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바랑’이 있을 뿐, 내가 작아진 건 아니다.

by 어니스트 정

출근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몸이 조금 먼저 알아차릴 때가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겠구나.


커피는 아직 뜨겁고,

메신저 알림은 벌써 두 개쯤 쌓여 있고,

‘회의’라는 단어가 붙은 일정이 캘린더에 박혀 있다.


그때부터 하루는 슬쩍 전투가 된다.

피를 흘리는 전투는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씩 마른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에는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두 존재가 부딪히는 장면들이 나온다.


한쪽은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밀어붙이고,

다른 한쪽은 그 힘에 끌려가지 않으려 애쓴다.


세부를 말하면 재미가 반쯤 날아가니 여기까지만.

다만 그 대립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건 먼 행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무실 이야기라는 쪽에 가깝다고.


직장에도 ‘바랑’은 있다.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숫자일 때도 있고,

분위기일 때도 있고,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투일 때도 있다.


큰소리로 밀어붙이는 상사,

책임을 아래로 굴리는 구조,

질문을 무례로 취급하는 팀의 공기.


이것들이 무서운 이유는

힘이 세서가 아니라,


내가 갑자기 작아지는 느낌을

너무 빠르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실제 힘’보다

비교에서 오는 체감에 더 민감하다.


상대는 권한이 있고

나는 평가를 받는 쪽이면,


상황은 자동으로

“나는 약자”로 정렬된다.


그 순간부터

말 한마디는 뼈처럼 느껴지고,

이메일 한 줄은 판결문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라기보다

해석의 자동완성에 가깝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건

이기는 방식이었다.


더 세게 맞서는 것도 아니고,

더 큰 무기를 드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의 문법에 말려들지 않는 쪽이

힘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이걸 직장으로 옮기면 이렇게 바뀐다.


“저 사람이 날 흔든다”는 느낌이 들 때,

사실 흔들리는 건

내 전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붙잡고 있는

어떤 한 조각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부족한가?”

“내가 틀렸나?”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달라져야 하나?”


이 질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마음은 그걸 ‘전부’로 착각한다.


그래서 도움이 되는 건

아주 작은 분리다.


“저 사람이 무섭다”가 아니라

“저 사람의 방식이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무능하다”가 아니라

“지금 요구가 과도하고 기준이 흐리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가 아니라

“내 몸이 위협을 감지해 방어 중이다.”


이 문장들이 답은 아니지만,

나와 상황 사이에

한 칸의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 거리만 있어도

바랑의 목소리는

‘절대적인 진실’에서

‘시끄러운 소리’ 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이동이

생각보다 큰 숨통이 된다.


바랑은 때로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의 버튼을 누른다.


무시당하는 느낌,

통제받는 감각,

사람들 앞에서 틀리는 두려움.


그래서 어떤 날은

상사의 말보다

내 반응이 훨씬 크다.


말은 한 문장인데,

내 속에서는 십 년치가 재생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더 단단해져야지”가 아니라,

아주 조용한 인정이다.


아,

내가 이 버튼에 약하구나.


이건 굴복이 아니라

지도 펼치기에 가깝다.


그럼에도 남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나는 뭘 붙잡아야 할까.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최소한으로 지키고 싶은 태도다.


말이 거칠어도

사실을 확인하고 말하는 것.


흔들려도

내가 한 일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실수해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수습하는 것.


속도가 느려져도

나를 모욕하지 않는 것.


이건 성공 전략이 아니라

자기 존엄의 최소 단위에 가깝다.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회사에서는 종종

그렇게 굴어온다.


그래서 이 최소 단위를

지키는 사람이 오래 간다.


어떤 날은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꺾이지는 않는다.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

승리의 모습일 때가 많다.


크게 흔들어놓았는데도

내가 그대로 있으면,

그 힘은 갈 곳을 잃는다.


불꽃은

바람이 있어야

더 세게 타오르니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을

지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더 노력해”가 아니라,


“지금 마음이

자동으로 작아지고 있구나”라는

한 문장일지 모른다.


그 알아차림 하나가

하루를

조금 덜 태우는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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