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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Jun 21. 2016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Reviewsdot_book #1


극단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


캐스 R.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이끌리는가 ; Going to Extremes]는 사회심리학 연구서나 이론서가 아니다. 결론부에 등장하는 ‘극단주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소제목이 웅변하듯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우리 사회나 우리가 속한 집단이 어떤 경로, 어떤 매커니즘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지 성찰하게 하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는 생각이다. 선스타인은 이 책을 통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만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속도와 폭으로 미디어환경을 바꿔놓고 있는 인터넷·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20세기 초 인류가 겪었던 ‘극단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한 처방전을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선스타인은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극단화를 몇 가지 실험 사례에서 살펴보고, 극단화가 일어나는 메카니즘을 ‘정보의 힘’, ‘확증의 힘’, ‘평판의 힘’, ‘권위의 함정’, ‘폭포효과’ 등으로 분석한다. 이후 실험실 밖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반대운동, 서브프라임 위기, 민족화, 테러리즘 등을 ‘극단화’의 렌즈로 살펴본다.


이러한 그의 접근은 파시즘, 러시아 혁명, 1·2차 세계대전을 목격한 뒤, ‘절대 선’으로 받아들였던 ‘인간의 이성’에 대해 비판적 사고의 메스를 들이댔던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막시즘에 뿌리를 둔 비판이론으로 다가간 접근이었다면 선스타인은 사회심리학에서 즐겨 사용하는 ‘통계와 실험의 정량적 접근’을 통해  나아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매개거나 촉발한 집단행동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돌출적으로, 그러나 ‘더 잦은 빈도’로 등장하고 있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볼 때 선스타인의 ‘우려 섞인 시선’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과 예외 없이 관계를 맺고 있다.


세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데 활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IS에 몸 담고 있었던 25세의 시리아 여성 ‘하디자’는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인터넷을 통해서 IS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1) 하디자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IS에 가담했다. IS는 자신들의 활동상을 홍보하는 데에도 이런 서비스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한 덴마크 소녀가 IS의 참수영상을 보고 모친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2) 트위터는 지난 3월 IS관련 계정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3)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속성상 ‘완벽한 차단’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 반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에 의해서 집단의 의견이 ‘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되는 사례도 목격됐다.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2010년 12월 이후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가 그런 사례다. 위키피디아는 ‘아랍의 봄’을 설명하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조직, 의사소통, 인식확대를 통해 광범위한 시민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다.”고 언급하고 있다.4)


당시 대부분의 기성 언론들은 사실을 외면했으며 정부는 알 자지라나 CNN, BBC, NYT와 같은 해외 언론의 취재를 저지했다. 이집트에서는 알 자지라의 등록을 취소하고 수 명의 스탭을 강제 억류했다. 바레인의 경우도 헬기가 기자를 향해 사격하는 일이 생겼다.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사진 및 영상이 전해졌고 시위의 일정도 전파됐다. 정부는 당시  SNS의 접속을 차단하며 아예 인터넷을 차단하기도 했고, 이를 우회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강구되었다. 구글에서는 이집트의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개발자들이 모여서 Speak2Tweet 서비스를 만들어서 정해진 전화번호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 #egypt의 꼬리표를 달고 트위터로 글에 올라가는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다.5)


홍콩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도 마찬가지다. BBC World의 통신원인 양첸하오(楊虔豪) 기자는 “당시 운동원(시위대)은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서 매일의 활동일정과 최신상황을 배포했다. 대만에서는 카카오톡보다 라인을 더 많이 쓰는데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면서 이런 메신저 서비스들이 갑자기 차단되었다. 그래서 운동원(시위대들)이 시 텔레그램 메신저를 더 많이 썼다.”라고 말했다.6) 기사에 따르면 시위대는 SNS를 차단하려는 중국정부에 맞서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고 블루투스로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 ‘파이어챗’ 앱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7)


세 가지 사례는 같은 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즉 선스타인이 책의 앞 부분에서 제시한 사례에서 보듯 △ 집단이 있고, △ 그 집단 안에서 ‘평판의 압력’과 ‘수사적 이점의 편향 효과’가 나타난다. △ 결국 집단은 강하게 묶여(in-group love) ‘반향실’(echo chamber) 안에서의 효과가 벌어진다.8)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9)를 지나 ⓵ 참수나 문화재 파괴10), ⓶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요르단,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등으로 폭포수처럼 퍼져간 시반정부 시위, ⓷ 노란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고 시위 현장에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동생들의 공부와 숙제를 도와주는 특이한 행태 등을 만들어냈다. △ 여기에 중요한 ‘매질(媒質)’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이 작용했다.



집단의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저자가 ‘극단화’(going to extremes)라고 표현한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은 우리가 그 단어에서 느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다.11) 그래서 오히려 ‘극단화’ 보다는 ‘극화’(polarization)나 인식 내용의 ‘증폭’(amplification)이라는 용어로 치환해서 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용어를 어떻게 설정하던 간에,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집단’의 인식 프로세스(cognitive process)가 과연 어떻게 진행되고 결과(극화된 결과)를 낳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핵심요소 1 - 정보


이 책이 중요도에 관해 순위를 매겨 표현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읽히는 것은 ‘정보’12)이다. 정보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완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13)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면 보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부시 정부가 집단극단화를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부추긴 것도14) 같은 이유이다. ‘절름발이 인식’(crippled epistemology)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15)


반면 구성원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어떤 사실관계에 대해 정답을 – 정확한 정보를 - 알고 있다고 확신할 때, 그 집단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레카 문제’(Eureka Problems)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16) 제임스 피시킨의 ‘공론조사(deliberative opinion poll) 실험’이 다른 실험과 차이를 보였던 이유도 결국 실험 참가자들에게 양쪽 입장을 뒷받침하는 상세한 정보와 객관적인 설명을 – 정보를 – 제공했기 때문이다.17)


뒤집어 보면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18)은 인간이 정확한 정보, 옳은 정보에 대한 감수성이 제거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실험이다. 즉, 전문가의 권위는 실험에 참가한 개인에게 정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무작정 행동하도록 했고, 이는  바로 옆방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생생하게 경험하면서도 (물론 조작된 실험이지만) 전기충격을 멈추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민주국가에서는 여러 정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의 주장은 비논리적이라는 게 금방 드러나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19)면서, 극단주의를 막는 방법으로도 견제와 균형, 표현의 자유와 관점의 다양성을 제시한다.20)


핵심요소 2 - 편향동화


그렇다면 우리는 편향동화(biased assimilation)21)의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만약 ‘사실관계에 대한 정답’이 집단의 극단화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가정한다면22)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은 강력한 증거들이 있어도 무시해 버리고, 자신의 입장과 어긋나는 정보들이 수두룩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한 선전물로 간주해버리는, 기존의 애착과 두려움, 판단, 선호를 고정시킨 채 그와 배치되는 정보가 많아도 기존 입장에 대한 확신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들의 태도23)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편향동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감정이나 동기 때문에 왜곡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중략) 자기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지적인 부조화를 줄이고 싶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조화를 이루는 정보를 믿고, 그런 종류의 정보를 찾는다.”24) 리프만(Lippman) 또한 사람들은 우리 머리속의 그림(pictures in our heads)을 근거로 의견을 형성하고 이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사태를 왜곡하는 요인들’이 끼어든다고 밝힌바 있다.25)


선스타인은 다음 페이지에서 이 문제를 9.11에 관한 음모론으로 연결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음모론’은 저자가 말하는 ‘Going to Extremes’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과정 - 프로세스에 있어서도 ‘옳은 정보를 제공하나 받아들이지 않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극단화 과정의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정론(神正論, theodicy) vs 음모론


음모론은 사실 사회심리학 밖의 다른 학문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사회학자인 전상진은 사회학, 특히 막스 베버의 오래된 분석틀 – 신정론 - 으로 음모론을 바라본다.26) 그는 ‘일관되지만 과학적으로 옳지 않은 상징체계’인 ‘신정론’의 자리에 ‘음모론’을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음모론을 유비적(類比的)으로 “올바른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이라고 정의한다.


전상진은 리처드 세넷의 말을 인용하면서27) “기본적으로 음모론은 올바른 질문을 제기한다. 왜 서민들은 고통을 겪을까? 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할까? 왜 불평등은 커져만 가는가? 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날까? 공공 영역은 이에 침묵한다. 텅 비어버린 공공 영역은 답변은커녕 질문도 하지 않는다. 오직 상상의 해결책들이 고통과 곤경의 원인을 묻고 답한다. 그중 하나가 음모론이다.”28)라고 말한다. 즉 인지부조화29)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행동이 음모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스타인의 기획이 주로 미국의 시각에서 현실에서 나타나는 극단주의적 행태를 분석하고, 그 내부의 원리를 규명해 ‘위협요소’를 제거해 보자는 것이라면, 전상진의 기획은 한국적 현실에서 ‘창궐하고 있는 음모론’의 이면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열광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상진은 “지적인 부조화를 줄이고 싶어서”라는 선스타인의 말한 편향동화의 핵심 작동구조를 동일하게 짚으면서도 전혀 다른 사례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이라크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이른바 “매닝 메모”에 의해 부시와 블레어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침공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확인됐다. ‘대량살상무기와 관계없는 전쟁’은 음모론이었으나 나중에 ‘사실’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30)


‘에이즈 음모론’과 관련해서도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미국은 ‘최근’이라 말할 수 있는 1972년까지도 앨러바마의 터스키즈 대학에서 한 탐사기자의 폭로가 있기까지 40년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 600명을 대상으로 매독의 진행과정을 연구했으며, 당연히 실험대상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31) 다시 말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에이즈 음모론’을 믿고 국가를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지적인 부조화를 줄이는 길이고 개인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뜻이 된다. 영화 컨스피러시(1997)의 주인공들도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또 ‘음모론’이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며, “약자의 무기일 수도 있지만 억압의 망치32)로도 쓰일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미국이나 서구의 인종주의자들은 음모론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한다.”고 지적한다. 즉 음모론는 지배세력, 혹은 지배세력의 편에 의해서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는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엄청난 보상금을 받으려고 떼를 쓰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었고, 이 루머가 시작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애초에 특정집단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루머를 생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33)



천안함 사건과 음모론


구글에서 conspiracy theory 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무려 1천650만개의 결과 값이 나온다. 결코 적지 않은 값이다. 최근 10년간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었던 우리 사회는 많은 ‘음모론’도 함께 경험했다. 사회심리학적 입장에서 매 사안을 들여다봤던 것은 아니지만, 선스타인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사회에서 발생하고 사라진, 혹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음모론들은 공통점이 있다.34)


천안함 침몰 사건(2010.3.26.)이 터졌을 초기, 우리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 짓지 않았다. 이후 “북한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국방부의 발표가 나왔고, 29일 미국 국무부는 “대한민국의 판단에 맡기겠다. 배 자체 이외의 다른 요인에 대해 미국이 알고 있는 바는 없다.”고 답변했다.35) 그러나 그 이후 다국적 조사단의 조사가 실시되고 그 결과, “북한의 어뢰공격” 이라는 공식 조사결과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음모론이 등장했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다. 현재 그와 관련해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36)


당시 외교안보 담당 데스크로 이 사건의 진행을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관찰했던 입장에서 볼 때37), 천안함 사건은 앞서 선스타인이 그의 책에서 제시했던 극단화의 메커니즘, 그리고 전상진이 언급하는 “올바른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이라는 표현을 충족시키고 있다.


정보


△ 우선 천안함 침몰 문제는 ‘유레카 문제’(Eureka Problems)가 아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폭발’이라는 해석이 가장 근접한 답이지만 완전한 답은 아니다. △ 그러나 정부(특히 사건 초기 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고 분명한(진실한) 답을 내놓으려고 하기 보다 스스로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작은 진실’을 감추는 행동을 여러 차례 보였고38) 결국 사람들에게 ‘큰 진실’에 있어서 ‘정부가 무엇인가 감추려고 한다.’ ‘어떤 사실을 조작하려 한다.’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 그래서 이른바 ‘1번 어뢰’ 등 정부가 제시한 거의 모든 증거들에 대해서 각각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이 별도로 생겨나 유통되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 군과 정부는 정보를 통제하려 애썼고 그 일환으로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는 극비에 부쳐졌다.39) 심지어 △ 팩트에 맞는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서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통제를 가했다. △ 공영방송 내부에서도 이 천안함 취재와 관련된 여러 가지 내부 문제(통제)가 발생했다. △ 기존 언론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공론의 장’을 만드는데 실패하자 트위터나 블로그 등의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음모론’이 생산되고 증폭되는 ‘매질’(媒質)이 되었다.


편향동화


국가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초기 조건은 같지만, 우리사회는 거칠게 보자면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이 천안함 케이스를 인식했다. 그 두 개의 그룹은 각각 다른 “기존의 애착과 두려움, 판단, 선호의 체계”를 가지고, 편향동화에 최적화된 인터넷 게시판(아고라, 일베, 오유)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매우 전형적인 극단화를 경험했다.


정부가 내놓은 답과 같은 방향의 생각을 갖고 있는 집단은 천안함 문제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지만, 또 다른 집단은 여전히 이 문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심의 민주주의(숙의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역할


피시킨의 공론조사와 관련해서 선스타인은 세 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우선 사회자가 ‘토론에서 개방성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고, △두 번째로 ‘실험 참가자들에게 양쪽 입장을 뒷받침하는 상세한 정보와 객관적인 설명을 제공’했으며, △마지막으로 연구 참가자들은 ‘의도적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40)


잘 알려진 대로 대중(public)과 공론(public opinion)에 관해 리프만과 듀이는 서로 다른 접근을 한다. 리프만이 좀 더 비관적으로 보았다면 듀이는 공동체를 통해 공론(public opinion)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리프만에게 역시, 저널리스트의 적극적인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즉 리프만이 바라보는 세계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정치 엘리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고, 엘리트에 대해서 감시견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권력관계(power chain)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다. 그들의 의사를 투표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In Lippmann's world, the journalist's role was to inform the public of what the elites were doing. It was also to act as a watchdog over the elites, as the public had the final say with their votes. Effectively, that kept the public at the bottom of the power chain, catching the flow of information handed down from experts and elites.41)



여기서 다시 선스타인으로 돌아가자. 그의 실험의 의미를 대중(public)과 여론(public opinion)의 형성과정으로 확장해 본다면 세 번째 지점, 즉 연구 참가자들의 태도는 수용자인 대중, 그들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지점은 저널리즘과 언론인의 역할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리프만의 세계이건, 아니면 듀이의 세계이건 간에42) △ 저널리즘은 공공의 장이 형성되도록, 다른 말로 하면 다양성을 겪을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하고 △ 대중이 ‘상세한 정보와 객관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이뤄졌을 때, 그리고 정부가 이런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그 사회에서 ‘음모론’ 혹은 극단주의적인 의사결정이 발붙일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에서 선스타인은 이렇게 말한다.43) 나는 그의 이 말로 이 글을 맺으려 한다.


1980년대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마크 폴러 의장은 이런 말을 했다. “텔레비전은 그저 하나의 기기일 뿐이다. 화면이 나오는 토스터와 다를 바 없다.” 만약 대중매체가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을 줄이기보다는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인쇄매체나 방송매체, 그리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자기 격리(self-segregation) 현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 이 글은 2017년 5월에 작성되었습니다.


1) 헤럴드경제, <초등학교 교사였던 20대 여성 IS 대원 된 사연>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41007000733

2)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16/0200000000AKR20150916038500009.HTML

3) http://www.huffingtonpost.kr/2015/03/04/story_n_6796662.html

4) https://ko.wikipedia.org/wiki/아랍의_봄

5) < https://namu.wiki/w/2010-2011%20아랍권%20민주화%20운동 >의 두 단락을 요약.

6) https://www.facebook.com/mworld24

7) 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44

8)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p.79

9) 같은 책 p.89

10)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3/08/0200000000AKR20150308012900009.HTML

11)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제 5장에 모순적인 단어를 병렬시켜 ‘착한 극단주의’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12) <극단> p.40 ,

13) 위의 책 p.42

14) 위의 책 p.51

15) 위의 책 p.65

16) 위의 책 p.71

17) 위의 책 p.85

18) 위의 책 p.91

19) 위의 책 p.159

20) 위의 책 p.175

21) 위의 책 p.78

22) 물론 모든 문제가 ‘유레카 문제’일 수는 없고, 모든 사회적 현상에 정답이 존재할 수는 없다

23) 위의 책 p.78

24) 위의 책 p.80

25) http://wps.pearsoncustom.com/wps/media/objects/2429/2487430/pdfs/lippmann.pdf

26) <음모론의 시대> 전상진 , 문학과 지성사 2014년

27) 위의 책 p.215 리처드 세넷, <현대의 침몰>, 김영일 옮김, 일월서각 1982에서 재인용

28) 위의 책 p.217

29) https://ko.wikipedia.org/wiki/인지부조화

30) 위의 책 p.55

31) 위의 책 p.120

32) 저자는 여기서 ‘망치’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하인리히 크라머가 1486년 쓰고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마녀의 해머 Malleus Maleficarum>에서 빌려온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33) http://newstapa.org/24482

34) <극단> p.152

35) http://www.state.gov/r/pa/prs/dpb/2010/03/139201.htm

36) 음모론 뿐만 아니라 관련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836

37)

http://reportplus.kr/?p=618

38) 사건의 발생 시각과 침몰 지점의 좌표, TOD 영상의 존재 여부, 관측병 진술의 불일치 등  

39)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432224.html

40) <극단> p.84~85

41) https://en.wikipedia.org/wiki/Journalism

42) 어떤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들이 듀이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통되는 정보가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량을 추월하고 압도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혹은 소셜 미디어들은 오히려 ‘반향실’(echo chamber) 안에서의 효과를 더 크게 한다고 본다.

43) <극단>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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