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가수가 유튜브 1,000만 뷰? - 1

노래가 있는 이야기

by 이야기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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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노래가 밥 먹여주냐?"

시장 반찬가게의 작은 주방에서 오늘도 딸을 타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는 익숙한 듯 딸은 그저 웃음으로 받아 넘길 뿐 흥얼거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군가에게는 가슴 설레는 향수 냄새겠지만, 서른두살의 정은솔에게 그것은 평생 살결에 배어든 짭조름한 짠지 냄새와 비린 멸치 육수 냄새였습니다.


전남 보성의 향토 시장,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4시가 되면 은솔의 하루는 어김없이 시작됩니다.

'보성 반찬'이라는 낡은 간판 아래서 빨간 양념에 배추를 버무리는 일. 그것이 그녀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죠.

은솔은 시장의 젊은 일꾼이자, 고집 센 엄마의 하나뿐인 외동딸입니다. 남들은 화려한 커리어를 쌓거나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릴 나이라는데, 은솔의 손톱 밑은 늘 검붉은 고춧가루 물로 물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단한 손놀림 사이로 은솔은 늘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가사 한 줄에 실어 보내면, 그제야 막혔던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거든요.

"얼른 물기나 짜."

엄마의 타박은 늘 칼칼했습니다. 평생 시장 바닥에서 딸 하나 키우겠다고 억척을 떤 엄마입니다. 그런 엄마의 굽은 등 뒤로 은솔은 자기 꿈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사실 은솔에게 노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 유일한 비상구였죠. 고등학교 시절, 노래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집안 형편에 가수는 사치였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시장 바닥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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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시장 입구에 빛바랜 현수막 하나가 걸립니다. 'KBS 전국노래자랑 보성군 편'. 은솔은 그 현수막 앞을 몇 번이나 서성였습니다. 곧 다가올 엄마의 칠순, 평생 고생만 한 엄마에게 TV에 나오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무모한 용기가 솟구친 겁니다.

"엄마, 나 이번에 노래자랑 나갈 거야. 칠순 선물이라고 치고 한 번만 봐줘."

엄마는 코방귀를 뀌었지만, 은솔은 시장 구석 창고에서 밤마다 목청을 가다듬었습니다. 예심 날, 낡은 면바지에 물 빠진 티셔츠 차림으로 무대 뒤에 섰을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화려한 반짝이 옷을 입은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마치 잘못 찾아온 손님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전주가 흐르고 은솔이 첫 소절을 떼는 순간, 소란스럽던 운동장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습니다.

기교가 섞이지 않은 맑은 소리, 하지만 그 끝에는 삶의 비애를 겪어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짙은 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예선을 당당히 통과했고, 드디어 본선 날. 객석에는 엄마와 시장의 이모들이 작은 현수막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은솔은 엄마에게 손으로 화이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새벽 시장의 공기, 엄마의 갈라진 손등, 그리고 남몰래 삼켰던 눈물들을 노래 속에 쏟아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터져 나온 박수 소리는 보성 앞바다의 파도보다 거셌습니다. 그날 은솔은 당당히 최우수상을 거머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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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떨한 기분으로 무대를 내려와 기다리던 엄마에게 가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빛바랜 베이지색 양복에 낡은 서류 가방을 든 중년 남자, 박춘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행운 기획'의 대표라고 소개했습니다. 촌스러운 이름에 명함은 잉크가 번져 있었지만, 은솔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큼은 어느 전문가보다 날카로웠습니다.

"거기 아가씨, 아니 정은솔 씨라고 했나? 당신 목소리, 그거 돈 됩니다. 아니, 사람 마음을 흔드는 진짜 물건이에요."

춘식의 말투는 거칠었지만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은솔에게 지방 행사를 돌며 가수의 길을 걷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서울 대형 기획사처럼 화려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춘식의 눈에는 은솔이 가진 '진짜'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나랑 같이 일해봅시다. 내가 당신, 전국구는 몰라도 이 근방에서는 제일가는 가수로 만들어줄게. 당신 노래, 그냥 여기서 썩히기엔 너무 아깝잖아."

은솔은 춘식이 건넨 낡은 명함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습니다. 서른둘,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잊고 살았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바닥을 떠나본 적 없는 그녀에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자 두려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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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은솔은 잠든 엄마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멸치 냄새와 소금기가 가득한 그 손을 보며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엄마가 시장 바닥에서 남몰래 눈물 흘리지 않게 하겠다고요. 은솔은 식탁 위에 춘식의 명함을 조심스레 놓았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가보자, 은솔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가보는 거야."

다음 날 새벽, 평소와 다름없이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었지만 은솔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엔 식칼 대신 춘식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가 쥐여 있었죠. 이제 보성의 작은 반찬가게 딸 정은솔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가수 정은솔의 첫 페이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춘식의 화려한 약속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과, 앞으로 그녀가 맞닥뜨릴 수많은 무대가 결코 꽃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서울이라는 거대한 장벽과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림자가 서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과연 은솔의 노래는 보성 시장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울려 퍼질 수 있을까요? 그녀의 위험하고도 찬란한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본 내용은 소설이며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가짜 이미지입니다.

노래는 유튜브 '노래와 이야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ong_n_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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