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18 Hotel Panorama
사실은 약간 망설였다. 피렌체의 호텔들을 다 살펴본 것도 아니고, AirBnB에 한 번 묵었을 뿐인 내가 특정 지역의 특정한 호텔에 대해 품평을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워낙 많고, 키워드만 넣으면 얼마든지 블로거들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보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가 어떠한 사정인지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로마의 첫 숙소나 밀라노 두오모 근처 호텔 모두, 사실 내심 당황한 경우였다. 그래서 내가 좋았던 곳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게 나쁠 일은 없겠단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사실 이 호텔에 묵게 된 것은 실수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숫자에 유독 약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날짜 계산에도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 원래 피렌체에서는 AirBnB에서 죽 지내려고 했는데 예약을 마친 뒤에 보니 하루 비는 날이 생겼던 것이다.
우리가 이태리에서 비교적 오래 머물긴 했지만 주머니 사정은 썩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파노라마 호텔(Hotel Panorama)을 예약했던 이유는 가격이 그리 높지 않았고, 시내 중심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로마와 밀라노에서 ‘호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에 피렌체의 이 호텔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산 마르코 성당이 있는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서 한 블록만 더 가면 되기 때문이다. 산 마르코 광장은 일종의 버스 환승장 비슷한 곳이어서 여러 종류의 버스들이 이곳을 지나간다. 이 호텔도 건물이 통째로 호텔인 것은 아니고, 현관을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우리식으로 하면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호텔 로비 겸 사무실로 쓰이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형적인 숙박업소 프런트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 그러나 한 사람이 만든 것으로 느낄 만큼 통일성 있는 소품들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한 사람이 그리고 만든 것이었다.) 그 옆 작은 공간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명록이, 한쪽 벽면에는 분필로 낙서를 할 수 있는 칠판이 있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프런트에서 내 질문에 답했던 여자분은 그 호텔의 사장님이었다. 원래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지금은 호텔사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 사장님의 남편분은 큐레이터라고 했다. 하지만 프런트가 좀 특별하다고, 사장이 예술을 했던 사람이라고 호텔이 좋을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았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서비스 공간이 많았다. 손님을 받을 방으로 꽉꽉 채워도 되겠지만 이 호텔에는 곳곳에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일단 맨 꼭대기층에는 호텔 규모에 비해서 아주 넓은 식당이 있는데 식당의 2면으로 창문이 나있고, 이 너른 창문을 통해서 지붕 높이의 시선으로 피렌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해서 나는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정말 100년 만에 그림을 그렸다. 내 동행인의 그림도구를 잠시 빌렸다.
이 식당 말고도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사각형의 공동 베란다가 또 있었는데, 이 베란다와 연결된 방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응접실 같은 공간이었다. 아직도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아직 해가 뜨기 전 일어나 이 베란다에서 새벽이 찾아오는 피렌체의 전경을 감상했다.
두 번째, 이 호텔의 복도와 방은 거대한 갤러리 같다. 물론 이 호텔에 걸린 미술품들이 기호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백보 양보해도 작가가 한 명이기 때문에, 걸린 모든 작품에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세 번째, 입지조건이 좋다. 피렌체의 중심 두오모나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2~3분만 걸어가면 식당들이 있는데 인근에 대학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동행인도 이 장소에 대해 꽤나 높은 점수를 줬다. 작품들에 대해선 나만큼 호평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와이파이가 빵빵 터진다는 데 상당히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기꺼이 호텔 방명록에 그림을 남겼다.
뜻밖에, 피렌체 중심가에는 일본식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