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패자인 돈의 시대

스토리 리뷰: 영화 <기생충>

by 온달

희뿌연 시대를 살고 있다.


안개 낀 앞길을 더듬더듬 걷다 보면,


정체모를 불안과 공포심이 밀려온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자꾸만 발에 턱턱 걸려 나를 쓰러트리려 하는


크고 작은 돌덩이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수많은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나는 앞으로, 앞으로 떠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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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제강점기나 군부 독재 시대와는 달리,


나를 옥죄는 적은 더 이상 식민 통치자, 독재자,


부당한 권력 따위가 아니다.



그래서 가끔 나의 적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지만,


정작 내가 나를 스스로 채찍질한다.


나약한 마음은 집어치우고 생존하라고,


사랑받기 위해선 돈을 벌고,


모으고 더 많은 것을 갖추라고,


누구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말고 경계하라고,


꿈 따위는 묻어두고서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스스로에게 모진 나를 또 내가 미워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주위를 맴도는


공기 같은 목소리 한 줄기를 알아차렸다.


나를 위해 살라고, 나만 있다면 넌 안전하고, 사랑받고,


더 많은 기회를 갖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전신을 타고 돌며, 마치 나의 목소리인 냥,


나를 속이고 내 삶을 지배하는


그 목소리의 정체를 이제는 안다.


나에게 끊임없이 자기착취를 종용하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돈의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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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이렇게 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승자는 오직 ‘돈’ 뿐이라는


공포스런 비밀을 폭로했다.


얼핏 보기에 영화 속에서 박 사장 가족은


낙원에 살고 있는 듯 보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최하단에 위치한


기택과 문광 가족만이 고통받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차 안에서 펼쳐지는 기택과 박 사장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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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에서 기택은 박사장의 부인에 대해


“그래도 사랑하시죠?”하고 묻는다.


이에 박 사장은 잠시간 침묵하더니


“사랑하죠, 그럼.”이라고 답하는데,


그 얼굴에는 조소가 띄워져 있다.


허를 찌르는 기택의 질문이


그에게 선을 넘는 것이어서


경고를 준 것일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사랑? 그런 순진한 사고방식으로 사니까


당신 인생이 그 모양이지’라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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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에게 중요한 것은


귀찮게 하지 않고


자신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을 잘 챙기는 아내,


성적 욕구와 보살핌을 제공하는


적당히 괜찮은 아내이지, 절절한 사랑이 아니다.


그는 치열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꼭대기에 서기 위해 애를 쓸 뿐이지


순진한 사랑 놀음을 할 시간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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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 사장은 적당히 미적지근한


사랑을 해오며, 일에 열정을 쏟았고


결국 체제 내에서 승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일대기적 관점에서


뜨거운 사랑을 한번 해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짜 사랑을 해본 이는


삶에 대해 좀 더 폭 넓은 시각을 갖고


스스로의 삶을 예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박 사장처럼 돈과 명예를


최우선 가치에 두며 살아온 사람은


삶의 일면에서의 승리를 두고,


자신이 삶 전체를 깨달은 듯 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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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살아서는


눈치조차 채지 못한 공허를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평생을 ‘돈’을 위한 헌신에만


몸 바쳐온 사람에겐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 자연과 타인을 위한 헌신처럼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중요한 요소들이


삶의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의 그는


오직 홀로 선 채 폭풍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후회를 감당해내야 한다.


따라서 박 사장 또한


자본주의 체제 하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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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사장과 그의 가족은


‘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그들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급 나누기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하층의 사람들이 선을 넘어


자신들에게 공격해올 것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심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하층에 대해 갖는 혐오감은


사실 가난한 자들이 언제 자신의 자리를 넘보며


야만적인 공격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불안에서 유래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상층부에 위치하는 이들조차도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며


인생을 소모하게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돈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해보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진실된 마음을 나누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지,


꿈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보았는지 등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할 수 있는 기준들은 다양하다.



그런데 이 돈의 시대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교환가치에 따라 평하고


얼마의 자산을 모았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등에 따라


성공한 삶인지 여부를 따지곤 한다.


이런 획일화된 삶의 양식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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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과 생활 양식 등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다른 기생충 속


세 가족이 유일하게 갖는 공통점은 바로


그들 내면에 자리한 속물성이다.


문광은 기택 가족보다


집의 건축적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더 잘 안다는 점을 내세우며


예술적 소양을 갖추고 있음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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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 가족은 자신들의 경제적 안위를 위해


문광 가족을 비롯한


다른 하층 계급 사람들의 삶을


가책없이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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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익의 부인은 좋은 학벌과


화려한 이력을 갖춘


제시카에게 단숨에 넘어가며


순진한 외면 너머의 속물성을 들키고 만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 하의 개인은


속한 계층과 상관없이 돈이라는


획일적 기준에 휘둘리며


속물적 내면양식을 지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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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러한 속물적 삶의 양식이


현대 사회 개인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 하는지를 보여준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가족의


대저택에 입성한 뒤로는


대부분의 사건이 집 안에서 펼쳐진다.


그 안에서는 속고 속이는 치열한 심리전과


온 몸을 내던지는 추한 육탄전이 벌어지고,


그 결과로 집의 점유자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처음의 점유자는


박 사장 가족이었다가


그 이후에는 기택이,


그리고 그 이후


잠시동안은 문광 가족이,


다시 박 사장 가족이 점유한다.


그러다 결말부 박 사장의 죽음 이후에는


다시 다른 가족에 의해 점유된다.


그렇게 사람들이 그 집을 욕망하고,


그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하며


추한 몰골로 버티다가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대저택’이다.



모두가 삶의 절망을 맛보고 있을 때에


생명 따위 깃들지 않은 그 집만이


처음의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집 아래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시멘트와 대리석으로 된


그 견고한 저택이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자신들이 저택을 소유했다고 믿지만,


실은 저택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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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영화적 설정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물질문명에 휘둘린 채


폐허가 된 정신으로 살아가면서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들이 문명의 주인이라 믿는 인간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한편 저택 안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세 가족은


이야기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보통의 빈부격차를 다룬 이야기에서


부자가 악역으로 빈자가 선의를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이 이야기에서는 강력하게 악인으로 부각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택 가족의 기이한 삶의 양식과


매우 위험한 신분상승 계획을 알고 나면


그들을 악역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러나 관객은 기택 가족의


비참한 삶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을 악인으로 여기고 증오하기보다는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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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 가족은 어떤가.


그들은 정말 기생충처럼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외관과 행동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진 않는다.



문광 가족은 그저 자신들의 삶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택 가족과


싸우는 소시민일 뿐이다.



한편, 빈부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구도 하에서


박 사장 가족을 악역으로 여기려던


관객들은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어딘지 찝찝함을 느끼게 된다.


바로 박 사장 가족을 악하다 생각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박 사장 가족은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친절하고 교양있으며


가장 순진해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박 사장이


자녀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빼어 여행을 가는 면모나,


많은 직원들의 삶을 책임지며


열심히 제 할 일을 다하는 면모로 보았을 때,


그는 성실한 기업의 CEO이자,


한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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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박 사장 가족의 흠결을 찾자면


그들이 계속해서 냄새를 언급하며


하위 계층의 기택 가족에게


모욕감을 준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으나,


그조차 그들이 불쾌감을 의도적으로


기택 가족에게 전한다기보다


자신들끼리 그들의 냄새를 뒷담화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악하다 보기도 어렵다.


또한 냄새에 대한 혐오감은


너무 원초적인 것이어서


혐오감을 품는 박 사장 가족을


선뜻 비난할 수도 없다.



결국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 중


누구도 악하지 않다.



이상한 점은 바로 악하지 않은 그들이


타 집단과의 관계에서는


모두 명백한 악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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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성이다.


누구도 악하지 않으나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개인들은 점차 타인을 협력과 공존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갈수록 극단화된 개인주의와


가족 이기주의는 팽배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그리고 그 결말은 어떠한가?


영화의 결말부에서 알 수 있듯,


돈과 신분상승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결국 모두가 파멸했다.


영화에서는 이 파멸이


실제적 죽음으로 표현되나,


실제 현실에서는 한 인간의 영혼의 죽음,


사회적 죽음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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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 가족이 파멸로 치닫는 순간은


신분 상승에 대한 모든 시도가 실패했을 때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기택 가족은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사실


거짓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그들은 박 사장의 집에 들어옴으로써


박 사장에게 속한 존재로 여기며


박 사장 가족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운명 공동체로 여겼으나,


사실 그들은 조금도 박 사장 가족의 삶에


가까워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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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의 생일파티에서 기우가 다혜에게


“나 잘 어울려?”라는 자조적 질문을 던질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이 계층과 어울리지 않음을 알고 있다.


기우는 쿨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세계가 아닌


하층 계급의 악다구니 속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태생부터 정해져 있던


기우의 운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따라


전투를 치르기 위해 수석을 들고


지하의 근세에게 다가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문광과 근세를 죽였으나,


그가 의도한 것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 가족의 정체가 탄로나며


이전처럼 박 사장 가족에게


기생할 수 없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를 잃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이


자신들의 진짜 적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눠


설사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 승리로 그들이 원했던 바를


성취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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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부르주아 계급을 살해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시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이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건


내면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인해


결국 다같이 파멸에 이르게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폭로한 것일 뿐이다.



이 영화는 계급적 투쟁이 아닌


그저 자본주의라는 안개 속에 갇힌


개개인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결말부에서


많은 것을 잃은 기우는 기택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대학, 취직, 결혼, 뭐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라는 기우의 마지막 편지글은


흡사 연애, 결혼, 취직, 꿈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오로지 돈을 벌라는 자본주의의 명제 하에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의미심장하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크고 작은 차별과


상처를 받으며


돈을 많이 벌어 계층 상승을 이루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문제의 원흉이 자본주의에 있었는데,


자본주의에 뜻에 따른다는 이상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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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말미에서 기우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계단을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가.


아마 기우가 그 혼자서 반지하의 계단을 올라


지상에 발을 딛기까지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 기우는 비현실적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비양심적인 계획에 기반한


처절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지독한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돈,


그 하나 뿐일 것이다.



언제나 승자는


인간이 아닌 물질과 자본이라는 사실,


그것이 모두가 패자인


돈의 시대의 유일한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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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지독한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돈, 그 하나뿐일 것이다.


언제나 승자는 인간이 아닌


물질과 자본이라는 사실,


그것이 모두가 패자인 돈의 시대의


유일한 법칙이다.




@온달


앨범 <태양의 풍속> 작사, 작곡, 노래


앨범 <Like stars> 작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스토리작가 당선


네이버 웹툰 <이번 생은 케이팝 리벤지> 스토리 작가


종이책 소설 1권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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