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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Jan 24. 2024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하여

정성기,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여러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김민식 피디의 글에서 누군가 위로를 받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MBC에 있을 때 40-50대 동료들이 연가가 있어도 개인적으로 쓰지 못한다 했다고요. 부모가 늙고 병들어 아파서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는데 대부분의 연가를 쓰게 되어, 따로 개인 시간을 보낼 연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방송국 피디처럼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도 인생의 생로병사를 감당하는 어려움은 다 비슷하구나 싶어 묘한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생의 허리인 시기를 지나며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상황도 그렇지만, 연로해 가는 부모님과 주변을 보며 '생로병사'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요즘이니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정성기 저자의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입니다. 아이들 모두 키워놓고 광고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던 무렵 그의 노모에게 치매가 발병했다고 해요. 공교롭게도 그때는 아버지를 치매로 떠나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한이 되어 그는 다니던 회사도 접고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병원에서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며, 아무리 길게 봐도 1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얘기했기에 가능할 수도 있었던 결심이었겠지요.


어머니를 위해 얻은 작은 아파트에서 치매 노모와 60을 바라보는 큰아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 끓여먹는 것이 전부였던 아들은 유독 음식에 까탈스러운 어머니 덕에 갖가지 요리를 연구해 밥상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회를 좋아하던 어머니를 위해 식단에는 광어회가 빠지지 않았고, 아내는 며칠에 한 번 꼴로 간장게장을 담궈 날랐답니다. 갖가지 육수를 직접 내는가 하면 매 끼니를 새 밥과 반찬으로 차려냈으니 보통 정성이 아니었지요. 혹시 입맛을 조금 비껴가는 요리라도 올라오면 성질 고약한 어머니의 불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이놈아! 에미를 굶겨죽일 셈이냐!!"


역시 먹는 것이 보약인 걸까요. 입을 모아 1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던 어머니의 치매는 10년을 꽉 채워 이어졌습니다. 이 책은 그 9년차에 기록된 것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머니의 병세도 악화 되어온 때였지요. 매일같이 광어회와 간장게장을 찾던 어머니는 5년차부터는 광어회보다 부드러운 연어회를 찾고, 6년차부터는 비린내가 난다며 그리 좋아하던 간장게장도 물리셨습니다. 7년차 이후부터는 씹을 힘이 없어진 어머니에게 모든 음식을 갈아서 죽 형태로 먹여드려야 했다지요. 입 벌릴 힘조차 없어 간신히 입을 벌려 받아먹는 그 마지막에 가까운 순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생명의 존엄함을 무어라 해야 할까요.


아들은 지난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고 소멸해가는 생을 옆에서 지켜봅니다. 그 옛날 대학 교육까지 받은 신여성이었던 어머니가 길거리 행상도 마다 않고 5남매를 키워내신 고생을 생각하면, 이제 제발 그만 하고 가시라는 신음을 토해내다가도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하는 옛말을 떠올리며 다시금 자신을 추스르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날로 증상이 심각해지는 치매환자와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 순간 간병인의 인내를 시험하던 처절한 시기, 자신도 모르게 자전거를 몰고 한강으로 뛰어들려던 때 귓가에 들려오던 구약 성서의 한 구절 '너는 피투성이어도 살라'는 소리에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지요. 그에게 허락된 한 시기, 자신이 감당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 앞에서 절규하는 삶의 기록을 통해, 이번에는 아무리 망가지고 고된 삶이라 하더라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보게 되는겁니다.


저의 아빠는 오랜 시간 투병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들어감에 따라 기본적인 기능마저 하나씩 잃어가는 단계 앞에 설 때마다 가족들의 마음도 무너져 내립니다. 당사자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견뎌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그 시간은 슬픔을 넘어서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여러 감정들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한정된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누구든지 언젠가 그 끝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기록에 용기를 얻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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