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아이 손을 잡고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아이를 코 앞에서 바라보는 행복 그게 아이를 키운다는 행복 이란 생각.
아이가 초등학교 가는 날까지 이렇게 코 앞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갑자기 7살이 된 내 아이가 부쩍 너무 많이 자랐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부모님의 모습을 코 앞에서 바라봤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벌에 얼굴을 쏘여서 엄마가 약을 발라 줄 때 그때 코앞에서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기억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에는 한 번도 부모님을 코앞에서 바라본 적이 없다. 지금 아버지나 어머니를 코앞에서 바라본다 생각하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가 갑자기 코앞에서 부모님을 바라본다면... 심히 걱정하실 거 같다.)
나도 어느새 부모가 되었다.
아빠로서 언제까지 아이에게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0살부터 만 2세 까지 정말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힘듦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내 아내가 그랬다.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불편한지, 지금 즐거운지, 슬픈지, 무서운지, 밥은 맛있는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등
아이에 대해서 엄마로서 많은 것을 느끼기 위해 애썼다.
걸음이 느리고 말이 느리자 어떤 장애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배속부터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장아장 걷다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느낀 걸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내가 늦게 발견해서 나 때문에 무엇인가 잘못될 까 봐.
아내는 계속해서 걱정하고 안심했다고 한다.
그때 아내는 많은 걱정으로 우울증이 왔다.
나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허리를 크게 다치고, 진통제를 먹으면 나른해졌다. 커피를 하루에 100잔 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핑계다.
그때도 유치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이었지만, 집에서 아빠로서는 내 아이와 놀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만 3세가 되고 나서 아내는 이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자랐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다시 취직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그때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되었다. 진정한 아빠가 되었다.
일 년간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또 가짜 아빠가 되었을 거다.
내 아이를 코앞에서 바라보는 행복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안아줄 수 있고 머리를 쓰담을 수도 있다.
발바닥을 간질이고 꼭 안고 잠들 수 있다.
내 아이와 즐겁게 스킨십을 할 수 있다.
지금도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을 조금씩 나누고 싶다.
"작은 행동"이 "작은 것의 힘"이 되도록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