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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Aug 06. 2016

피렌체 폰테 베키오 - 단테, 그리고 사랑

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16 폰테 베키오

그녀의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감미롭고 낮은 천사의 목소리요 음악이었다.
Alighieri Dante, <신곡>    




단테(1265~1321)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 만남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운명과도 같았다. 단테는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단 한순간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는 것이 그에겐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어느 봄, 단테는 낙심한 표정이 되어 산타트리니타 다리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그런데 폰테 베키오(폰테는 다리라는 뜻이다.)에서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베아트리체였다. 9년 만의 만남이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짝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얼어붙은 듯 단테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못했다. 

 

Henry Holiday 1883,  oil on canvas


단테의 사랑이야기에 등장하는 베키오 다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8살 젊은 단테의 심장에는 그렇게 베아트리체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그는 그토록 베아트리체를 사랑했지만 정작 결혼은 다른 사람과 했다. 기록에 따르면 1285년 그러니까 베이트리체와의 두 번째 만남이 있은지 2년 후 젬마 도나티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베아트리체는 1287년 은행가인 시모네 데이 바르디와 결혼한다. 


(c)Storypop 


문학수업에 열중하던 단테는 3년 뒤, 베아트리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단테의 첫사랑, 그리고 이뤄지지 않은 사랑, 천상으로 가버린 사랑. 단테의 내면은 강렬한 사랑의 빛으로 타올랐다. 베아트리체는 등불처럼 현실에서, 그의 작품 안에서 단테를 이끌었다. 


나는 여행 전에 전자책으로 단테의 <신곡>을 내려받았다.  신곡과 단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하자. 

<신곡>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지금의 이태리어를 탄생시키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나에겐 너무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 읽기 어려운 암호문 같은 책이었다. 특히 한국어로 번역된 만큼 그의 문체, 그가 구사한 어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신곡>의 곳곳에서 단테의 영혼을 안내하는 베아트리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베아트리체. 그대가 돌아가기를 열망하는 곳에서 왔어요. 
사랑이 날 이곳까지 이끌었지요. 내가 주 앞에 설 때 당신을 칭찬해 드리겠나이다.    
폰테 베키오 위. 보석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c)Storypop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으며 동행인과 피렌체 거리를 걸었다. 그날의 여행 주제는 사랑. 그러나 아빠와 곧 중2가 될 아들이 소화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주제였다.  다리를 지나 우리는 단테의 집으로 향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폰테 베키오에서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과,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 멀지 않은 곳에 단테의 집이 있다. 


베키오 궁전은 지금도 피렌체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와 토스카나 공화국을 통치한 메디치 가문에서 지은 건물이다. 1298년에 착공되었는데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540년에 메디치 가문이 이 궁전에 들어와서 10년 정도 머물다가 이사를 갔는데, 오래됐다는 뜻의 '베키오'라는 이름은 이때 붙은 것이라고 한다.  ( 아래 사진들은 아린芽鱗님께서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 


(c)아린芽鱗, 2016
(c)아린芽鱗, 2016

건물 앞에 서 있는 다비드 동상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제품이다. 그러나 대리석 덩어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육체를 캐낸 대가의 솜씨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동행인과 나는 진품을 보기 위해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이동하는 수고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베키오 궁전 (c)Storypop, 2016


단테의 집은 단테가 실제로 살았던 집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그 시대 건물의 특성을 살필 수 있고, 건물 안에는 손글씨로 만들어진 책과 당시의 무기 등을 구경할 수 있어서 한 번 들어가 볼 만했다. 


단테의 집 (c)Storypop, 2016


단테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곤궁한 처지에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도 말이다. 그의 책 <신곡>은 그래서 불의, 부도덕, 교회의 타락, 배신을 상징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소환하고 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벌한다. 물론, 그 어두운 세계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바람처럼 노래처럼 빛처럼 주인공을 안내하는 것은 베아트리체, 사랑이었다. 


다시 지도로 돌아가서 단테의 집 왼쪽으로 보면 리퍼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를 볼 수 있다. 나는 사전에 여행책자에서 이 곳에 대한 내용을 읽지 못해 이곳을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테마를 '사랑'으로 잡는다면 단테의 집을 구경한 뒤에 저녁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이 높은 건물과 벽으로 둘러쳐진 공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르네상스의 어느 밤을 즐기러 온 방문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 나는 약간 길을 헤매며 지난 곳이라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사진들은 역시 아린芽鱗님께서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 

 

리퍼블리카 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c) 아린芽鱗, 2016

이 글을 쓰면서 이 공간이 기억나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거기 우리 헤매다 지나간 곳 아니에요"하고 건조하게 답한다. 예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별로.."라고 한다. 연인이 즐기기엔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런데 우리는 연인이 아녔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럴 줄 알았다. 

 

(c)아린芽鱗,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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