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통해 과거를 다시 쓰는 이야기, 코코”
딸과 함께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을 배경으로, 그 축제 속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을 아름답게 그린 이야기다.
영화 속 세계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
죽은 자들은 1년에 단 하루, 죽은 자들의 날에만 살아있는 이들의 세계로 건너올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조건이 있다. 살아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사진을 올려 추모할 때에만 입국이 허용된다는 것.
그리고 더 슬픈 규칙이 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그 영혼은 그곳에서도 사라지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이 설정이 이 스토리의 핵심 배경이다.
나는 이 세계관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존재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옆에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딸은 학교에 있어 내 곁에 없지만, 나는 그녀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기억과 관계, 마음의 자리는 신체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좋아한다.
그런데 <겨울왕국>의 엘사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식과 <코코>의 미구엘이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그 대비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엘사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고립과 외로움을 견디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반면 미구엘은 가족과 관계의 역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정체성을 찾아간다. 가족이 지닌 서사를 다시 쓰고, 관계를 회복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한다.
즉, 그의 정체성 발견은 고립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과 재구성을 통해 이뤄진다.
관계적 자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코코>는 그래서 더 아름답고 깊게 다가왔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날이 없어도, 마음속에서 언제든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재구성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꼭 나만의 과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보며 회복과 화해,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나의 아버지는 벌써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함께한 추억도 많지 않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와 그리 친밀하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늘 무뚝뚝했고, 일에만 몰두하는 워커홀릭이었으며, 어쩐지 가정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떠돌며 지냈다는 아버지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분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였을지 상상하게 된다.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없을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버티고, 자라고, 독립해 가정을 이루기까지… 그 모든 과정은 단순히 ‘무뚝뚝한 가장’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싸움을 묵묵히 감당해 낸 한 인간의 고군분투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삶을 다시 상상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오래 묵은 감정들이 조금씩 풀리며 작은 화해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 끈질긴 생존력으로 버티며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딸인 나 역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결국 살아낼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조용히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