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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May 2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82 -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오늘 하루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제는 집에만 있었으니 한 번쯤은 외출을 해줘야 한다. 엄마차가 주차장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딱히 뭘 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어서 나온 건 아니라 차 안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당일치기로 멀리 여행이라도 가버릴까 생각을 했지만 집과 가까운 송정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는 자동차 안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어디론가 가는 게 더 즐겁다. 그래서 굳이 빨리 달리지 않고 도로 위에서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급한 일이 없었기에 나를 멈추게 하는 빨간 신호등마저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은 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좋을 뿐이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흠칫했다. 이왕이면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고 싶어서 서성거리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고 나는 3층으로 향했다. 남은 자리 중 그나마 편해 보이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내가 앉은자리에서도 바다가 보여서 만족할 수 있었다.  


 바다를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 밀린 글을 쓰면서 일과를 되돌아보았다. 원래라면 혼자보단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좋아했고 혼자 있으면 문득 외로움이 몰려왔는데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혼자라서 생각정리도 할 수 있고 마음이 평온했다. 세상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거라지만 때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제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여행객들이 많았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 포함 한, 두 명 정도였다. 처음에는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게 낯설었다. 괜히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게 되고 남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주눅이 들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한테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게 상관이 없게 되었다. 뭔가 스스로 옭아 매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 자유를 억압하고 개성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혼자서 무언가를 하다 보면 내면의 단단함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카페에서 고요한 시간을 즐기다가 기장에 있는 칼국수집을 갔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직원이  명인지 물어보길래 혼자 왔다고 하니 당황하는 듯해 보였다. 주문은 2인분부터 가능했고 포장도 2인분부터라고 설명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먹고 가기로 했다. 직원한테 양이 엄청 많은지를 물어보니 그냥  사람이 먹을 정도라며   먹겠으면 남겨도 된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양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아서 일단 2인분을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역시나 여기도 식당에 홀로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직원은 다시 한번 다 못 먹겠으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을 하며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그런데 내 위장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컸다. 칼국수에 샤브샤브, 볶음밥까지 그 모든 걸 말끔하게 해치웠다. 너무 많이 남기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는데 먹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아서 다 먹었다. 물론 볶음밥까지 시킬 때는 직원이 살짝 놀란 눈치였기는 했다. 때 아니게 내 위의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은 나 자신을 대견해하면서 식당 밖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서 임랑 해수욕장을 한번 들려 해변가를 걷는데 너무 추워서 다시 차를 탔다. 바다 구경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역시 밖보다는 차 안에서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다. 오랜만에 익숙한 도로를 달리니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집에서 지낼 때가 떠올랐다. 3년 전에는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녔던 나만의 자동차가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을 달렸다. 동생은 제대를 앞두고 있었고 엄마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별 걱정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어떻게 먹고살지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살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은 사라졌고 일상의 소소한 걱정들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알고 보니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직장을 바꾸고 싶다는 고민 자체가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었으니깐 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은 알고 있을까. 월요일에 출근을 한다고 울적해하고, 월급이 적다며 투정을 부리는 그 모습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되찾고 싶은 평범한 일상이다. 정말 돈이 부족해서 못 살아갈 정도였다면 돈을 버느라 투정 부릴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돈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일 기본적인 건강이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고의 자산은 건강이라는 진부한 말이 있다. 나도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돈이 없는데 건강하기만 해서 뭐해라는 생각을 했다. 건강하다고 해서 돈이 자동으로 벌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무시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너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번에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건강은 돈을 벌어다 주는 기본적인 요건이 된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고 적어도 병원비로 수천만 원을 날리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모든 인간은 건강이든 사랑이든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리고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듣고 흘려버리는 이야기들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병원 계단에는 모든 자유는 건강에서부터 온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제는 그 의미가 이번 경험을 통해서 뼈로 새겨져 버렸다. 앞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또다시 안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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