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17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
베니스든 피렌체든 시에나든 이태리 도시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극적인 빛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자동차의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4~5층 높이의 옛 건물이 촘촘히 세워진 탓이다. 특히 뉘엿 해가 서쪽하늘에 걸리면 파란 하늘,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횡단하며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건물 외벽이 한데 어울린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으면 꼭 실망하게 되는 신기루 같은 풍경이다. 매번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섰지만 결과로 나타난 것은 그리 똘똘하지 않았고, 나의 동행인은 '왜 언제나 같은 사진을 찍느냐?'며 나에게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 동행인의 머리 속에 남은 이태리의 이미지는 포로 로마노도, 폼페이도, 베네치아의 수로도, 거장들의 미술작품도 아니었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어둠 속에 도드라지는 도시의 정령 같은 불빛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피렌체, 그리고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이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그리고 다녀와서 각각 이태리 여행책자 한 권씩을 샀다. 그러나 그 두 권 모두 미켈란젤로 광장이나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지친 상태가 아니라면, 특히 연인과 함께라면 꼭 가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동행인과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도 되지만, 여유 있게 경치를 감상하는 데는 역시 걷는 방법이 최고다. 우리가 다리(7) 를 건널 때는 벌써 조금씩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태양의 노란색 세례를 받은 건물들이 푸른 하늘 그림자에 어울려 물 위에서 반짝거렸다.
다리를 건너서 1번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미켈란젤로 광장 표지판이 나온다.
약간 돌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가 간 길이 결국 더 빠르다. 정면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로를 굽이굽이 돌아서 가는 길인데 반해, 직선으로 계단을 올라 질러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2번과 3번에서 찍은 사진으로 3번까지 올라오면 바로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다비드상이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고 있다. 역시 복제품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시간이 피렌체에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시간은 피렌체의 하늘을 물들이고 어둠을 내리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조명을 더 밝게 빛나게 한다. 연인이 함께 온다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지나가는 시간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트가 강하지 않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동행인은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후에도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다. 나와 동행인은 무엇엔가 이끌린 것인지 조금 더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곳이었지만, 발견이 기대되는 그런 상태였다.
발견 당시에 우리는 이 건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작은 건물은 거장 미켈란젤로가 아름다운 시골처녀(Villanella)라고 불렀던 산 살바토레 알 몬테 성당(San Salvatore al Monte 1442년 완공, 1881년 복원)이었다. 실제로 보면 그런 이름으로 불릴 만큼 수수하지만, 다른 파사드와 비교할 수 없는 고졸(古拙)한 미가 느껴졌다.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면 그게 바로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이다. 성당 옆에는 라 로지아(La Loggia)라는 식당 건물이 있다. 건물 위에 빛나는 것은 인공조명이 아니라 달이다.
피렌체 대성당 얘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대리석을 사용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파사드(성당의 앞면) 역시 녹색과 흰색의 대리석을 사용해서 장식되었다. 1018년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피렌체의 최초의 순교성인 성 미니아토에게 헌정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낮에 들어갔다면 더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겠지만, 밤에 본 성당 내부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거대한 피렌체 대성당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빛과 어두움, 그리고 아치가 받치고 있는 높은 천장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파사드를 비추기 위해서 곳곳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고, 그 밝은 빛 때문에 곳곳에 어두운 공간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연인과 함께 왔다면 뭔가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동행인과 나는 열심히 상대방을 사진에 담아줬다.
이곳에서 보는 피렌체의 전망은 훨씬 더 범위가 크다. 대신 '렌즈-줌'이 안 되는 카메라라면, 삼각대가 없다면 내 눈으로 본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한숨을 쉬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처럼 말이다.
내려오는 길에도 사진을 찍을 일들이 있었다.
아르노강과 피렌체의 건물들의 어울림, 그리고 과거 피렌체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성곽의 잔해를 만나볼 수 있다.
어느새 피렌체의 거리엔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위 사진은 지도의 6번쯤에서 찍었다.
아노르강 위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빛으로 노란 그림이 찰랑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숙소에서 맛있는 한국 라면을 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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