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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Dec 29. 2016

언제까지나, 로맨틱 홀리데이

10년 후에 보아도

나온지 꽤나 오래된,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건 여러가지 면에서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고, 한 발짝 물러서서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맘 편히 음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고 장면에서도 촌스러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시즌에 딱 맞는 영화라면 그건 고맙기까지 한 일이지요.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맞추어 다시 만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2006>는 여전히 사랑스러웠습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아까운 것들>, <왓 위민 원트> 등 여자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인 데다가, 혼자서 찾아낸 깨알같은 재미들로 더욱 즐겁기도 했지요. 예를 들면 앞머리 탈모가 진행되기 전 풍성한 머리숱의 주드 로를 보는 재미, 이젠 너무 정겨워진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전의 '잭 형' 잭 블랙, 그리고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홈익스채인지' 사이트를 보며 지금은 보편화된 에어비앤비 서비스를 떠올리는 재미 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에 들어오는 예쁘고 따뜻한 색감은 덤이지요.




책과 영화와 함께하는 휴가란 즐겁지 아니한가


영화를 보며 주목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책'과 '영화'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사는 인물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LA에 사는 아만다(카메론 디아즈)와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런던 교외의 그레이엄(주드 로)부터 살펴볼까요? 아만다는 매우 잘 나가는 영화 예고편 제작자입니다. 워커홀릭이라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지요. 아만다의 집은 아만다의 직업적 명성에 걸맞게 벽면이 온갖 종류의 DVD로 가득합니다. 그레이엄은 소설가 아버지와 랜덤하우스 수석 에디터 어머니를 둔, 본인도 북에디터이자 여심을 설레게 하는 외모의 소유자 이지요.                                                                                       

기대 이상으로 멋진 아만다의 집에서 2주를 보내게 된 아이리스. 벽면 가득한 DVD를 보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만다 집에 수영장 정도는 기본이지요!

런던의 시골 마을에 살다가 미국 LA의 아만다 집에서 2주의 휴가를 보내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한 신문사의 웨딩 칼럼니스트랍니다. 아만다의 집에 DVD가 가득이었던 것 처럼, 아이리스의 회사 책상과 집에는 온갖 원고뭉치와 책들이 가득해요. 그건 아이리스의 친오빠이자 북에디터인 그레이엄의 집도 마찬가지지요. 아만다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리스가 만난 두 인물 역시 영화를 업으로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평소의 아이리스대로 따뜻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을 뿐인데 알고 보니 주옥 같은 대사들을 남겼던 헐리웃의 시나리오 대가 아서 할아버지와, 아만다와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사람 좋은 영화음악 제작자 마일즈(잭 블랙)이지요.                         

아이리스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런던 교외의 아담하고 따뜻한 집. 벽난로 앞에서 코코아 한 잔 하고 싶게 만드는 집입니다.
아이리스의 집에는 책이 가득하지요

런던과 LA.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는 주인공들의 관계 구성도 흥미롭지만,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책과 영화에 종사한다는 건 제작진이 왜 그런 설정을 한걸까 궁금증이 들게 합니다. 홀리데이를 위한 맞춤형 영화인 만큼, 휴가 때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이 옆에 있으면 남 부러울 게 없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을 겨냥한 건 아니었을까요? 비록 영화의 주인공들은 책과 영화를 생업으로 하고 있지만, 홀리데이 시즌에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그 덕분에 아름다운 배경과 감성적 인물들의 맛깔난 대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요.                

휴가를 즐기는 가장 편안한 셋팅. 영화 한 편과 와인 한 잔.


공감, 사랑에 물드는 조건


영화의 두 여주인공은 휴가지에서 예상치 못했던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저들이 사랑에 빠지는 건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두 여인이 사랑에 빠지는 그 남자들이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그녀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시골 처녀같은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과 직업인으로서의 실력을 동시에 갖춘 아이리스는 양다리를 걸치고 자기를 이용해먹는 직장 동료와의 비틀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지요. 남자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리스에게는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 좋기로 유명한 마일즈의 애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일즈는 바람둥이 여자친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 마음이 뭔지 나 정말 안다는 아이리스의 위로는 그들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만다는 부모님이 헤어진 15살 이후로 눈물을 잃어버린 여자이지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울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누구보다 행복해서 '삼총사'라고 불리웠던 그들 세 식구가 흩어지게 된 이후로 아만다는 눈물이 나지 않았더랍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꾹꾹 눌러놓고 당차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성공을 이룬 아만다에게 가족이란 것은 어쩌면 가장 그리운 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레이엄과의 첫 데이트에서 난 이런 사람이라며 쿨한듯 담담하게 털어놓는 아만다가 그레이엄의 집에서 놀라움보다 큰 포근한 행복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가 아직 며칠 남았어요!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로맨틱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판타지를 제공하는 영화이지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 깊은 관계를 맺기 두려워했던 연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지나 연말을 맞으면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 갑니다.                

이미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려서 이 영화는 굳이 보고싶지 않다면,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 처럼 아직 남은 한 해의 마지막 며칠을 붙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매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존재하는 한 이 영화의 유효기간도 앞으로 언제까지나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연말에 길게 쉴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면, 저들의 로맨틱 홀리데이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당신의 연말을 충분히 따뜻하고 웃음짓게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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