타 아저씨는 떠나갔다.  


 표를 확인하니 6명 입장권이었다. 구매를 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구경을 못하니 환불을 할까 하다가 우리가 6명이라서 그냥 주는 거라고 했는데 정말 행운이었다. 입장권 3개만 구매를 하면 되니 모두들 즐거워하며 표를 아낀 돈으로 어떤 걸 먹으러 갈지 고민했다.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드디어 3명이 왔다. 알고 보니 다른 길로 잘못 가서 돌아서 오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다음 일정이 없어서 느긋하게 움직여도 괜찮다는 분위기였고 느긋하게 입장권을 구매하고 나서 식물원으로 입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단체 관광객처럼 모여서 사진을 찍고 계속 찍어댔다. 확실히 식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온 것 같다.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최대한 예쁜 척을 하며 휴대폰 저장공간을 줄여나갔다. 걷다 보니 식물원 안은 굉장히 더워서인지 이탈자가 생겨났다. 몇 명은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하지만 또 끝까지 남아서 찍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이왕 온 김에 빠짐없이 구경하고 사진도 남겼다. 그렇게 식물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밖으로 나와서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었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부탁을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마치 수학여행 사진 같다며 다들 웃어댔다. 점심으로는 냉면을 먹자며 식당을 정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만나자며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친구 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차피 몇 분 뒤에 볼 건데 도대체 왜 헤어지는 것처럼 인사를 하냐면서 이 상황을 황당해하면서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섰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서 나눠서 앉아야 했다. 물냉면을 시킬지 비빔냉면을 시킬지 아직 고민하고 있었는데 종업원이 다가왔다. 친구 하나가 대표로 아직 결정을 못했다며 정리하고 말해주겠다고 하니 종업원은 결정하면 불러달라며 흔쾌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친구는 먹고 싶은 메뉴룰 말하면 손을 들라고 했는데 만장일치로 물냉면으로 결정됐다. 그렇게 무사히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도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운 마음에 카페에 들렀다가 헤어지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또다시 4대의 차량은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는 입구부터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고 발 빠른 친구들은 이미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문을 한 뒤 따로 흩어져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지하로 내려갔다.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보이지는 않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니 친구들이 있었다. 어제 친구가 한 말이 뭔지 알겠다며 제일 시끄러운 곳을 찾아서 왔다고 하니 친구 하나가  부끄러우니깐 제발 조용히 하라며 애들에게 손짓을 했다. 여기는 한 명이 말을 하면 여덟 명이 반응을 한다며 심지어 목소리까지 크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그다음 여행지는 어딘지, 드레스코드는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의견이 모이지가 않았다. 9명이니 무얼 입어도 단체복처럼 보일 것 같다며 고민을 했다. 결국은 그냥 우리 스타일대로 오합지졸처럼 각자 개성에 맞게 입자는 결론이 나왔다. 내 친구들이지만 9명을 보고 있자면 단 하나도 비슷한 점이 없다. 각자만의 개성이 넘친다. 이렇듯 서로가 너무 다른데 어떻게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들 우스갯소리로 자기들은 친구가 우리밖에 없으니깐 여기서 사이가 멀어지면 안 된다며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다른 친구가 없으니 자기들 결혼식에는 무조건 참석을 해야 한다며 장난을 쳤다.


 내 친구들은 다들 해맑은 것 같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서로 배려를 한다. 우리의 성격은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면 자신의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제일 나태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 누구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고등학생 때부터 봐왔던 바로는 절대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는 애들이 아니었다. 가만 보면 어디 가서 일을 잘하면 잘했지 못한다는 소리도 안 듣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야 10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그저 함께 놀면서 유치한 모습을 보일 뿐 사회에서는 구성원의 하나로 멀쩡하게 생활을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남들 사는 것도 다 똑같지 않을까 싶다. 진정으로 내 모습을 인정해 주는 사람과 있을 때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있다가 일상생활을 할 때면 다시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쓴다. 나의 민낯을 보더라도 그걸 약점 잡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내가 가진 원래 모습을 오롯이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위로가 아닐까. 나에게는 친구를 만나는 이 시간이 제일 힐링이 되는 순간인 듯하다. 살면서 진정한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여러 명이 내 곁에 존재한다. 내 인생은 친구들 덕분에 반은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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