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기
아홉 번째 상담을 갈무리하는 선생님의 따뜻한 이야기.
"제인님, 불안과 걱정은 지금 이 상태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시작해요. 제인님이 항상 얘기하시는 제인님이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모습 있죠? 성숙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단단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이상적인 자아상'을 좇다 보면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해져요. '이상적인 나'는 찌질하고, 이별에 오랜 가슴앓이를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거든요. '~한 사람이 되어야지, ~한 모습이 되고 싶어.'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심해지면 나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어요. 나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으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요. 왜냐면, 나는 나 자신의 마음도 공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성숙하고 완벽한, 흔들림 없고 안정적인 사람 참 멋지죠. 누구나 그런 모습이 되고 싶어 해요. 그렇지만 제인님, 그런 생각이 자꾸 올라오면서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싶다면, 딱 그 순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잠깐 멈춰야 해요. 그리고 생각을 이렇게 바꿔보는 거죠.
'아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걱정이 드는구나.'
'지금 이 순간엔 내가 왜 불안해할까? 이 불안은 어디서 시작된 감정일까?'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작아지지 않을까 봐 두렵구나, 이런 슬픔이 계속될까 봐 불안하구나.'
'아, 이 불안과 두려움은 내가 다시는 그때처럼 행복해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서 생기는 감정이구나.'
이렇게 지금의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제인님을 잠식하려는 불안의 늪에서 한 발 빠져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알아차렸다면 조금 더 나아가서 나의 상태에 대해 공감의 말을 해주는 거예요. 제인님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분에게 하고 싶은 무수한 말들 있죠? 그 말들은 사실 제인님 자신에게 해줘야 하는 말과 동일할 거예요. 그러니 그 말들을 제인님 스스로에게 해주는 거예요. 어색하겠지만, 시도해 보는 거죠."
'그래, 그런 마음이 들면 충분히 걱정이 되고 불안할 수 있겠다.'
'나에게 그 사람과의 시간이 정말 소중했구나, 진심으로 행복했었구나.'
'그 시기에 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계속 나무라기만 해서 미안해. 너의 마음은 한 번도 공감해주지 못하고 계속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해서 미안해.'
'지금은 힘들 수 있지만,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일 거야. 그 사람 덕분에 처음 느껴봤던 관계에서의 안정감과 행복, 그리고 그 사랑으로 어떠한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 넘치고 용감했던 나,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가고 이렇게 작아진 나까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모든 모습들을 경험하고 느꼈잖아. 이런 시기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나의 행복에 대해서 더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뭔지,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뭔 지도.'
'네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그리고 내가 항상 곁에 있을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알아가는 여정에 첫 발자국을 뗀 기분이다.
이 날의 대화가, 선생님이 해주신 촘촘하게 따뜻한 말들이, 오래도록 나를 지켜줄 것 같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찾아온다고 하는데,
내가 이별 직후 브런치를 통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된 것도, 하필이면 그 작가님이 심리상담사였던 것도, 그리고 꼭 이 분에게 상담을 받아봐야겠다는 확신이 든 것도, 매주 수요일 저녁 신사동의 작은 상담소에서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된 것도. 모두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 운명처럼 나에게 찾아온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운명 같은 사건들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다.
참 귀하고 소중한 나날들이다.
- 2023년의 마지막 달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