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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 팥쥐 - 05 (마지막회)

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12

by 이야기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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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가 팥쥐를 잡았지만 배씨의 팔도 뿌리치고 최만춘의 앞으로 가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팥쥐의 웃음에 콩쥐도 마루로 나왔다. 이번에는 콩쥐를 보더니 막 욕을 하는 것이다. 콩쥐는 놀랐지만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팥쥐는 최만춘과 콩쥐를 번갈아 보며 욕을 하다 웃다가를 한참이나 반복하고는 배씨에게로 와 쓰러지듯 안겨서 잠들어버렸다. 팥쥐가 실성한 것 같아 배씨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밤이 될 때까지 최만춘은 방에 누워있었고, 콩쥐는 여전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배씨는 고민을 하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배씨의 움직임에 최만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보기만 한다.


“뭐해요? 내일까지 여기를 비우래잖아요. 이사 갑시다.”

“아니, 부인. 여길 떠나 어딜 간단 말이오?”

“그렇다고 여기에 더 있다가 내일 또 매타작 당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리고 콩쥐를 정말 그 늙은이한테 하룻밤 노리개로 바칠 작정이에요? 어서 떠나요. 어디 간들 우리 식구 입에 풀칠 못하겠습니까?”


배씨의 말에 최만춘도 몸을 일으켰고, 콩쥐와 팥쥐를 모두 깨워 밤에 길을 떠났다. 이제 갈 곳은 하나. 배씨와 팥쥐가 예전에 살던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곳에 이불과 그릇과 같은 기본적인 살림도구는 있어 옷만 챙겨서 가면 된다.

새롭게 이사는 했지만 최만춘은 그 날 맞은 상처가 덧나 금세 앓아누웠다. 팥쥐는 그 날 실성한 이후로 그냥 일상생활은 하지만 다른 어떤 일도 시작하기 어려운 상태다. 콩쥐는 아직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아버지의 병간호만 하고 있다. 배씨가 혼자 살림을 모두 도맡아야만 했다. 물론 이전에도 살림은 배씨가 혼자 다 했지만 최만춘이라는 존재가 이름이나마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앓아누워 오늘내일하는 처지가 되니 말 그대로 진짜 혼자 가정을 다 이끌어야 한다.

살림은 궁핍해 제대로 약을 쓸 수도 없고, 콩쥐가 간호를 한다고 해도 밥도 한번 안 지어본 손으로 간호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최만춘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얼마 가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 배씨가 콩쥐와 팥쥐를 모두 건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장례라고 할 것도 없지만 주위의 도움을 빌어 겨우 산에 최만춘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해가 뉘엇뉘엇 넘어갔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니 콩쥐와 팥쥐는 모두 잠이 들었다. 유난히 달이 밝게 뜬 밤이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자 배씨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처음에는 먹고살 끼니도 해결되고 팥쥐도 자매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재가를 했지만 지금은 부양해야 할 입만 하나 더 생긴 꼴이다. 팥쥐의 상태도 더 나빠졌다.

문득 뚜쟁이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그리고 뚜쟁이가 권유를 했지 실제 마음의 결정은 배씨 본인이 했다. 원망도 잠시, 생각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콩쥐도 이미 딸이다. 큰 딸. 최만춘이 죽었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다. 배씨는 마음을 다잡고 결심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배씨가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한다. 그러자면 집안 살림은 콩쥐에게 맡겨야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팥쥐에게 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게다가 배씨가 밖에 나가 일을 하려면 팥쥐를 돌보는 역할도 콩쥐가 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을 보니 잠시 한 숨이 나오지만 이제는 오히려 힘이 난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배씨는 다시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삯바느질부터 잔칫집 일도와 주기, 소작 농사까지 정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이대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땅이나 가게를 내서 안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이 악물고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늘 엉망진창이다. 설거지가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고, 빨래도 안 해놓고 있다. 콩쥐가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배씨는 콩쥐에게 살림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콩쥐야. 거기 앉아보거라.”

“네, 어머니.”

“네가 아버지 때문에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지 않느냐?”

“네, 어머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팥쥐가 왜 저리 되었는지 너도 그날 똑똑히 보았을 것이야.”

“네, 어머니.”

“이젠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의지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밖에서 돈을 벌어 와야 하니 집안일은 네가 좀 맡아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저도 제가 해야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저도 답답하옵니다.”

“그래, 내가 하나하나 가르쳐 줄 터이니 네가 빨리 몸에 익혔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해서 세 식구가 서로 의지를 하며 살기 시작했다. 배씨는 밖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고, 콩쥐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서툴고 사고도 많이 쳤지만 지금 도와주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없게 되니 배씨는 도와주지 않았다. 아직 팥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무엇을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가끔씩 집안 살림을 뒤엎기도 해 콩쥐를 힘들게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만약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 식구의 사는 모습을 본다면 못된 계모와 그녀의 딸이 착한 언니를 괴롭히는 모양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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