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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나

자아와 자각의 간극, 감정과 인지 사이의 긴장

by 석은별

우리는 늘 ‘나’로 살고 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방금 그 감정은 도대체 뭐였지?”
하는 질문이 불쑥 떠오른다.

그 질문이 떠오른 순간, ‘나를 느끼는 나’와 ‘나를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생긴다. 그 틈은 때로 긴장이고, 때로 통찰이며, 자기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간극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자아와 자각의 거리’, 그 심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탐색한다.


자아의 이중 구조: 경험하는 나 vs 관찰하는 나

심리학에서는 자아(self)를 단일한 실체로 보지 않는다.
경험적으로는 자아는 최소 두 가지 층위로 존재한다.

주관적 자아(the experiencing self)
→ 지금 이 순간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자아.
→ 즉흥적이고 반사적인 성향을 가진다.

관찰자 자아(the observing self)
→ 자기 상태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거리를 두는 자아.
→ 반성적이고 분석적이며 메타 인지 기능과 연결된다.

이 두 자아 사이의 상호작용은 자기 이해와 감정 조절,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통합의 기반이 된다.


자각은 긴장으로 시작된다

자기를 바라보는 행위는 단순한 ‘내면 응시’가 아니다. 자각은 늘 심리적 불일치로부터 촉발된다.

예컨대,말하고 나서 후회될 때

내가 한 행동이 나답지 않다고 느껴질 때

감정과 표정, 언어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런 순간에 자각이 개입하며 자기와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이 거리는 불편하다. 때로는 자기를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자신과 멀어졌다는 이질감도 동반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한 간극이 자기 성찰과 감정 리듬 재조정의 시작점이다.


심리이론으로 본 ‘관찰자 자아’의 역할

불교 명상, 정신역동, 인지치료, 수용전념치료(ACT) 등 다양한 접근에서 ‘관찰자 자아(Observer Self)’는 자기 해방과 통합의 핵심 요소로 등장한다.

ACT(수용전념치료)의 창시자인 스티븐 헤이즈(Steven Hayes)는 이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생각, 감정, 기억, 충동을 ‘내 것’으로서 경험하되, 그 감정 자체가 ‘나’는 아님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심리적 유연성이 생긴다.”

즉,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그 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잠식되지 않게 된다.


사례: 분노를 바라보는 순간

한 여성 내담자는 자주 화를 내고 나서 “나 정말 왜 이러는 걸까요?”라고 자책했다.

그녀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싫어했고, 늘 후회 속에서 자기혐오에 빠졌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우리는 그녀가 화를 낼 때 감정은 ‘폭발’이 아니라 ‘응축된 메시지’라는 점을 함께 인식해 갔다.

어느 날 그녀는 말했다.
“아… 제가 화가 난 게 아니라, 사실은 너무 무력했던 거였어요. 그래서 말할 줄 몰라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 말은 ‘화를 낸 자신’과 ‘화를 느낀 이유’를 거리 두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왔다.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분노하는 자아’가 아닌 ‘분노를 바라보는 자아’의 시점에 올라섰다.


자아 간극이 너무 크면 어떤 일이 생길까

관찰자 자아가 감정을 인식하고 조율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 두 자아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심리적 괴리가 생긴다.

자기 평가의 왜곡
관찰자 자아가 비판적일 경우, 경험하는 자아는 끊임없는 판단에 시달리게 된다.
→ “왜 또 이런 생각을 해?”, “이래서 너는 안 되는 거야.”

감정 회피 및 분리
자각이 감정과 자기를 분리시키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경우, 감정은 이질적인 타자가 되고
자기는 냉정하고 단절된 ‘관찰자’로 고립된다.

이런 상태는 감정에 침수된 상태와는 반대 방향이지만, 역시 자기 통합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감정과 자아 사이의 적절한 거리 유지

궁극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상태는
‘자기와 감정의 분리’도 아니고,
‘자기와 감정의 동일시’도 아니다.

그 사이에 있는
적절한 거리와 유연한 시점 전환이 핵심이다.

감정에 휩쓸릴 때:
→ 관찰자 자아의 시점으로 물러서기

감정을 멀리할 때:
→ 감정 자아에 잠시 몸을 맡기기

이런 움직임은 연습과 자각을 통해 길러질 수 있으며, 이 과정을 반복하며 사람은 자기 감정의 리듬을 구조화된 자기 인식 안에 통합시켜 간다.


감정은 거리를 두었을 때 더 정확히 들린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과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는 ‘거리가 있는 인식’에서 나온다.

우리는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되, 무시하거나 방어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 감정 인식은 자기 안에서 무의식적 감정을 언어화하고 구조화하고 결국 살아낼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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