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인형이 알려준 관계의 진실
우리 딸의 침대 위에는 애착인형들이 열 개쯤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넘버원은 품에 쏙 안기는 50cm 길이의 누워 있는 오리 인형이다. 딸은 가끔 나에게 섭섭함을 표현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역시 믿을 건 오리 인형밖에 없어.”
딸과 나는 그녀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 빔프로젝터로 만화 영화를 즐겨본다. 디즈니와 지브리 작품을 하나씩 정복해 보자며 기회가 될 때마다 골라서 보고 있다.
그날 딸이 선택한 작품은 토이 스토리.
장난감의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정과 질투, 모험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카우보이 인형 우디, 그리고 그 자리를 위협하는 신출내기 우주영웅 버즈. 아이의 상상력 속 세계를 촘촘히 펼쳐 보이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딸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하루가 잠든 사이에 인형들이 ‘내가 더 사랑받아!’ 하면서 싸울지도 몰라.”
그러자 딸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오리 인형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선언했다.
“네가 1등, 네가 2등, 네가 3등이야.”
서열 정리를 완벽하게 끝내고는 아무 걱정 없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의 다섯 살 딸은 원래 애착인형이던 ‘코코’라는 코끼리 인형 대신 새로운 인형을 ‘지명’해서 외출 동반자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순간,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정교한 관계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는지 새삼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인형과의 관계에서 통제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판타지를 토이 스토리 같은 작품이 놀라울 만큼 잘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나 역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른인 나도 관계에서 통제감을 원한다.
남편이 내 곁에 머물러 주길 바라고, 내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나를 지지해 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일종의 통제감일 것이다.
물론 이런 통제감은 영구적이지 않고,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가변적인 것, 어쩌면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신뢰와 믿음은 분명 나에게 쉼터이자 안식처다.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의사가 없는 인형과의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는 안전하다’는 위안을 만든다.
어른인 우리는 마음속을 온전히 알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불확실함을 견디며 믿음이라는 고리와 쉼터를 함께 만들어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크기와 모양만 다른 애착 인형을 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