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가수가 유튜브 1,000만 뷰? - 2

노래가 있는 이야기

by 이야기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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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향기롭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은솔이 마주한 현실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밴 15년 된 카니발 뒷좌석이었습니다. 화려한 드레스 대신 반짝이가 몇 개 떨어진 중고 무대 의상을 입고, 그녀는 보성을 떠나 이름도 생소한 전국의 지방 축제들을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행운 기획' 대표 박춘식 씨와 함께하는 은솔의 진짜 데뷔전이었죠.

"은솔 씨, 가수는 무대 가리는 거 아니야.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거기가 세종문화회관인 거지."

춘식은 늘 그렇게 호기로운 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도착한 곳은 갓 수확한 고추 더미가 쌓인 가설 무대였습니다. 마이크에선 지익 하는 소음이 섞여 나왔고, 관객이라고는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동네 어르신들이 전부였습니다. 반찬가게 주방보다 좁은 천막 안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은솔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서울로 가겠노라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현실은 보성 시장 바닥보다 더 거칠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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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사는 충청도의 한 소도시에서 열린 고추 축제였습니다. 은솔의 순서는 메인 가수가 오기 전 시간을 때우는 이른바 '오프닝'이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어도 사람들은 은솔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배경음악 취급이나 하며 수다를 떨거나 고추 가격을 흥정하기 바빴죠. 그때였습니다. 은솔이 무대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화려한 밴 차량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대형 기획사의 트로트 아이돌, 김샤론이었습니다. 그녀가 내리자 무대 근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은솔을 무시하던 주최 측 관계자들이 버선발로 달려가 굽신거렸고, 은솔은 다음 곡을 부르지도 못한 채 등 떠밀리듯 무대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아, 거기 좀 비켜봐요. 우리 샤론님 들어가야 하니까."

관계자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은솔은 흙먼지 날리는 바닥에 우두커니 섰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상큼하게 노래하는 샤론을 보며, 은솔은 처음으로 자신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서른둘의 나이, 보성에서 온 촌스러운 옷차림,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진심. 그 모든 것이 서울에서 온 세련된 자본 앞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카니발 안은 정막만이 가득했습니다. 춘식은 미안한 마음에 연신 헛기침만 해댔죠. 차 안에는 휴게소에서 산 식은 핫바 냄새와 고단한 하루의 무게가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은솔은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어둠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엄마의 짠지 냄새가 나던 그 주방이 차라리 더 따뜻했던 건 아닐까 하고요.

"은솔 씨, 속상해하지 마. 저 친구들은 기계가 만든 꽃이고, 은솔 씨는 이 거친 땅 뚫고 나온 들꽃이니까. 들꽃이 원래 향기는 더 진한 법이야."

춘식이 건넨 투박한 위로에 참았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낡은 글러브 박스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것은 서울의 대형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트로트 퀸' 오디션 참가 신청서였습니다. 춘식 씨가 며칠 밤을 새우며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얻어낸 귀한 기회였죠.

"우리 딱 한 번만 제대로 사고 쳐봅시다. 저 상암동 빌딩 숲 사람들이 은솔 씨 노래 듣고 기절하게 만들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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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솔은 눈물을 닦으며 그 신청서를 가만히 쥐었습니다. 지방 축제의 가설 무대와 무시당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서러움은 어느새 오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 노래가 얼마나 힘이 센지, 보성 짠지 딸의 매운맛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은솔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서울행 티켓이 희망의 시작인 줄 알았건만, 그곳에는 지방 축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차갑고 거대한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춘식이 은솔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승부수가, 오히려 두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아넣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낡은 카니발은 서울을 향해 달렸습니다. 차 안의 공기는 결연함과 불안함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죠. 은솔은 가슴에 품은 신청서를 더 꽉 쥐었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보성의 작은 거인 정은솔은 과연 서울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무사히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도시의 바람에 꺾여버리고 말까요?


본 내용은 소설이며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가짜 이미지입니다.

노래는 유튜브 '노래와 이야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ong_n_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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