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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Oct 19. 2019

감정의 투자에서도 수익이 나야 하나요

invest와 interest

사람의 감정에는, 한 번에 떠 줄 수 있는 수저 양이 있고, 삶에 거쳐서 줄 수 있는 창고 총량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자는 순간의 에너지 같은 것 정도일 텐데, 후자는 방사능처럼 평생에 걸쳐서 야금야금 잃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을 쉽게 잘 주는 것 같은데 깊은 정은 없고, 어떤 사람은 얼핏 친해지기 쉽지는 않은데 알고 보면 정이 깊고 오래간다. 수저 크기와 창고 크기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은데 그냥 태생이 남에게 줄 사랑이 별로 없어 보이니 총량이 때로는 태생으로 결정되는 듯도 한데, 화수분처럼 다시 채워지고 채워져서 받은 만큼 다시 나눠 주는 사람도 있고, 돌려받지 못한 마음이 더 많아 창고가 비어버리기도 하는 걸 보면 후천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어로 그런 표현이 독자적으로 생겨났는지, 번역체가 굳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어로 감정의 투자라고 하면, 투자에 쓰는 자資가 재물 자이기 때문에, 뭔가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영단어 invest의 두 번째 뜻은,

provide or endow someone or something with (a particular quality or attribute)으로, 누군가, 혹은 무엇에 특정한 가치나 속성을 가진 것을 제공하거나 기여한다, 는 것이다.

(대가 상관없이) 무엇을 쏟는다, 붓는다, 그런 느낌이다. 물론 감정뿐이 아니라 시간이나 노력 같은 것에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감정에 쓰이는 invest는 대가성이 없다.

하지만, 자기 목숨을 '투자'한다고 하지는 않으니까, 감정을 줄 때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기는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저 실망하지 않는 것 정도일 게다.

한 때는 좋은 관계였다 할지라도, 일단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마음이 오고 가지 않는 걸 깨닫는 순간에는 더 이상 주지 않는 게 옳다. 이것은, 내가 손해를 보아서, 불쾌해서, 심술을 부리자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은 되돌려 줄 것이 없다는 말이고, 그러면 상대방도 받기만 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마음을 준다'이라고 애매하게 말하고 있지만, 물건을 주든 말을 걸든 여타의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주는 사람은 좋아서 한다고 해도 받는 쪽은 다르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시점에 상대방의 수저가 꽉 차서 여력이 없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오해가 있을 수도 있고, 진실한 마음을 몰라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리고 물론 단순히 나 혼자 착각한 거지 내가 싫은 걸 수도, 아니면 무슨 이유로든 나에게 실망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서운하게 해서, 내가 싫어졌을 수도 있다.


누구나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아무리 겪어도 번번이 속상한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자연히 개인의 역사에 의해 누적된 호불호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나하고 하등 상관도 없는 유명인들 중에도, 남들 다 좋대도 나는 괜히 싫은 사람이 있고 남들 다 싫다는데도 나는 좋은 사람이 있는 판국에, 직접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 중에는 더 확실한 감정이 생길 것이다. 한번 싫으면 생각처럼 말 몇 마디로 달라지기도 힘들지만, 싫고 좋은 것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gut feeling의 이유밖에 없을 때도 있다.  (https://brunch.co.kr/@slsaznv/47 참조)

케이크를 먹을 때 어떻게 잘라도 케이크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온 말로, 어떻게 해도, 란 뜻의 'anyway you cut/slice it' 란 말이 있다.

Any way you cut it, it's over. 뭐라고 말해도, 결론은, 그냥 끝난 거야.

anyway you cut it,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이유가 어떻든, 어떤 설명과 해석을 하든, 관계가 끝났을 때는 끝난 것일 뿐이다. 억지로는 이어갈 수 없다. 실망을 했더라도, 실망이란 건 상대방의 기대치 때문이니 그 기대가 내 탓은 아닐 뿐더러, 내가 실망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무슨 이유로든 틀어진 관계는 말로만은 잘 풀어지지 않는다. 부먹 좋다는 데 찍먹을 먹도록 설득하려 드는 것은 피차간에 좋은 invest 방법이 아니다. 애초에 찍먹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편이 낫다.



내가 마음을 준 다고 반드시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될 때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잠시 닫아두게 된다. 총량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마음을 닫아걸고 또 살짝 열었다 또 닫기를 반복하면 마음이 굳어져 버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있는 사랑도 제대로 나누어주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이따금, 놀라울 정도로 도대체 사랑이란게 없어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어디선가 상처를 받고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다. 이런 마음은 진실한 마음을 받는 걸로 밖에 녹일 수가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마음을 닫아걸면 진실한 마음을 못 알아보기도 쉽기 때문이다. 기다려 주는 것은, 또 다시 주는 사람만 일시적으로나마 총량의 '손해'를 보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고 말이다.


물론, 돌려받지 못한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상처를 준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지는 않다.

남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편의대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을 주는 쪽이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애초에 상대방의 마음을 잘 못 읽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되돌려주지 못하는 쪽에서 지나치게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흔히, '기다려준다'는 것은 수저 양과 창고 크기도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수저 크기를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그 사람이 나에게 나누어줄 여력이 없는 것을 잘 아는 것이고, 하지만 마음의 크기는 알고 있기에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줄 마음이 없는 데 혼자 기다려 준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줄 것이 없다면 현재 수저가 가득 찬 것이고, 나만 안 준다면 결과는 명백하다.

이렇게 서로 잘 아는 사람이라면 때로 혹시 나에게 소홀하더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니 너그럽게 기다려 줄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왜 나 한 수저 안 주느냐고 투정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네 남매 중 가운데 낀 둘째로 자라서 그런지 모두가 다 행복해야 나도 좋은 편이라서, 늘 기본적으로는 누구도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렇게 찍먹도 좋고 부먹도 좋다 보면, 또 확실히 편을 가르지 못해서 또 본의 아니게 나 때문에 서운해지는 사람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이것과 저것을 대비해서 지금 쯤 내게 한 수저 줄 수 있잖느냐고, (a.k.a. 어쩌면 몇 달 동한 어떻게 전화 한 통 없니?) 하고 서로 때를 써 볼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있고, 나는 이것을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아무리 현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도, 언제든지 마음을 접을, 접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다. 이는 냉정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줄 줄 아는 것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사람은 각자 개인 역사에 따라 자기가 줄 수 있는 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all-in, 모든 chip칩을 한 곳에 몰아넣으면, 여느 invest처럼 위험부담 risk가 너무 커지니 만큼 완전한 신뢰를 주는 관계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항상 서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수저와 창고 크기는 내가 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혹 무슨 일로 서운하면, 나도 누군가를 서운하게 한 적 있겠지, 하고 이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항상 나혼자 반성하고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튼 자기감정은 각자 자기가 다스려야 하는 것이니까.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한 성장의 과정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요한 요건이다. 살다보면, 자기 기분대로 혼자 필요할 때만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모든 것에 신경쓰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관계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고, 이야기의 결말처럼 여기는 게 좋다.


사람 마음이란 것은, 하아, 참으로, 사람 마음대로가 아닌 것이다.


invest투자를 하면 받을 수 있는 이자는 interest다.

interest의 또 다른 뜻은 물론 '흥미', '관심'이다.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는 것만이 invest를 가치 있게 할 수 있으니, 이자를 먼저 주어야 투자를 할 수 있는 셈이 된다.


더 이상 interest 흥미 없는 관계에는 emotional invest 정신적, 감정적 투자를 끝내는게 맞다.


-투자상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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