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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의 새로운 하루

에필로그

by 어니스트 정

2년 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김현우는 눈을 떴다. 새벽 5시. 창문 너머로 아직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맑게 깨어 있었다.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김현우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는 태스크포스 팀원들이 선물한 나무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패 주변에는 여러 상패와 감사장들이 놓여 있었다. ‘올해의 혁신 프로젝트 상’, ‘조직문화 우수사례 대상’, 그리고 지난달 받은 ‘인재 육성 공로상’까지.


김현우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은 저 상패들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성장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조깅한 후, 김현우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6시 30분. 이제 아침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예전처럼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며, 김현우는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성장 문화 연구소’ 공식 출범식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 1년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회사는 이 프로젝트를 정식 조직으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김현우는 그 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아빠, 오늘 중요한 날이지?”


잠옷 차림의 지은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딸은 더 성숙해 보였다.


“그렇지. 긴장되네.”


“아빠가 뭐가 긴장돼? 아빠는 뭐든지 잘하잖아.”


김현우는 웃으며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우리 딸.”


아침 식사 시간, 온 가족이 식탁에 모였다. 수진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일찍 일어나 김현우의 넥타이를 매주 었다.


“오늘 정말 멋있어 보인다. 소장님.”

김현우는 쑥스럽게 웃었다. “아직 적응이 안 돼. ‘김 부장’에서 갑자기 ‘김 소장’이라니.”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당연한 결과야.”


민우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학교 친구들한테 자랑했어. 우리 아빠가 회사에서 연구소 만든다고.”


“그랬구나. 민우도 아빠처럼 멋진 일 하게 될 거야.”


김현우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인사했다. 수진이 그의 양복 재킷을 살짝 정리해 주며 작게 속삭였다.

“정말 멋져 오빠.”


김현우는 수진의 손을 꼭 잡았다. “모든 게 당신 덕분이야. 항상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현우는 지난 2년을 돌아보았다. ‘성장 문화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시작했던 멘토링 프로그램이 이제는 회사 전체로 확대되었고, 다른 기업들도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오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였다. 직원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와 지지의 문화, 서로의 성장을 돕는 협력의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받는 환경. 이것이야말로 김현우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로비에는 ‘성장 문화 연구소 출범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김현우의 이름과 사진도 함께였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그는 이제 그런 주목받는 위치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김 소장님, 축하드립니다!”


로비에서 만난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김현우는 미소로 답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8층. 이제 그의 사무실은 여기에 있었다. 예전의 교육부에서가 있던 3층에서 임원들이 있는 8층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사무실 문에는 ‘성장 문화 연구소 김현우 소장’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축하해요, 소장님!”


사무실 문을 열자 태스크포스 멤버들이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이제 연구소의 정식 구성원이 되었다. 김현우의 책상 위에는 케이크와 샴페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너무 과한데…. 고마워요, 여러분.”


이 대리(이제는 이 과장이 되었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장님 덕분에 저희 모두가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작은 축하는 당연한 거예요.”


간단한 축하 모임을 마치고, 김현우는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전경이 눈부셨다. 그는 문득 2년 전 이맘때를 떠올렸다. 새 부서로 이동해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자신의 가치와 역할에 확신이 없어 방황하던 때.


‘어쩌면 그때의 혼란과 방황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현우는 책상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1년 전부터 써온 일기장이었다. 그는 간간이 자신의 생각과 깨달음을 여기에 기록해 왔다. 첫 페이지를 펼쳐보니, 그가 쓴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사람. 그것이 내 한계일까?’


김현우는 미소 지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나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기에, 더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다. 세세한 것에 집중하는 성향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그의 강점이 되었다.


오전 10시, 출범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현우는 준비한 발표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오늘 그가 발표할 ‘성장 문화 연구소’의 비전과 계획. 이제는 단순히 회사 내부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출범식장으로 향하는 길에, 김현우는 박 차장을 만났다.


“소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박 차장님. 박 차장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과찬이세요. 그런데 오늘 특별 손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김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소개해 드릴게요.”


대강당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으로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회사 임직원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온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언론 관계자들도 보였다. 김현우는 무대 뒤에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긴장되세요?” 박 사장이 다가와 물었다.


“네, 조금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김 소장님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진정성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거예요.”


박 사장의 격려에 김현우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녀는 2년 내내 이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드디어 출범식이 시작되었다. 박 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김현우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청중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성장 문화 연구소 소장 김현우입니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나 불안감이 없었다. 그것은 확신과 진정성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성장 문화 연구소’는 단순한 조직의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의 이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김현우는 연구소의 비전과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발표는 구체적이면서도 영감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특히 그가 직접 경험한, 그리고 목격한 수많은 사례들이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오늘 특별한 손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연구소의 첫 번째 외부 협력 파트너인 ‘미래인재개발원’의 정은지 원장님입니다.”


객석에서 한 여성이 일어나 무대로 올라왔다. 그녀는 10여 년 전 정우성의 장례식에서 만났던 그의 여동생이었다. 김현우는 그녀에게 연락해 오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 설립을 도왔고, 그것이 이제는 인재 육성 기관으로 성장해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관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 순간, 김현우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느꼈다. 정우성의 죽음이 그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이 그를 새로운 길로 인도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정은 다시 정우성의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출범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많은 사람이 축하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오후 내내 인터뷰와 미팅이 이어졌다. 이제 김현우의 일상은 2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현우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잊지 않았다. 오후 4시, 그는 회의를 모두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중에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신입사원의 메시지가 있었다.


[김 소장님, 제가 담당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승인받았습니다! 소장님께서 조언해 주신 대로, 사용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정의했더니 새로운 해결책이 보이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님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입니다.]


김현우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축하합니다. 하지만 그 성공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김현우는 시계를 확인했다. 5시 30분. 오늘은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벌써 퇴근하세요, 소장님?” 한 비서가 물었다.


“네, 오늘은 가족과 약속이 있어서요.”


김현우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민우의 생일이었다. 작년에 약속했던 대로, 가족 모두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족과의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 길에, 김현우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생각했다. 2년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과 삶의 의미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확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수진과 아이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지 않았지?” 김현우가 물었다.


“딱 시간 맞추셨어요, 소장님.” 지은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저녁 식사를 하며, 가족들은 각자의 하루를 나누었다. 지은이의 학교 이야기, 민우의 새로운 취미, 수진의 업무 성과까지. 김현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아빠, 오늘 출범식 어땠어?” 민우가 물었다.


“잘 됐어. 많은 사람이 와주셨고, 앞으로의 계획도 좋은 반응을 얻었어.”


케이크와 함께 민우의 생일 축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진이 물었다.


“이제 뭐가 더 필요해? 지난 2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김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글쎄…. 사실 특별히 더 바라는 건 없어. 지금, 이 순간이, 그리고 이 여정 자체가 내게는 충분히 의미가 있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며, 김현우는 문득 2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찼던 그때의 자신에게, 지금의 평화와 확신을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김현우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그는 그 여정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김현우, 나무를 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이 내 강점이다.’


더 이상 의심이나 불안은 없었다. 그저 깊은 확신과 감사함만이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한 그의 여정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김현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인 성공이나 인정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발견하는 의미와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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