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의 시간

by 어니스트 정

“첫 교정 파일이 도착했습니다”


한글 파일을 열자마자 빨간색 메모가 가득했다. 내심 ‘내 글만큼은 빨간 메모가 없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독서 모임을 이끌어왔고,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은근히 기대했다. 게다가 다른 동료들의 원고를 읽고 피드백도 해주었으니, 내 글만큼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작은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 역시 배워가는 ‘초보 작가’였다.


출판사의 교정은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1차 교정은 가장 기본이 되는 한국어 어문 규정을 기준으로 했다. 몇몇 대표적인 문장을 예시로 들어가며 수정을 요청했다. 띄어쓰기, 맞춤법, 외래어의 한글 표기까지, 기초부터 다잡아갔다.


“‘되’와 ‘돼’의 차이를 검토하여 수정하여 주세요?”

“문장부호 “”에 마침표를 찍어주세요. 문장부호 사용법에 대해 전체적으로 확인해 주세요.”

출판사 팀장님의 꼼꼼한 교정 예시로 한국어의 기본을 공부하며 수정했다.


교정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됐다.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국어 어문 규정이었다. 마지막 교정까지도 이 부분은 계속 점검됐다. 둘째는 내용 수정이었다. 단어 선택부터 문장의 흐름, 전체적인 문맥으로 교정 절차가 진행되었다.


셋째는 목차였다. 목차는 독자들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펼쳐보는 곳이다. 한 권의 책을 관통하는 꼭지가 모여있는 곳이기에, 우리는 여기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사실 목차 작업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들의 연결성과 흐름을 고려해 큰 주제별로 묶어달라고 했다.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비슷해 보이는 주제라도 작가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고, 한 원고가 여러 주제에 걸쳐있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각 장의 제목도 문제였다. 너무 직설적인 제목은 단조롭고, 너무 은유적인 제목은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 한 사람의 책도 아니고 N명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야 했기에, 글의 분위기와 말투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떤 원고는 담담하게 쓰여있고, 어떤 원고는 감성적으로 쓰여있어서, 다양한 글들의 제목을 한 권의 책으로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


4차 교정까지도 목차는 계속 수정됐다. 누군가는 “이 순서가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라고 하고, 또 다른 작가는 “이 제목은 좀 더 다듬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하나하나 이견을 조율하다 보니 목차 하나 완성하는 데만 여러 번의 회의가 필요했다.

제목과 부제는 2차 교정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출판사는 첫 교정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초보 작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기본적인 교정에 적응할 시간을 준 뒤에야 제목, 부제, 표지 디자인과 같은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5차 교정에서 마침내 제목과 부제가 확정됐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N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의견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 타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공저의 묘미이자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어려웠다.


마지막 교정에서 PDF 파일로 받아본 우리의 글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써냈던 서툰 문장들이 어느새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 바로 전 단계였다.

“이게 정말 제가 쓴 글인가요?”

“진짜 책 같아요.”


교정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간 메모를 보고 당황했던 우리가, 이제는 수정 사항을 보며 “아, 이렇게 쓰면 더 좋겠네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한 동료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팀장님, 제가 쓴 원고를 다시 읽어보니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시 써도 될까요?”

처음에는 교정이 부담스러워했던 동료가 이제는 스스로 글을 다듬고자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정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교정 제출 기한이었다. 각자의 업무가 있다 보니 교정 일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TF팀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수정본을 함께 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피곤했지만, 이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의 글은 조금씩 다듬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 PDF 파일을 받아보던 날, 교정은 단순히 글을 고치는 작업이 아니라 직장인들이 초보 작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책의 제목과 부제를 만드는 과정을 들려드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