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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May 19. 2023

잊어버릴 수 없는 'Lost Reflection'

기억 속 이야기 3

음악동아리 '뚫린 귀'를 이끌었던 친구는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 많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친구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해서 나에게도 그런 장르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는데 그건 마치 이차방정식도 모르는 학생이 미적분 수업을 듣는 것과 같아서, 그 음악들은 나에게 그저 ‘시끄러운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나에게 감흥을 준 노래들은 친구의 말을 빌리면 ‘소설과 같이 기-승-전-결이 있는 노래'였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가 자취방에 놀러 와서 ‘Stairway to Heaven’을 들려주면서 음악이 한 편의 소설 같지 않느냐며 내게 동의를 구하기에,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내가 그 노래에 호감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오래 듣고 줘도 된다면서 카세트테이프를 나에게 빌려주었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 큰 감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긴긴 겨울밤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면서 여러 번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퀸의 ‘Bohemian Rhapsody’ 스틸하트의 ‘She's Gone’ 같은 노래들을 친구 덕에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된 노래들은 대부분 ‘드라마틱한 전개와 절정’이 있었다. 하긴 이런 곡들은 워낙 명곡으로 평가받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이어서 내가 좋아하게 된 데에도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듣자마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필이 꽂힌 노래 중에 그렇게 유명한 곡도 아니고 장르도 메탈에 가까운(지금 검색해 보니 얼터너티브 록, 프로그레시브 메탈, 메탈 발라드 등 사람에 따라 여러 장르로 구분해 놓았는데 어떤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곡 하나가 있었으니, 크림슨 글로리의 ‘Lost Reflection’이라는 노래였다.    


하루는 친구가 좋은 앨범이라면서 괴상한 얼굴이 그려진(커버이미지. 나중에 알게 됐지만 1969년 발표된 그 괴상한 얼굴의 킹 크림슨 1집이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커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이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Epitaph’도 명곡이고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나에겐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킹 크림슨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는데, 그 옆에 크림슨 글로리라는 앨범이 있길래 친구에게 이 앨범은 안 좋냐고 물어보았다. 친구가 그것도 좋긴 한데 그렇게 유명하진 않다면서 한번 들어보겠냐고 하기에 킹 크림슨이 너무 시끄러웠던 나는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Lost Reflection’은 킹 크림슨보다 더 시끄러웠지만 그야말로 내 귀를 뻥 뚫리게 했다. 내가 이제까지 들은 음악 중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자 친구는 약간 놀라면서도, 내가 자신의 소장 음악에 반응을 보인 것이 기뻤던지 카세트테이프에 ‘Lost Reflection’을 따로 녹음해 주고 가사도 적어주었다. 나는 그 후로 한동안 자취방에서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그리고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왔을 때, 친구의 강력한 권유에 힘입어 무반주로 부르기까지 했다. 내가 노래방도 아닌 자리에서 팝송을 그것도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부른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dwNlvCj87U

Lost Reflection (Crimson Glory, 1986)


* Lost Reflection은 크림슨 글로리가 1986년 발표한 1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메탈 애호가들에게는 명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아 분열을 암시하는 가사에 보컬의 독특한 창법이 더해져 밤에 들으면 약간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서정적인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전개, 가슴을 후비는 듯한 절정이 있어서 감정이 정화되는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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