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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1 -평온한 하루

2023년 4월 23일 일요일


 오늘은 아무것도  하는 날이다. 병원에서의 습관 덕분인지 알람 없이도 아침에 일어나는  힘들지 않았다.  시인지 확인하려고 폰을 켜보니 카톡 알림으로 가득 쌓여있다. 카톡을 열어보니 친구들이 어제 찍은 사진들을 보내놓았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천장을 가뿐히 넘겼고 슬슬 휴대폰 용량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누워서 어제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재밌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가 하는 것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었다. 어딜 가든 나를 따라다녔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옆에서 감시하고 있다.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정체는 바로 우리 집 터줏대감인 고양이 ‘동글이’이었다.  


 요즘 동글이는 엄마가 요 근래 면회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워서인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지금 둘째가 아픈 바람에 우리 집 막내인 동글이랑 놀아주는 사람들은 없고 혼자 남겨둘 때가 많았다. 엄마는 집 밖을 나서면 동글이 걱정을 집 안에 있으면 아들 걱정을 해야 했다.


 그래도 정을 한시름   있었던  며칠간 집을 비워둬야  때면 할머니가 집에 들러서 동글이의 밥을 챙겨주고 배변 모래를 갈아주었다. 그럴 때마다 동글이는 자신챙겨주러  할머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원래라면 사람을 오히려 무서워해서 숨어 다녔던 아이였는데 요즘에는 사람이 오면  옆에 찰싹 붙어있다.


 그래서 때 아니게 나를 귀찮게 하는 털뭉탱이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가 어딜 가든 추격자처럼 쫓아왔고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 내보내기를 반복했다. 글을 쓸 때면 옆에 와서 괜히 치근덕거리거나 누워있는 내 배 위로 올라와서는 앉아 있었다. 옆에 와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자기를 혼자 두고 어딜 갔다 왔냐며 서럽게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사람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에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 옆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부드러운 고양이 털을 매만지는 이 평온함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지루하다고 생각했을 이 시간이 오늘따라 소중하게 느껴졌다.


 모처럼 집에서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삼촌한테 연락이 왔다. 할머니 생신을 미리 앞당겨서 오늘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어차피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됐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한다고 하니 안 나갈 이유가 없었다. 오늘 하루종일 집에만 있을 예정이었기에 씻지도 않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있어서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재빠르게 씻고 나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분명 며칠 전에 만났는데도 몇 달 동안 못 본 사람처럼 반가워했다. 가족들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가자며 나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한우는 어떴냐는 삼촌의 말에 냉큼 좋다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음식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동생이 다친 이후에는 기념일이 있어도 다 같이 만나기가 힘들었다. 만나더라도 화두가 되는 건 동생 상황뿐이었다. 할머니는 한우를 먹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밥도 못 먹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며 속상해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지금 우리는 예전처럼 서로 함께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때는 근심 걱정으로 얼룩진 일상이 아니라 웃을 일만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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