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가수가 유튜브 1,000만 뷰? - 4

노래가 있는 이야기

by 이야기발전소
트로트-17.png


세상이 등을 돌렸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건,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발밑의 진흙탕이었습니다. 목소리를 잃고 도망치듯 내려온 보성 시장의 새벽은 여전히 비릿하고 차가웠죠. 은솔은 반찬가게 구석에 몸을 숨겼습니다. 실패했다는 낙인보다 무서운 건,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 사람들은 은솔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따뜻했습니다.

"야, 정은솔! 너 왜 거기 숨어 있어? 기운 빠지게."

생선 가게 순이 엄마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정적이 깨졌습니다. 비웃음도, 손가락질도 없었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투박하게 건네는 고등어 한 토막과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은솔을 맞이했죠. "서울 놈들이 뭘 안다고 그래? 우리 은솔이 노래가 최고지." 상인들은 은솔의 좌절을 실패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그때, 낡은 카니발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시장 입구에 멈춰 섰습니다. 다리를 절뚝이며 내린 사람은 박춘식 대표였습니다. 그는 사기당한 돈을 찾으려다 다리를 다쳤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품에는 낡은 태블릿 PC 하나를 소중히 안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은솔을 보는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습니다.

"은솔 씨, 이거 봐봐. 우리가 진 게 아니었어."

트로트-19.png

춘식이 보여준 화면 속에는 은솔 씨가 예전에 비 오는 날 고추 축제에서 노래하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춘식이 틈틈이 찍어 유튜브에 올렸던 투박한 영상이었죠. 상암동의 화려한 조명도, 세련된 화장도 없었습니다. 젖은 머리로 끝까지 노래를 마치던 은솔의 진심이 그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영상 아래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가짜들 사이에서 진짜를 발견했다', '이 노래를 듣고 다시 살기로 했다'는 4060 세대들의 절절한 고백들이었습니다.

은솔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내뱉지 못했던 한이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춘식 씨는 그런 은솔의 손에 낡은 마이크 하나를 쥐여주었습니다. 방송국용 무선 마이크가 아니라, 시장 행사 때나 쓰던 줄이 꼬인 낡은 마이크였습니다.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채소 박스를 쌓아 무대를 만들고, 생선 궤짝이 객석이 되었습니다.

"은솔아, 한 곡 해봐. 우리 앞에서 못 부를 게 뭐가 있어?"

은솔은 마이크를 꽉 쥐었습니다. 성대결절로 갈라진 목소리가 나올지 두려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장 사람들의 눈빛이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첫 소절을 뗐습니다. 처음엔 쇳소리 섞인 거친 숨소리뿐이었죠. 하지만 두 번째 소절에서, 그녀의 목 안쪽 어딘가 막혀있던 응어리가 툭 하고 터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교도, 화려한 고음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삶의 무게를 견뎌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시장 골목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 순간, 시장 상인들은 하던 일을 멈췄습니다. 칼질하던 소리도, 흥정하던 소리도 사라지고 오직 은솔의 노래만이 공기를 채웠습니다. 춘식은 그 장면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트로트-21.png

노래가 끝나자 시장은 거대한 박수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엄마는 가게 앞치마에 젖은 손등을 닦으며 딸을 향해 처음으로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그 미소 하나만으로 은솔 씨는 이미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가수가 된 은솔은 응원해준 시장의 관객들에게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춘식은 그 모습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은솔 주변에 상인들이 모여들 때 춘식은 조용히 뒤로 빠져나와 업로드를 했습니다.

서울의 대형 기획사가 수십억을 들여 만든 '트로트 아이돌' 김샤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투박한 진심이었습니다. 은솔의 노래는 순식간에 공유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화려한 무대에서 쫓겨난 가수가 시장 바닥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트로트-20.png

며칠 뒤, 춘식의 연락에 은솔은 춘식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당히 고무된 얼굴의 춘식이 은솔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은솔 씨. 방송국에서 연락왔어요.”

“네?”

은솔은 춘식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우리가 쫓겨나듯이 떠나야 했던 그 방송국의 그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직접 박춘식 대표에게 연락은 한 것입니다

"결승전 특별 무대, 정은솔 씨가 꼭 노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메인 작가의 말을 전해주는 춘식 씨의 말에 은솔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춘식은 얼떨떨해하는 은솔의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은솔은 고개를 들어 춘식을 보았습니다. 춘식이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모습에 은솔은 일어나 창가로 가 하늘을 보았습니다. 보성의 푸른 하늘이 그녀를 축복하듯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솔의 표정은 예전처럼 마냥 들뜨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서야 할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노래해야 하는지를요.

은솔은 춘식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서울 무대를 향한 재도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무시했던 세상을 향해, 진짜 노래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의지였습니다. 이제 은솔은 다시 짐을 쌉니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길러온 목소리를 들고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본 내용은 소설이며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가짜 이미지입니다.

노래는 유튜브 '노래와 이야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ong_n_stor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쫓겨난 가수가 유튜브 1,000만 뷰?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