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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야기가 흐르는 이태리여행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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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Aug 16. 2016

피사의 사탑 - 소모되거나 깨어진 신비

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20 피사의 사탑

"이미지는 소모된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가수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연예기사'에 흔히 등장하는 얘기이다. 그런데 난 피사의 사탑을 보는 순간 딱 그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익숙한, 책에서 보았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피사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절반은 한국사람들로 보였다. 하나같이 셀카봉을 들고 붕어빵 같은 포즈를 취했다. 물론, 당연히 나와 동행인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혹시나 후회가 남을까 봐.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그런 게 바로 사람 마음인가 보다.

그런 내 생각이 영향을 미친 탓이었을까, 동행인 또한 '중세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피사의 종탑(피사의 사탑, Torre di Pisa)을 보고도 전혀 감동이 없는 듯했다.

나는 염불을 외듯 미리 예습한 배경지식을 전달하려 애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하긴 기울어진 피사의 종탑은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더 이상 신비로운 건축물이 아니다.

(c)Storypop

이 탑은 피사가 해군력을 자랑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건설되기 시작되었다. ( 1차 1173년~1178년, 2차 1272년~1278년 ) 그런데 1차 건설 당시부터 탑은 기울기 시작했고, 이미 2차 건설이 재개될 당시엔 기울어진 각도를 감안하고 공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이 탑은 피사 공화국의 멸망을 예견했던 것일까? 이 탑이 완공되기 전인 1284년 멜로리아(Meloria) 해상전투에서 피사는 대패했고, 결국 아르노강이 흘러오는 곳, 피렌체의 지배를 받게 된다. 피사의 사탑이 완공된 것은 1372년이다.

Litograph of the Battle of Meloria (1284) by Armanino

피사 공화국의 멸망과 함께 기울어진 채로 피사를 지켜온 종탑은 20세기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 된다. 원래 지반이 약한 데다가 주민들이 지하수를 뽑아쓰면서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1960년대, 세계 대전을 겪고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이탈리아가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을까. 특히 1990년부터 10년간은 관람객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지금 피사의 탑은 강철 케이블과 납덩어리의 도움을 받아, 원래 기울었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힘이 가해지고 있다. 기운 채로 600년 이상을 버텨온 신비는 이미 깨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계산 대로라면 피사의 탑이 앞으로 200~300년 뒤 똑바로 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깨는 얘기가 나온김에 하나 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목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질량이 다른 물질에 대해서도 중력가속도는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고, 그 실험 장소가 바로 피사의 사탑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위키피디아 '등가 원리' 표제에서는 그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였던 비비아니(Viviani)가 지어낸 일화라고 한다. 지어낸 일화라고 해도 정말 그럴듯하고 멋지지 않은가?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과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리고 무게가 서로 다른 추를 떨어뜨리는 실험이라니.

http://www.upress.pitt.edu/htmlSourceFiles/pdfs/9780822944072exr.pdf

두오모와 종탑을 빼고는 피사에 중세시대 건물이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한다. "너무 미련을 갖지 말라"는 여행책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우리는 냉정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지도에서 (1)은 지하도. (2)는 우리나라 슈퍼마켓 같은 상점. (3) 주차장 입구. (4) 큰길이 아니라 성벽과 맞닿아있는 뒷골목이 식당가다. 성문 앞에 맥도널드가 있는데, 조금 더 들어오면 버거킹이 있다. (5) 성문 앞에는 기념품을 파는 천막들이 즐비하다. (6) 피사의 사탑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