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글 쓰기
일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15층 아저씨가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계신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린다. 이번에는 7층 아저씨가 녹색 일반 쓰레기봉투를 들고 타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쓰레기를 들고 집 밖을 나선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계시긴 했겠지만 두 아저씨처럼 일요일 아침에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남성상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나오는데 스피커에서 캐럴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차 시동을 걸고 멜론을 켜 크리스마스 캐럴을 검색한다. 크리스마스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매년 내 마음속에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는 어떤 크리스마스가 될까? 그 감성을 붙잡고 싶어서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캐럴을 듣는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따뜻하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순간들이다. 엘리베이터 안 아저씨들은 그저 이웃일 뿐이고, 주차장 캐럴은 단순한 배경음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내 눈이 일상에 관심을 가졌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켠다. 오늘 본 것들, 느낀 것들을 몇 줄 적는다. 쓰다 보니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어느새 한 페이지가 채워진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하루를 다시 산다. 그냥 흘려보낼 뻔한 순간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글쓰기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삶을 관찰하고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어찌할 바를 몰라 숨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기록하고 그 상황을 들여다본다. 직장 동료가 ‘아이가 자주 아파 두렵다는 이야기’가 왜 공감이 되었는지. ‘은따 같았던 퇴근 10분 전 상황’이 혼자 펼친 상상의 나래였는지. ‘아이가 화를 내자 같이 화를 낸 이유’가 퇴근 전 상황 때문인지 들여다본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내일 걱정, 다음 주 일정, 해야 할 일들에 쫓기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은 나를 멈추게 했다. 잠깐, 지금 이게 뭐지? 이 순간 내 마음은 어떤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내 삶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여전히 바쁘고 때로는 힘들지만,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내 삶에 녹색불, 빨간불이 켜질 때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며 내 삶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 오늘의 한 줄이 내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