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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Jun 08. 2019

벨 에포크, 그리고 매킨토시

화려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도시, 글래스고 ②

 ①, ② 로 표시되는 것은 주석입니다. 


앞선 글에서 나는 글래스고가 스코틀랜드의 영광, 그리고 좌절을 한 몸에 품고 있는 도시라고 규정했었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는 아마 그런 느낌의 도시, 글래스고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①② 마침 지난해는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③ 


Charles Rennie Mackintosh  https://www.npg.org.uk/collections/search/portrait/mw150575/Charles-Renn



유럽에서 세기말 세기 초, 그러니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기간을 '벨 에포크(Belle Époque)'(Belle Époque)라고 부른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미술과 음악, 문학이 꽃을 피우고 영화와 자전거, 백화점, 기차 등 '도시'를 특징짓는 요소들이 모두 갖춰졌던 시기다. 한마디로 '좋았던 시절' 같은 의미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제중심 글래스고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에든버러가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들로 특징 지워진다면 뷰캐년 스트리트(Buchanan Street) 등 글래스고의 중심거리는 멋스러운 당시 지어진 건물들로 가득하다. 


뷰캐년 스트리트 ⓒSungjoo Lee

찰스 레니 매킨토시(1868~1928)는 이 시기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다. 그를 검색하면 흔히 '아르누보'(Art Nouveau)가 함께 키워드로 거론된다.④ 아르누보를 세기말 세기 초에 나타난 한 사조라고 이해한다면, 매킨토시는 그 시기의 특징들의 일부를 - 예술과 기술이 맞닿아 어울리는, 장식적 곡선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매킨토시는 1884년 건축가의 도제로 일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885년부터 글래스고 미술학교 야간강좌에 입학했다. 1889년 건축 설계사무소 제도사로 입사해 1904년 파트너로 참여했다. 그는 1890년대에 건축, 실내 디자인, 그리고 가구 분야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개발했다. 


매킨토시 건축물의 특징은 건축과 가구를 포함한 내부 장식이 '맥락이 연결된 하나'로 존재한다는 점인 것 같다.       Mackintosh Church @Sungjoo Lee 


이후 자신의 부인이 되는 마가렛 맥도널드 맥킨토시(Margaret Macdonald Mackintosh)와 함께 이른바 "4인조(The Four)"의 리더로 활동한 뒤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짧은 기간 뷰캐년 스트리트의 라이트하우스(Light House)등 많은 건물들을 설계하고 그 이후 가구 디자인과 장식에 몰두하다 나중에는 건축을 포기하고 프랑스 Port Vendres로 이주해 수채화를 그렸다. 


Margaret Macdonald Mackintosh


그는 유럽 아르누보에서 특징적인 '곡선적 윤곽과 복잡하게 얽힌 장식'에 휩쓸려가기보다 실내 디자인에서 '상큼한 수직선과 분명한 공간분할'을 선호했다. 전술한 대로 그는 아르누보에서 거론되지만 정작 아르누보의 전형성에서는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건물의 디자인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건물의 외부와 실내 장식을 통일시키려고 시도'한 지점, 특히 '장식 문법'에서는 글래스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세기말 세기 초 화려했던 글래스고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쇄락의 길을 걸었던 쓸쓸한 글래스고의 상징인 것이다. 방문 목적이 관광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주어진 짧은 시간에 매킨토시를 중심으로  글래스고라는 도시를 살펴보기로 했다. 



라이트 하우스(Light House) 


글래스고의 중심가에 해당하는 뷰캐년 스트리트에 위치해 있다. 매킨토시에 관한 전시관도 있고 글래스고의 매킨토시 관련 건물들을 정리해놓은 브로슈어를 받을 수 있어서 첫 번째 방문지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사전 정보 없이 갔다가는 헤맬 가능성이 있다. (내가 그런 경우였다.) 


좌측으로부터 ① 라이트하우스 전면 ② 라이트하우스 입구가 있는 골목 ③ 라이트하우스 간판  ⓒ Sungjoo Lee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건물의 앞면은 1층 상점이 폐업했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라이트하우스는 원래 1895년 지역신문인 글래스고 헤럴드(Glasgow Herald) 건물로 지어져서 1980년까지 사용됐는데, 이후 글래스고 시가 넘겨받아 박물관 용도로 쓰기 위해 건물 후면 공간에 에스컬레이터 등을 증축했다. 그러니까 박물관 입구는 증축된 건물 후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원래 건물(오른쪽)과 덧대어 지어진 추가 건물(왼쪽)을 보여주는 모형       ⓒSungjoo Lee

라이트하우스 3층에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를 조명하는 박물관이 있고, 그 박물관을 통해서 첨탑으로 올라가는 문이 자리 잡고 있다. 첨탑은 나선형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덧댄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이 엘리베이터 6층에도 전망대가 있지만 첨탑으로 올라가는 길과 연결되어있지 않다. 

 

라이트하우스 첨탑 나선형 계단 ⓒ Sungjoo Lee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글래스고 시내를 360도로 전망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흐린 날도 그런대로 좋았다. 


라이트하우스 첨탑에서 바라본 글래스고 전경 ⓒ Sungjoo Lee


글래스고의 지배자는 갈매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그들은 자리 잡고 있었다. ⓒSungjoo Lee



차를 즐길 수 있는 매킨토시의 공간

(Mackintosh at The Willow) 


뷰캐년스트리트에서 쇼핑거리를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St George's Tron, Church of Scotland와 The Glasgow Royal Concert Hall을 볼 수 있다. 콘서트홀을 정면으로 보고 왼쪽으로 틀면 넓게 트인 보행자 전용 도로가 나온다.  Sauchiehall Street이다. 거기에서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Coldplay Scientist, Sauchiehall Street Musician in Glasgow ⓒ Sungjoo Lee


내가 걸었던 길을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짧은 시간에 글래스고를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루트가 아닌가 싶다. ⓒ  Sungjoo Lee



그 보행자 전용도로가 끝날 때쯤 길의 왼쪽으로 매킨토시 앳터 윌로우(Mackintosh at The Willow)라는 건물이 서있다. 건물 외벽은 희고 전체적으로 선이 단순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장식적이다. 


Mackintosh at The Willow ⓒ Sungjoo Lee


건물의 내부, 창가 자리가 가장 환하고 아름다웠는데 아쉽게도 예약을 하고 오지 않은 손님은 건물의 가장 안쪽으로 안내되는 것 같았다. 유명한 장소여서 그런지 두 번을 갔었는데 늘 사람들이 많았다. 매킨토시의 건축물의 특징이지만 건물 자체는 물론 건물 구석구석, 그리고 건물 안에 놓인 가구까지 하나의 세트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모든 테이블에는 매킨토시 가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높은 등받이 의자(High Backed Chair)와 유사한 디자인의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혼자서 갔지만 그래도 차 한 잔은 먹고 가야겠다 싶어서 점원의 추천을 받아 Russian Caravan이라는 차를 마셨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 생각에 마음이 급해 충분히 즐기지 못했는데, 만약 관광으로 온다면 미리 예약을 하고 2~3시간 정도 창가 자리에서 햇빛을 받으며 여유를 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옆에 기념품 매장도 있었다. 




공사 중이어서 아쉬웠던 곳

School of Art 


다음 방문지는 1896년에 지어진 School of Art 였다. 라이트하우스에서 받은 리플릿에 따르면 이 곳은 건물도 멋지지만 매킨토시와 관련된 전시물도 많고 가이드 투어도 할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비가 많이 내렸다. 게다가 라이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작은 사고(첨탑에서 사진을 찍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려 자유낙하 끝에 '완파'되었다.)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푹 젖은 신발을 끌고 갔던 그곳에 내가 보려고 했던 건물이 없었다. 정말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대신 커다란 고치를 쓴 것 같은 건물이 있었다. 하필 보수 중이었던 것이다. 


Glasgow School of Art

작년이 150주년 기념일이었다면서 왜 이때 보수공사를 한다고 난리일까 궁금해했는데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고 작년에 매우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에 불이 나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물 곳곳이 소실되었던 것이다. ⑤  불이 나기 전 School of Art의 모습은 BBC의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사연을 알 바 없는 나는 그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는 건물에 들어가 '매킨토시 관련한 전시물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라고 질문을 했다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듣고 매우 실망하고 낙담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건물 1층에 전시된 공예품들을 둘러봤다. 





매킨토시 하우스

The Mackintosh House  


매킨토시 하우스는 원래 매킨토시 부부가 살았었던(1906~1914) 집으로 78 Southpark Avenue에 있었다. 지금은 당시 위치 건물이 부서지고 없지만 내부 도면과 가구, 장식 등은 모두 보존이 되어 있어서 당시 꾸몄던 그대로 글래스고 대학에 재현해놓았다.


실제 매킨토시 하우스 : https://www.gla.ac.uk/hunterian/collections/permanentdisplays/themackintoshhouse/
글래스고 대학에 재현한 매킨토시 하우스 ⓒ Sungjoo Lee

매킨토시 하우스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관리요원이 방마다 서 있고, CCTV 카메라도 곳곳에 장착되어 있다. 아쉬운 대로 팸플릿에 있는 사진을 카메라로 찍어서 올려놓는데,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면 더 선명한 사진을 볼 수 있다.



매킨토시 하우스는 선이 날쌔고 간결한 듯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어느 하나 그냥 버려두고 방치한 곳이 없는 장식적인 구도를 보인다. 가구의 경우 직선, 여닫이문 등 실용성도 돋보였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재개장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특히 출입문쪽이 았는데 매우 작은 직육면체의 공간에 옷걸이 우산 꽂이 등을 합리적으로 배치되어 좁은 느낌이 없이 어울렸고, 작은 정사각형들이 나란히 연합한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공간 안을 조화롭게 비춰주고 있었다. 


매킨토시 하우스가 재현된 곳은 글래스고 대학 헌터리안 박물관(The Hunterian, 82 Hillhead Street, glasgow g12 8QQ)이다. 이곳에는 회화 전시회들이 열리고 있어서 함께 관람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방문할 당시에는 The Gernan Rev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표현주의 판화(expressionist prints)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Disparate Matrimonial, Francisco Goya y Lucientes ⓒ Sungjoo Lee


헌터리안 박물관 외에도 글래스고 대학에 볼 것이 많다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없었던 탓에 나는 그저 외경 정도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돌을 재료로 건축을 한 탓에 몇 백 년씩 된 유서 깊은 건물들을 지금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 부러웠다. 


백파이프와 전자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구성된 연주자들 @ Sungjoo Lee
글래스고 대학의 건물들 @ Sungjoo Lee




매킨토시가 설계한 교회 

Mackintosh Church


글래스고 대학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매킨토시가 설계한 Mackintosh Church가 나온다. 걸어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거리다. 


글래스고 대학과 매킨토시 처치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매킨토시 하우스를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는 아쉬움 때문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상황이어서 외경은 좀 아쉬웠지만 내부 곳곳을 쏘다닐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가구들을 만져볼 수도 있었다. (매킨토시 하우스에는 가구에 손을 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4파운드의 입장료를 내야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Mackintosh Church 외경 @ Sungjoo Lee
Mackintosh Church 내부 @ Sungjoo Lee


내가 글래스고에 머무는 동안 개인 날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짙게 흐리거나 비가 내렸다. 


도시의 인상은 많은 부분 날씨가 결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고풍스러워 아름답게'느낄 수도 있는 건물이 '칙칙하고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는 세를 놓거나 판다는 팻말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는 가게가 많았다. 나는 질컹거리는 신발을 끌고 빠른 걸음으로 그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글래스고는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둡게 생을 마친 매킨토시를 닮았다. 거리에는 19세기 기준으로 호황 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그렇게 과거의 영광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지금의 글래스고는 쓸쓸했다. 


물론, 날씨가 맑았다면 내 감상이 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숙소 근처에 방치된 건물. 공연장으로 쓰였을 것 같은데 지금은 문을 닫고 비어있다. @ Sungjoo Lee
The School of Art 인근의 폐업한 상점 @ Sungjoo Lee


( 글래스고의 Merchant City와 글래스고 인근 Inveraray Castle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찰스_레니_매킨토시 #라이트하우스(Light House) #Glasgow_School_of_Art #Mackintosh_House  #Mackintosh_Church


① 찰스 레이 매킨토시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Rennie_Mackintosh 

② 미술이나 건축 쪽을 공부하지 않은 나로서는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애플 매킨토시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런데 관계가 없다. 애플이 쓰는 매킨토시라는 이름은 사과 품종 '매킨토시 레드'(Mcintosh Red)에서 왔다.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18/10/629603/ 1979년에 매킨토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제프 라스킨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과 품종의 이름을 붙였다. 애플이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 그전부터 같은 이름을 쓰고 있던 앰프 생산업체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러나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③ 2018년은 매킨토시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였다. 

http://casaliving.co.kr/brand/contents/view.do?articleNo=11924&schCd=0105010000&depth=2

④ 아르누보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이 쉽고 잘 정리되어 있다. 

⑤ 화재 관련 BBC 기사 https://www.bbc.com/news/uk-scotland-glasgow-west-4554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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