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운동화
버스정류장에서 마주한 풍경
버스정류장 긴 의자에 저녁 빛이 따뜻하면서도 묵직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각자의 사정을 품은 듯 바쁘게 지나간다.
나는 그저 무심히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문득 시선이 사람들의 발끝에 머문다.
옆에 앉은 할머니의 발에는 선명한 빨간 운동화,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파란 운동화를 신은 할아버지가 있다.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보였지만,
빨강과 파랑이 나란히 놓인 풍경은 한 장의 그림처럼 내 눈에 오래 남았다.
그 조합이 어쩐지 묘하게 아름다웠다.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예쁘다!’
늘 무난한 길만 골랐던 나
돌아보면 나는 늘 무난한 길을 걸어왔다.
마음이 끌리는 색이 있어도, 막상 고를 때면 주저했다.
“혹시 나만 너무 눈에 띄는 건 아닐까. 괜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라 결국 차분한 색을 집어 들곤 했다.
덕분에 내 옷장과 신발장에는 베이지, 검정, 회색, 흰색만 줄지어 있다.
안정감은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가두는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색을 고르지 못한 채, 남들이 보기에 무난한 선택만 이어가는 일.
그게 안전해 보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빨강과 파랑에 담긴 삶의 철학
하지만 그날의 두 노인은 달랐다.
할머니의 빨강, 할아버지의 파랑.
그 색깔은 단순히 화려한 신발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색을 당당히 신고 있는 용기.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철학처럼 보였다.
진짜 중요한 건 나를 기억하는 것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얌전하게 살아도,
결국 아무도 나를 오래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고르는 용기,
내 행복을 먼저 챙기겠다는 결심.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반짝이게 하는 힘 아닐까.
삶을 물들이는 발걸음
빨강과 파랑으로 빛나는 두 발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는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돼.
남은 시간은 네 방식대로 물들여도 괜찮아.”
그건 단순한 신발의 색이 아니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었고,
앞으로의 날들을 더 선명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
오래 남는 그림처럼
버스를 기다리며 스쳐 지나간 짧은 장면이었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그림을 품고 있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다.
누가 기억해주지 않아도 괜찮은 삶.
그러나 나 스스로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는 삶.
좋아하는 색을 고르고, 그 색으로 내 하루를 덧칠하는 삶.
언젠가 내 발끝에도, 나만의 색이 선명히 남기를 바란다.
그 색이 내 하루를 지탱해 주고,
내 마음을 환히 밝혀주기를.
그리고 그 발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오늘 내가 본 빨강과 파랑처럼,
조용히 오래 남는 그림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