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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May 18. 2016

로맨틱 아일랜드 필리핀 '보라카이'

필리핀 보라카이

 직항도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마닐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에 일찍 경비행기를 타고 넘어갔다. 보라카이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보라카이로 가볼까?'라는 즉흥적인 생각으로 출발을 한 것이기에 보라카이는 물론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도착했다. 


 먼저 마닐라의 호텔은 별로다. 시설은 그만그만한 것으로 기억나는데 서비스가 꽝이다. 우리는 짐을 빨리 찾은 편이라 공항 밖으로 빨리 나올 수 있었고, 마닐라 현지 가이드와도 쉽게 만났다. 가이드 역시 오늘 2팀을 호텔로 데려다주면 되는 것이라며 우리가 빨리 나왔으니 다른 한 팀만 더 나오면 빨리 호텔로 데려다주고 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 다 나올 동안 다른 한 팀은 나오지 않았다. 2~30분 정도가 지나도록 안 나오자 가이드가 안으로 들아가 봤다. 다른 함 팀 역시 신혼여행 커플인데 어떤 물건에 대한 세금 문제로 현지 세관 관계자와 싸우고 있다고 한다. 여기는 공무원들이 부르는 것이 값이니까 그냥 좋은 말로 달래서 몇 푼 쥐어주면 될 거라고 하는데도 그 커플은 그러기 싫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세금을 다 물고 나왔는 데 우리한테 성의 없는 말투로 '죄송합니다'라고 한마디 하고는 끝이다. 


 어찌 되었건 이미 시간은 너무 늦어버렸고 일단 호텔로 출발했다. 공항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가이드가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싱글 침대 두개가 놓여있다. 딱 1년 전 친구 커플의 신혼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스 산토리니로 갔는 데 호텔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가니 싱글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더란다. 그래서 프런트에 가서 따졌다고 한다. 물론 외국어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 아주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한마디만 계속해서 결국 방을 바꿨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인천공항까지 그 친구가 데려다주었는 데 농담 삼아 '우리도 너네처럼 침대 두 개가 있지는 않겠지?'라고 했지만 그게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가이드를 통해 항의를 하니 프런트의 대답이 가관이다. '선착순으로 방을 배정하기 때문에 너네가 늦어서 그 방으로 간 거다. 싫음 말든가'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아직도 이런 호텔이 많다고 한다. 완전 똥 베짱이지만 현지시각으로 이미 새벽 3시가 되어가는 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조금 전에 방이 다 나갔단다. 프런트의 논리로 본다면 우리는 공항에서 꽤 빨리 나왔기 때문에 신혼 첫날부터 서로 딴 침대를 쓸 필요가 없었다. 필리핀의 첫인상이 한국인 여행객 때문에 나빠질 것은 상상도 못했다. 

 어차피 이 호텔에 있을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3시간이 안된다. 더 싸우고 어쩌고 하는 것도 이미 지쳤다. 말 그대로 씻고 옷 갈아 입고 조금 쉬다가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간다. 그렇게 마닐라의 하루는 지나고 잠시 후 새벽이 밝았다. 


호텔에서 도시락이라고 뭔가를 준다. 어제의 그 커플이 보이면 한 소리할까 싶었는 데 그 커플은 마닐라에서 더 있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안 내려왔다. 가이드가 선물로 준 '노니비누' 하나랑 호텔에서 준 도시락을 손에 들고 공항으로 이동. 말이 좋아 공항이지 크기는 시외버스 터미널보다도 작을 것이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30분 이상 남았다. 도시락 먹고 조금 쉬었다 비행기를 타면 딱 맞을 시간이다. 가이드는 티켓까지 손에 쥐어주고는 돌아갔다. 난 그 가이드가 보라카이도 가는 줄 알았는 데 마닐라에서만 가이드를 하고 보라카이 현지에서는 다른 가이드가 있을 거라고 한다. 

 도시락을 그냥 먹기는 좀 그래서 작은 매점으로 갔다. 콜라 하나는 손가락으로 콕 찍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How much?"

"오십."

 손을 모두 펴 손가락 5개를 보여주며 한국말로 대답한다. 그 순간부터 필리핀에서 영어를 쓸 필요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니 좌석 숫자는 대략 50개 남짓되는 느낌이다. 대략 세어봤는 데 아무리 많아도 100개는 확실히 안될 것이다. 일반 고속버스와 우등버스의 중간 정도쯤 되는 의자들이 버스 1개 반 정도의 크기에 모두 놓여 있었다. 약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이제 맘 편하게 여행을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색적인 볼거리는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내로 하얀 수증기들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나중에 들은 설명으로는 바깥의 공기와 기내의 공기 온도가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데 그 말도 그리 와 닿지는 않았고, 또 비행기가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온도차가 난다고 수증기가 안에 다 생길까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렇게 걱정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수증기 사진이나 찍고 있었지...


 까띠끌란 공항에 도착해서부터는 완전히 신세계다. 작은 공항을 나오니 트라이시클이 보인다. 

오토바이를 조금 개조해서 뒷자리에 사람이 탈 수 있게 되어있는 이동수단인데 보라카이에서의 가장 주요한 이동수단이다. 매캐한 매연이 뿜어져 나오고 승차감도 나쁘지만 나름 여행의 운치는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먼저 숙소에 도착. 짐을 풀고 약 한 시간쯤 후에 데리러 온다는 말에 편안하게 짐을 풀고 숙소를 누렸다. 출발 전에 간단히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태국은 관광 위주인 반면 필리핀은 휴양위주라고 들었다. 우리는 어디 많이 돌아다니면서 관광하는 것보다는 쉬고 싶은 마음에 필리핀으로 왔지만 이왕 온 거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가자는 마음은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한 것 같다. 마사지부터 수상레포츠와 ATV 바이크, 특별식까지. 그래도 너무나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어 좋다.

바쁜 일정이 전혀 없고, 어디를 가든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도 않는다. 물론 가이드가 조절을 잘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정에 쫓기듯 다니는 것도 없이 편안하게 다 즐길 수 있다. 


 미국 마이애미의 팜비치, 호주의 골든 코스트와 더불어 세계 3대 해변을 보라카이라고 한다. 보라카이의 해변은... 그 어떤 말로 설명해도 부족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 부드러움을 느끼고 나니 동해안의 모래가 어찌나 거칠게 느껴지던지... 주변의 풍경 또한 환상 그 자체다. 카메라를 들고 아무렇게나 찍어도 컴퓨터 바탕화면이 된다. 그런 바다에서 보는 석양 또한 예술이다. 예전에 활동하던 그룹 '영턱스클럽'의 멤버 한 명이 보라카이에 반해서 여기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하는 데 그 마음이 완전히 이해가 된다. 

 야간은 그 나름대로 야경이 펼쳐지고 먹거리들도 풍성하다. 메인 쇼핑몰은 D-mall이라고 거의 중심가에 하나 있는 데 나는 그런 현대식 상가보다는 그냥 길거리의 작은 가게에서 파는 것들에 더 눈이 갔다. 선물용으로 장식품을 몇 개 샀는 데 싼 곳에서 흥정만 잘 하면 매우 싸게 살 수 있다. 


 남쪽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중국에서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음식이 느끼해져 먹기가 어려운데 이 곳은 관광지라 그런지 음식들이 전체적으로 맛있었다. 

이때 먹은 산미구엘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찾기도 했다. 특히 몽골리안 BBQ와 해산물 요리들은 아직도 생각난다. 다시 먹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눈이 즐겁고, 맛있는 음식으로 입이 행복하고, 부드러운 해변으로 손과 몸이 편안해지는 곳. 하지만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 영어가 딱히 필요하지 않은 곳. 필리핀 보라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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