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머무는 맛
6시가 되면 병상 왼편에 한 사람이 다가온다. 의식은 잠듦과 깨어남 그 사이 어디 즈음 감은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고 있다. 몸은 꿈쩍 않고 있다가, 그 기척에 수술하지 않은 오른편 팔을 살짝 올려든다. 혈압기계가 오른팔을 감싸고 잔뜩 조았다가 풀어준다. 별일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기계와 한 사람은 조용히 사라져 간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환자의 공동생활은 이런 이른 기상과 식사 시간이 상식적이다. 내 상식과는 어긋난다. 그 어긋남을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는 생활은 자연스럽게 어디서든 일상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방에서 부엌으로 몇 걸음 걸어가던 장면은 슬리퍼를 신고 병실을 걸어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을 올라가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으로 달라져도, 나는 같다고 느낀다. 정해진 자리로 가서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이름이 불리고 밥상 이름과 일치함이 확인되면 나의 식사는 시작된다.
편한 음식을 먹거나 불편한 음식을 먹지 않거나 좋아하는 걸 더 먹거나 먹을 생각이 없는 걸 원하는 이에게 나누거나 하는 식사 풍경. 아침에 육고기나 생선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그때쯤에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음식은 이동되거나 제자리에 남겨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은 관계를 드러낸다. 서로 말과 온도를 주고받은 이들은 식후의 빈 시간을 상대를 기다려줌으로 채워간다. 식사가 끝나가는 상대는 기다림에 어우러져 자신의 속도대로 우물우물 씹고 삼키며 차츰 수저를 내려놓는다. 식탁 위의 공기가 살짝 눌러지듯 튕겨 오르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몇 걸음 걸어서 커피 머신 앞에 선다. 종이컵 2개를 겹쳐서 받침대에 둔다. 종이컵은 오래오래 액체를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2개가 선택된다. 나는 카페라테를 좋아하지만 아프고서 끊었다. 에스프레소 버튼을 누른다. 짙은 색과 진한 향이 채워져 간다. 버튼은 2번 누른다. 기다리는 설렘의 긴장 속에서 2겹의 컵과 2번의 추출을 주시한다. 행복을 호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뜨거움 대신 따스함을 손에 감아쥐고 코끝에 가져다가 향을 가득 들이마신다. 커피를 마시던 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던 나와 아포가토를 사진 찍고 먹던 나와 친구들과의 커피잔을 사진 찍던 나를 떠올리는 맛이 난다. 향을 머금으면서 입 안에 초콜릿과 커피가 같이 섞이며 진한 풍미를 자아내던 어떤 날을 맛본다. 나는 혀로 맛보던 날을 달콤 쌉싸름한 맛이 온몸에 퍼지던 날들을 코끝에서 들이쉬고 머릿속에 담아놓는다.
병실로 돌아와 나를 기다려 준 분의 자리에 2겹의 향이 찰랑이는 종이컵을 놓아둔다. 커피 향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잠깐 움직이며 공기를 가를 때마다 새롭게 닿는 커피 향을 즐거워한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에 향기를 끌어온 우리는 은은하고도 살짝살짝 왔다가 사라졌다 하는 커피 향처럼 눈가가 입가가 표정이 잔잔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