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화 '버닝' 읽기

by 온달

10대 시절, 묵직하고 그럴싸한 제목에 이끌려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얼마 전 다시 읽었다.

소설을 처음 접했던 시점으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비로소 이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짜릿한 감격을 느끼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충돌하던 시기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우며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현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대응해서 살펴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제기하고 있는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영화 <버닝>을 떠올린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버닝>에는 한국 청년의 대표성을 지닌 다양한 인물 셋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가벼움과 무거움’, ‘키치’ 등의

개념을 통해 읽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크게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은 도입부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한 가벼움과 무거움의 문제를 제시한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는 “무거움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해 니체와 파르메니데스는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는데,

그 차이를 살펴본 뒤 키치의 개념은 이후에 살펴보고자 한다.

소설 초반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 인생의 매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회귀의 세계에서는 일상의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안게 된다.

이 때문에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가장 무거운 짐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오늘 선택한 점심 메뉴나 직업, 인간관계 등이

100년, 200년 뒤에도 끝없이 반복된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매 순간의 선택이 무겁고 두려워 아무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영원회귀는 삶에 무거운 짐을 부여하는 사상이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을 빛과 어둠,

두꺼운 것과 얇은 것,

뜨거운 것과 찬 것,

존재와 비존재와 같이 반대되는 쌍으로 나누어 바라보았다.


그는 이 모순의 쌍 중 한쪽은 긍정적이고

다른 한쪽은 부정적이라 여겼으며,

그 속에서 가벼움을 긍정적 속성으로, 무거움을 부정적 속성으로 규정하였다.


파르메니데스의 이 같은 이분법적 사유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제시한다.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삶은 더욱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짐이 전혀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며,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가벼움은 자유로움을 주지만 무의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쿤데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극단적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가벼움과 무거움은 어느 한쪽이 우월하지 않은 상호보완적인 속성임을 말하고자 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틀에서 구분 지어 볼 수 있다.

먼저, 가벼운 인물로는 토마시와 사비나를 들 수 있다.



토마시는 잘 나가는 외과의사이자 다수의 여성을 만나는 인물로,

테레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벼운 삶을 살아간다.


그는 테레자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그녀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여성들과의 만남을 멈추지 않는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애인이자 이후 프란츠의 연인이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일관되게 책임을 회피하며, 독점적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프란츠가 자신과 유일무이한 관계를 맺고자 하자, 놀라며 말도 없이 떠나버리기도 한다.


반면 무거운 인물로는 테레자와 프란츠가 있다.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며, 삶과 사랑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한다.

교양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늘 책을 가까이하며 지적 세계로 도약하려는 열망을 품는다.

그녀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으며, 토마시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해 고통받는다.



프란츠는 신념을 중시하고,

정치적 행동이나 의료봉사 등 사회적 의미를 지닌 활동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그는 사비나를 이상화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일을 자처하다가 결국 분쟁 지역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는 삶에 막중한 무게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처럼 초반에는 인물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의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시각에 따르면 토마시와 사비나는 긍정적인 인물, 테레자와 프란츠는 부정적인 인물이 된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인물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며, 단일한 속성에 고정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사비나는 가벼움을 추구해 온 인물이지만, 토마시가 떠날 때 양말을 숨기며 질투심을 드러낸다.

프란츠와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자유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 끝에 느낀 것은 공허였다.

그녀는 자신이 벌인 모든 배신의 여정이 실은 공허를 향한 도피였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 말미에서 사비나는 토마시와 테레자가 교통사고로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그들은 행복했다”는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프란츠와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후회한다.

이는 그녀가 자유와 가벼움만을 좇다가 마침내 무거움을 삶에 들이고 싶어 졌음을 의미한다.


토마시 또한 여성 편력을 끝마치고,

테레자와 함께 시골 농부로 살아가며 사랑과 신념을 위해 기존의 지위를 기꺼이 포기한다.

그는 더 이상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테레자 또한 변화한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당위적 믿음을 지녔지만,

토마시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무거운 기대와 집착을 내려놓는다.

그녀는 무거움을 덜 어내며,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인물들은 기존의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속성에서 일부를 덜어내며 변화를 맞는다.

이 변화는 가벼움이 무거움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두 속성의 균형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테레자와 토마시는 삶의 무게와 가벼움을 모두 경험한 뒤,

죽음이라는 안식에 이른다. 이는 인간 삶의 총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며,

결국 두 속성이 모두 삶에 필요함을 깨닫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숙이며, 안식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다면 테레자는 어떻게 무겁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바로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고방식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베토벤의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필연과 당위성을 상징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필연이 사실은 무수한 우연의 결과임을 말하며, 당위적 사고에 대해 비판한다.


테레자는 사랑에 대한 당위적 믿음, 즉 진지하고 운명적인 사랑,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결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토마시가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

즉 타인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써 테레자는 ‘무겁지 않은 사람’이 된다.


이때 테레자가 내려놓은 것이 바로 ‘키치’이다.

밀란 쿤데라는 키치를 인간이 외면하고 싶은 삶의 진실한 요소,

즉 추하고 불편한 현실의 부정이라 말한다.

키치는 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뜻한다.


냉전이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키치로 등장한다.

싸구려 감성, 형식화된 신념, 위선적 가치들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키치는 무엇일까? 대다수가 동의하고, 아름답게 포장된 가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 자유롭고 행복한 청춘, 이상적인 가정, 순수한 사랑 등이 떠오른다.



이 질문을 품은 채, 다음 글에서는 영화 <버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온달


앨범 <태양의 풍속> 작사, 작곡, 노래


앨범 <Like stars> 작사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스토리작가 당선


네이버 웹툰 <이번 생은 케이팝 리벤지> 스토리 작가


종이책 소설 1권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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