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madic Nov 22. 2019

걱정하지 말라는 말

흔들의자를 타고 떠나는 여행


한국인들이 영어 문법을 배우고, 인사말을 배우면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 중에 하나가 걱정일 것이다.

I am worried. 걱정되네.

*I worry (O) I am worry (X))

Don't worry (be happy). 걱정 마. (자동 완성의 '비 해피' 노래 가사까지)


사실 걱정이라는 것은 사실 희로애락만큼이나 본능적인 감정이니 무리도 아니다. 걱정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도 하나도 없을 것이니까.

*한이라는 말을 알고 싶어 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도 특징인데, 사실 유태인들이나 구소련 하의 여러 국가들, 중동의 여러 국가들의 팔자(!)를 살펴보면 한국의 중국 일본 침략 같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신문물이 늦게 발전해서 고생한 것도 자발적인 것이었으니 그저 뭔가 혼자 억울한 게 많은 민족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지만 그건

another day, another story. 다른 날 얘기하도록 하자.


일단 뭔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누군가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게 말이다.

Hey, what's up? 무슨 일 있어?

Food for thought? 뭐 생각할 거리라도 있어?

Earth to 홍길동! 응답하라! 홍길동! (지구로 돌아오라는 뉘앙스로 누군가 넋을 놓고 있을 때 조크로 쓰는 말이다)

실상은, 사람은 다 똑같으니 누군가 걱정이 있으면 긴장해서 주변을 맴돌거나 눈치를 보는 등의 행동을 할 지는 모르지만, 미국인들은 남의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직접 물어보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도 웬만한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아무에게나 고민거리를 늘어놓고 싶지도 않고, 늘어놓아서도 안되지만, 그래도 뭔가 고민거리가 있고, 그래서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나, 아니면 적어도 조금 그 사실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으면, 다짜고짜 I am worried about something 보다는,

I am just preoccupied with/about something. 나 뭔가 생각할 게 좀 있어.

가 적절하다. 직역하면 미리 pre 꽉 차 있다 occupied는 말이다.


아무나 붙들고 습관적으로 신세타령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걱정은 뭔가 구체적이 아닌 것이기도 쉬워서 아무에게나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걱정'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고 있지만 사실 걱정에는, 과거에 누군가나 네가 한 말과 행동을 되짚어 곱씹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걱정, 반추 reflect, 그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는 걱정, 즉 후회 regret, 미래에 대한 걱정, 즉 두려움 fear, 아니면 미팅 장소를 잘 골라야 하는데, 선물을 뭘 살까, 하는 이런저런 의사결정 과정 decision making process 등이다.


worry는 뭔가를 계속 만지작거려서 닳게 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걱정은 끊임없이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Worry is like a rocking chair: it gives you something to do but never gets you anywhere'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일단 뭔가를 하게는 해 주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 데도 도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고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고민을 해서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을 좀 돌아보기도 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후회도 하게 되는 것뿐이다.

걱정은,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 priority  확실하게 하고, 때때로 다시 재정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지금, 여기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면 쓸데없는 것에 후회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반추와 후회의 경우는,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알면 실수할 말도 하지 않겠지만, '안 했으면 좋았을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혹 내가 했더라도, 내가 나를 믿을 수만 있으면 그때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혹 두려운 것이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것만 지키면 된다는 것을 일단 기억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건강도 가족도 사랑도 맛있는 것도 예쁜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대가 돈과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면 그것을 위해서 다 버리면 된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만 있으면 영혼인들 못 팔겠는가. 영혼 값이 요즘 도매금이라서 그렇지.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 우선순위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당장 고민하는 거 (있는 거 안다) 잠깐 치워놓고,

뭐가 정말 문제인가. 뭐가 중요한가. 무엇은 끝까지 지키고 싶고, 무엇은 없어도 되는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고민이 없어도 이 작업은 평상시(?)에 늘 하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 늘 우선순위를 잘 정비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문득 닥친 큰 문제가 있어 panic attack 공황발작이 찾아오면, 그래서 나도 모르게 paranoid편집적이 되면, 우선순위 정립이고 뭐고 일순 상황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황발작이니 편집증이 뭔가 큰 질병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문득 걷잡을 수 없이 당황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없는 상황도 panic attack이라고 하고, 뭔가 집착이 되어서 다른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안 되는 상태정도도 paranoid라고 하기도 한다.)

갑자기 걱정에 휘말리는 것을 anxiety attack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걱정 anxiety의 형용사 형 anxious는 역시 I am anxious, 불안해,로 쓸 수도 있지만, I am anxious to go, 가 되면, 불안해서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가'고 싶어 죽겠다'는 말이 된다. 너무 가고 싶은 나머지 불안하다는 말인가. 나참 언어는 대환장쇼 확실한 규칙이란 것이 없다.

분명 우선순위를 잘 아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후회와, 나중에 결정해도 되는 것들로 밤에 뒤척일 때가 toss and turn 있다. 불투명한 미래는 항상 이런저런 두려움을 안겨준다. 많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nameless dread라는 표현으로 잘 집약된다.

이름 없는 두려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늘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에 읽은 마가렛 앳우드의 '증언들'이라는 책에 'Fear is corrosive'라는 말이 있었다. corrosive는 화학반응으로 주로 금속을 녹이는 용제를 말한다. 공포는 corrosive라는 것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걱정의 antidote해독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걱정을 듣고 listening, 진심으로 살펴주는 caring 것일 것이다.


여기서, listen이 귀담아듣는 것이고 hear은 그냥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그래서 듣기 평가는 listening test고 보청기는 hearing aid 인 게 맞지만,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나는 너의 이야기를, 너를 듣는다, 이해한다는 말은 I hear you.이다. 종교적으로 신이 기도를 듣고 응답한다는 말도 He hears your prayer이라고 한다.


어쭙잖은 조언이나, 걱정하지 말라는 덧없는 말 말고

I hear you. I get you. 이해해.

혹은 조용한 끄덕임 nod. 손 잡아 줌 holding hands,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주는 것 Lending a should to cry on

그런 게 걱정을 더 잘 지워주지 않을까.


물론 고기도 좀 사 먹이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만.

철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으니.




다음에는 걱정을 안겨주는 것들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뜻밖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솔직하답시고 하는 말들과, 관심을 빙자한 간섭이 많다. 그들의 '솔직'하다는 감정은 무슨 의미고, 과연 솔직하다는 게 얼핏 말처럼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리고 나서, 관심과 간섭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싫음과 미움과 증오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