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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가치

by 어니스트 정

3개월이 지났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사무실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김현우는 회의실 앞에 서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오늘은 ‘성장 문화 이니셔티브’ 프로젝트의 첫 분기 성과 보고 날이었다. 지난 3개월 동안 태스크포스 팀은 숨 가쁘게 달려왔고, 이제 그 결과를 임원들에게 보고할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회의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그를 맞이했다. 박지연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 그리고 태스크포스 팀원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김현우에게 집중됐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성장 문화 이니셔티브’의 첫 3개월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김현우는 차분하게 발표를 시작했다. 첫 슬라이드에는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총 15개의 멘토링 페어를 구성했고, 8개의 부서 간 교류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성공 사례 공유 플랫폼에는 이미 30개 이상의 사례가 등록됐고, 리더십 개발 트랙에는 45명의 직원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숫자와 그래프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나 김현우가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숫자 너머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어난 개인적인 변화들입니다. 오늘은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직접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김현우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태스크포스 팀의 핵심 멤버인 이 대리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마케팅부 이수진 대리입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수혜자이자 현재는 태스크포스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대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실패했던 프로젝트, 자신감을 잃었던 순간, 그리고 김현우의 멘토링을 통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녀의 이야기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제 멘티인 신입사원 정 주임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의 사다리’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한 사람의 성장이 다른 사람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다음으로 다른 팀원들이 차례로 나와 다양한 사례와 데이터를 발표했다.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10% 상승한 결과, 부서 간 협업 프로젝트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의 생생한 피드백들.


마지막으로 다시 김현우가 앞으로 나와 발표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보신 것처럼, 첫 분기 성과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분기에는 이 프로그램을 전 지점으로 확대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여 더 많은 직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지연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정말 인상적인 성과입니다, 김 부장님과 태스크포스 팀 여러분. 이 프로젝트가 우리 회사에 가져온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서 간 소통이 원활해진 것이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다음 단계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김 부장님, 이제 ‘부장’이라는 직함이 좀 작아 보이네요. 앞으로 더 큰 역할을 맡을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사무실로 돌아온 김현우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3개월 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발견한 열정을 따라가는 작은 시도였을 뿐인데, 어느새 회사 전체의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되어 있었다.


“김 부장님, 축하드려요! 오늘 발표 정말 훌륭했어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김현우가 돌아보니, 태스크포스 팀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기쁨이 가득했다.


“모두 덕분이에요. 여러분의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부장님이 이끌어주셨기에 가능했죠. 저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항상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셨으니까요.”


김현우는 이 대리의 말에 감동했다. 그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다들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한턱내고 싶은데요.”


팀원들의 환호성 속에, 저녁 회식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김현우는 자신이 과거에 그토록 불편해하던 회식을 직접 제안하는 자신이 새삼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회식은 더 이상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함께 성취를 나누고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저녁, 김현우는 태스크포스 팀원들과 함께 회식 자리에 앉았다. 그는 술 대신 음료수를 마시며 대신 팀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꿈과 목표, 그리고 고민을 나눴다.


“김 부장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가 그저 또 하나의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부장님의 진정성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젊은 팀원의 솔직한 고백에 김현우는 웃음을 지었다.


“저도 처음부터 확신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내가 정말 의미를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었죠. 그리고 여러분 덕분에 그 의미가 더 커졌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회사에서 이 프로젝트를 정식 부서로 만든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논의가 있긴 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죠. 이 문화가 진정으로 회사에 뿌리내리는 것, 그게 제 목표예요.”


회식이 끝나갈 무렵, 팀원들은 김현우에게 작은 선물을 건넸다. 나무 모양의 패였다.


“저희가 다 같이 준비했어요. 부장님께서 항상 ‘나무를 보는 눈’을 강조하시니까, 이 나무가 부장님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김현우는 감동해 패를 받아들였다. 패 아래에는 작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 사람의 성장이 모여 숲을 이룬다 - 성장 문화 이니셔티브 태스크포스 팀’


늦은 밤, 김현우는 회식을 마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선명했다. 오늘은 참 의미 있는 하루였다. 프로젝트의 성공, 임원들의 인정, 팀원들과 깊은 교감. 모든 것이 그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 풍경이 흘러갔다. 불빛 가득한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현우는 문득 자신의 삶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천부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도 나만의 가치를 찾았다.’


김현우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신입사원 시절의 열정, 중간 관리자로서의 고민과 좌절, 그리고 지금의 새로운 도전까지. 그 모든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함의 가치.’


그 말이 김현우의 마음에 울렸다. 누구나 자신만의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거창한 업적이나 화려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매일의 작은 성장과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김현우는 팀원들이 준 나무패를 자신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 패는 이제 그의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나무를 보는 사람.’


그것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라, 그의 가장 큰 강점이자 자부심이었다. 김현우는 이제 자신의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했고, 그 가치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의미. 김현우는 이제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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