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에 관한 임상적 사유

몸의 연준: 통증은 예측 모델이 무너질 때 울리는 경고음이다

by Intimate distance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고정된 몸의 사용 패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신체에는 자연스럽게 다소 약한 부분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근육은 신경근 협응을 통해 이러한 불안정성을 보상한다.


예를 들면,

약해진 근육과 비슷한 움직임을 만드는 다른 근육이 평소보다 더 일을 한다든지,

약해진 관절 주변의 인대들이 섬유조직을 두껍게 만들어 고정성을 높인다든지,

혹은 틀어진 골반에 맞추어 보행 패턴을 바꾸는 식이다.


이러한 모든 보상 과정은 결국 뇌의 예측 모델을 기반으로 일어난다.

이는 시장의 통화량을 예상하고 금리를 조절하는 연준(Fed)의 메커니즘과 닮아 있다.

뇌 역시 불균형이 커지지 않도록 미세하게 조절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예측치와 다르게 시장이 갑자기 폭락하면 연준이 개입을 하듯,

몸도 예측 모델과 실제 신체 반응이 크게 어긋나는 순간

경고 신호를 보낸다.

그 경고음이 바로 통증이다.


평소 약간의 변동성은 시장의 자율 안정성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연준은 특별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상의 폭락으로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순간

즉각적인 개입이 이루어진다.


우리 몸도 동일하다.

일상적으로 감당 가능한 허용 변동성의 범위가 있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몸은 통증이라는 경보음을 울린다.

그리고 이 허용 범위의 상한선을 우리는 역치(threshold)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보상과 예측의 실패가 일어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이 이 내부 사건을 스토리로 중계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시스템에서 이미 결론이 난 “위험 신호”는

의식의 영역에서는 “왜 아프지?”,

“디스크가 터진 걸까?”와 같은

내러티브로 번역되어 나타난다.

의식은 바로 이 ‘내적 사건의 해설자’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스토리텔링이

통증 자체를 학습시키고 강화하는 기전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해석과 서사는 다시 뇌의 예측 모델에 입력되어

“이 상황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화한다.

그 결과 역치가 더 낮아지고,

작은 자극에도 통증이 더 쉽게 발생하는

통증 민감화(sensitization)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걸을 때 골반이 아프다”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 믿음은 다시 걷는 상황을 위험하다고 예측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예측은 실제로

말초 신경의 역치를 낮추고,

척수에서 통증 신호가 더 쉽게 증폭되게 하며,

뇌의 통증 회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신경계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


이렇게 “걸으면 아프다”라는 믿음은

점차 강력한 통증 예측 모델로 굳어지고

마침내 작은 움직임에도 큰 통증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완성된다.


내가 이러한 환자들에게 시행하는 치료는

과도하게 민감해진 통증 시스템의 증폭을 낮추는 것이다.

약물 치료나 신경 차단술은

말초와 척수 수준에서 통증 신호의 과잉 전달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는 치료가 있다.

바로 기능적 근육 내 자극술이다.

이 치료의 흥미로운 점은

평소 통증보다 강렬하지만 순간적인 자극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것이다.

이 강한 자극은 두 가지 효과를 노린다.

첫째, 낮아진 역치(threshold)를 다시 끌어올리는 재설정(reset) 효과.

둘째, 반복적으로 강화되어 고착된 통증 예측 모델을 깨트리는 교란 신호

즉, 뇌가 “이 상황에서는 분명히 아플 것이다 “라고 이미 학습해 버린 예측 모델 위에

예상치 못한 강한 감각 자극을 던져 넣음으로써

뇌가 고정화된 통증의 내러티브를 다시 학습하도록(리맵핑) 유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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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통증의 치료는 통증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통증을 만들도록 학습된 뇌의 기대 모델을 다시 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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