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악역 만들기
한 후배가 나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 없는,
고작해야 눈인사 정도나
몇 번 해본 후배였을 뿐인데
내게 ‘미움’이란 강렬한 감정까지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크게 동요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불쾌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동기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아이라 했다.
욕심은 많지만 마음처럼 뭔가가
잘 되지 않는 아이라 했다.
뭔가 남다른 가정사도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그 애는 사연 있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크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슬프고 짠한 사연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악행을 저질러 상처를 입힌 이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사람.
그래서인지 내 이야기 속 악역들도
그들의 불운한 과거를 이해받거나
용서받는 법이 없었다.
이야기에서 악인,
즉 안타고니스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이야기에서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착한 주인공이 아닌,
지독하리만치 악하지만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악인일 때가 많다.
이토록 중요한 악인을 다룰 때
자칫하면 과하게 힘을 주어
어딘지 어색하거나,
혹은 너무 맥없이 늘어지는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내가 새로운 이야기의
악인 캐릭터를 구축하기 전
점검의 틀로 삼는 간단한 그래프가 있다.
이 4분면 그래프를 활용하기 위해
먼저 파악해야 할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아래는 그 두 가지 요소를 설명한 것이다.
1. 현실 속 악인에 대한 나의 (작가의)
주관적인 시각과 태도.
2. 내 이야기 속 악인이 저지르는
악행의 정도.
첫 번째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현실에서 범죄 사건과 범죄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때 어떠한 범죄 사건을
뉴스에서든 현실에서든 목도했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당장 범죄자에게 그가 저지른 범죄를
똑같이 되갚아줘야 하며,
법적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한편, 피해자에게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저 범죄자가 저렇게 된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이도 있다.
당연히 강한 처벌을 원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처벌을 원하는지에 따라서
견해차가 있고,
대체로 약한 처벌을 원하는 사람조차도
범죄의 심각성으로 인해
도저히 관대함을 가질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스펙트럼적인 문제는 제외하고,
자신이 어느 선상에 위치해 있는 사람인지
그 경향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성장 환경에서 받은 상처나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의 악인이 된 모든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타인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흔을 남긴 악행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악인을 만든 것이
사회적 울타리의 부재와
경제적 불평등이었다면,
그것은 분명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악인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말로 제대로 된 단죄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위의 그래프의 x축에서 오른쪽 끝의 지점에 위치한,
악인에 대한 강한 처벌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작가인 셈이다.
이런 생각을 지닌 내게
이야기를 써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악인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알아갈수록
그들에게 사랑에 빠진다.
설사 그 인물이 악인이라 할지라도
아주 작은 연민의 마음 정도는 품게 된다.
나는 바로 그 마음을 주의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악인이 주인공이 아닌 이상,
주인공이 격파해야 할 대상인 악역에게
그럴싸한 사연을 부여해 버리면,
독자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껏 주인공이 무엇을 위해 달려온 것인지,
왜 그 악역을 부숴야만 했는지가
모두 물음표인 채로
이야기는 끝나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작가인 내가
악인에게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은 악행부터 커다란 범죄에 이르기까지
타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현실에서 볼 때면,
내 안에선 즉각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란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른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죄인에게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해서
면죄부를 줄 순 없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이처럼 악인들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단죄하고 재단하는 마음이 앞서는 작가가
정말로 이해받아 마땅한 악역을 그려내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성향의 작가들이 창작 과정에서
갑작스레 생겨난 이야기 속 악인에 대한
이해심을 바탕으로
그를 이해받을 수 있는 악역으로,
애교스러운 수준의 악행만
저지르는 인물로 그려낸다면
이야기에는 이질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에
되도록이면 나는
악역의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를
이야기에 넣지 않으려 한다.
나의 이야기에서 악역은 아주 악랄하고
갱생의 여지가 없는 인물로 그려지며
독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미움만 받는다.
쉽게 연민할 수 없는 이 악역 캐릭터들은
결국엔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수준으로
철저하게 처벌받는다.
내가 만드는 악역은
대부분 위 표의 y축 상단 지점을 차지한다.
두 축의 지점들을 이어보았을 때,
나는 사분면의 오른쪽 상단을 차지하게 된다.
이야기에서 이질감과 경직된 느낌이 적어지고,
이야기 내에 악역이 조화롭게 녹아드는 지점이
바로 이 위치이다.
강한 처벌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작가가
강력한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을 그릴수록
더 생생하고 핍진성 있는 이야기를
구상할 수 있다.
좋은 이야기가 될 가능성을 지닌
또 하나의 케이스가 있다.
바로, 악인에 대한 관대와 용서,
사회구조적 개혁을 중시하는 작가가,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수준의 악행을
저지르는 악역을
구상하는 경우이다.
이런 지점에서도
좋은 이야기는 탄생할 수 있다.
그들은 보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이야기를 탄생시키고,
독자들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다시금 품게 만들 수 있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꼭 잔인한 악역 캐릭터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강력한 빌런이 인기라고 해서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뒤
작가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빌런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결국, 악역이라는 이야기 내부의
한 요소가 어떻게 그려질지는
작가의 성향과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에
어떤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생각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만약 내가 악인을 단죄하기보단
품어내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을 창조한다면,
그것은 어딘지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기 전에
이 표의 4분면에서 어느 지점에
내가 위치해 있는지를
우선 파악하는 것이 좋다.
검은색 지점은 피하고,
핑크색 지점에서
악인 캐릭터 빌드업을 시작한다.
바로 그때,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이질감 없이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이야기를 써내게 된다.
물론 살아가면서 작가의 성향은
x축에서 y축으로,
또는 y축에서 x축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럼 그때의 내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빌런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면 된다.
따라서 작가는 자기 세계관의 변화를
끊임없이 예리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온달
앨범 <태양의 풍속> 작사, 작곡, 노래
앨범 <Like stars> 작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스토리작가 당선
네이버 웹툰 <이번 생은 케이팝 리벤지> 스토리 작가
종이책 소설 1권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