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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May 10. 2021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휘두를 때 다른 나라는?

그때 다른 나라는?

유럽


훈족은 유라시아 대초원을 누비던 강력한 유목민입니다. 2018년 네이처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훈족은 스키타이인과 흉노족의 혼혈입니다. 한때 중국의 중원을 위협하고 한나라의 조공까지 받았던 흉노족은 한무제의 토벌 전쟁과 내부 분열이 이어지며 158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350년 정도에 동유럽에는 강력한 기마부대를 가진 유목민이 등장합니다. 로마와는 함께 게르만 민족을 압박하며 관계가 좋았지만 아틸라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집니다. 게르만 민족에 대한 정리가 마무리될 때쯤 동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단이 떠나자 아틸라는 440년에 동로마를 침공합니다. 그렇게 이기고 지는 전쟁이 반복되다 469년 아틸라의 아들 뎅기지크를 마지막으로 훈족 제국은 멸망합니다. 그리고 밀려났던 게르만 민족은 476년에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킵니다. 


훈족으로 인한 게르만족의 이동은 프랑스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프랑스의 영토가 있는 갈리아 지역은 BC 10세기부터 켈트인들이 거주하며 국가 체계까지 잡혀 있었지만 BC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한 후 로마에 동화되어 지냈습니다. 476년에 게르만족을 앞세운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가 갈리아 지방의 상당수를 정복한 486년이 프랑스의 시작입니다. 프랑스라는 이름은 1190년부터 사용되었지만 이미 이전부터 왕을 프랑크족의 왕(라틴어 : Roi des Francs)을 프랑스의 왕(라틴어 : Roi des France)이라고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이 지역에 살던 민족들도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그중에서 멸망하지 않고 자리를 잡은 세력이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과 앵글로 색슨족의 잉글랜드라고 보면 됩니다.  


프랑크 왕국의 첫 번째 왕조는 481년부터 시작된 메로베우스 왕조입니다. 클로비스 1세는 훈족이 약해지고 다른 경쟁자들의 각자의 땅을 찾아 흩어진 틈을 타 갈리아 지역(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부 지역 일대)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라인강 동쪽을 정복하던 중인 496년에 로마 가톨릭을 개종을 하며 이후 중세까지 가톨릭 국가의 중심으로 강력한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유럽 대륙에 남은 프랑크족과는 달리 브리튼 섬(지금의 영국 섬)으로 넘어간 앵글로 색슨족은 449년에 브리타니아 왕국을 건설합니다. 앵글로 색슨이라는 말은 앵글족(Angles)과 색슨족(saxons)의 혼혈이라는 의미이며, 실제로는 앵글화 된 색슨족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합니다. 

이때 앵글로 색슨의 침입에 맞서 브리튼을 방어하는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서 왕(King Arthur)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서'와 '아더'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아더왕'이라고 더 많이 알려졌지만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아서'입니다. 앵글로 색슨과 브리튼의 싸움에서 앵글로 색슨이 이겼지만 브리튼의 영웅이 더 유명하게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입니다. 아직도 실존인물인지 전설 속의 인물인지 논쟁은 있지만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용맹하게 싸웠던 이 영웅은 영국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 시기에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또 하나의 유목민족이 있었습니다. 동게르만족의 일파로 '반달족(Vandals)'이라고 부릅니다. 폴란드 남부 지역에 주로 살았지만 5세기부터는 유럽 전역으로 활동 무대가 넓어집니다. 409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에스파냐(스페인)를 점령하고, 439년에는 북아프리카의 상업 중심지인 카르타고까지 점령해 반달 왕국을 세웁니다. 455년에는 로마까지 약탈하면서 힘을 키웁니다. 

이 시기가 훈족과 게르만족들처럼 상당수의 유목민족이 유럽으로 내려와 정착을 하던 시대입니다. 그중 반달족은 다른 유목민들에 비해 더 잔혹하기로 알려져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르타고에 정착했을 때 반달족의 생활을 보면 그저 약탈과 파괴만 하는 민족은 아니었습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여느 농경민족, 상업 민족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았으니까요. 반달리즘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잔인함이 강조된 것은 아마도 다른 유목민들에 비해 먼저 유럽을 휩쓸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됩니다. 바로 뒤이어 훈족과 게르만족도 반달족과 비슷하게 약탈과 파괴를 했지만 먼저 휩쓸고 간 충격이 커서 더 잔인하게 보였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이런 반달족의 역사도 오래가지 못하고 534년 비잔틴제국 유스티아누스의 명령을 받은 벨라사리우스에 의해 멸망합니다. 


527년에 즉위한 유스티아누스 1세는 동부 국경의 안정을 위해 532년에 사산 제국의 호스로 1세에게 많은 연공을 바치기로 하고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은 이 시기에 에프탈의 공격을 받아 잠시 동로마제국과 평화협정을 받아줍니다. 그러면 로마와 사산 제국마저 긴장하게 만든 에프탈은 누구일까요?

에프탈을 알기 위해서 다시 조금 동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시아 - 인도, 일본, 중국


페르시아의 동쪽과 인도의 서북쪽에 위치한 중앙아시아 일대의 박트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위구르 자치구가 있는 일대까지 세력을 형성한 유목민족이 에프탈입니다. 백훈족(White Hun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430년 힝길라 1세를 시작으로 제국을 형성해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과 인도의 굽타 제국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했고, 100년 정도 강력한 세력을 형성합니다. 


인도는 굽타 제국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고, 일본은 야마토 정권이 천황의 전신인 오미키(大王)가 군림하는 세습체제를 확립하고 국호를 야마토로 정합니다. 

중국은 위진남북조의 혼란기가 아직 이어지며 끊임없는 학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팽창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을 이은 장수왕이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중심도 한반도에 들어오게 됩니다. 고구려의 남진 행보가 이어지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433년에 동맹을 맺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75년에는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이 실권을 잡습니다. 백제는 이 일로 인해 한성 백제의 시대를 마감하고 수도를 웅진으로 옮겨 웅진 백제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494년에는 부여마저 고구려에 병합되면서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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