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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Dec 18. 2016

(본 사람만 읽는) 라라랜드 리뷰

드디어 보았습니다. 좀처럼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는 남동생이 꼭꼭 보라고 극찬해왔던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그 영화를,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올해 마지막으로 별 다섯 개를 선사한 그 영화를 말이죠. <위플래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자, 매력적인 두 배우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지나온 두 남녀의 이야기를 환상적인, 마법같은 붓터치로 수놓아 보여줍니다.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한 고속도로, 막혀 있는 차 행렬에서 일제히 사람들이 내려서 뮤지컬의 한 장면을 구가하는,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었던 화려한 오프닝 시퀀스는 동화 같기도 한, 마법 같기도 한,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을 판타지의 향연이 내내 펼쳐질 영화의 서막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헐리웃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 오디션을 보고 다니는 '미아(엠마 스톤)'는 길을 걷다가 어느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를 듣고 끌려가듯 들어갑니다. 미아를 사로잡은 피아노 연주자는 재즈를 열렬히 사랑하는, 재즈에 미친 뮤지션이지만 제 좋은 것만 하는 성질 때문에 변변히 자리잡지 못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남자입니다. 그 날도 선곡표대로 연주해 주어야 하는 직장에서 또 제멋대로 음악에 미친 채 연주를 해버려서 해고를 당하던 차였지요. (해고를 하는 이는 감독의 전작, <위플래시>의 독한 선생님 JK 시몬스이네요)


해고 현장에서의 첫만남은 까칠했을지라도, 자꾸만 마주치는 우연 속에서 두 남녀는 점점 사랑에 빠져듭니다. 그녀가 그의 음악을 알아듣고 끌려들어갔던 것처럼, 그 역시 그녀의 열정을 알아보았기에 두 남녀의 사랑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보라빛 석양이 내려앉은 공터에서 처음 춘 탭댄스가 그렇게도 멋지게 어울렸던 것처럼요.

얼마나 행복한 시간들이었을까요? 각자의 꿈을 이야기하고, 누구보다 서로의 꿈을 알아봐주고 지지해주는, 가진 것이 없더라도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그 시간들이요. 막막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일지라도, 지나보면 그랬기에 그 시간이 가장 찬란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들 말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영화가 네 섹터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처럼 그들의 관계도 좋은 날들과 안타까운 날들, 슬픈 날들과 그저 흐르는 대로 놓아둘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을 지나갑니다. 여느 청춘 연인에게나 그렇듯 우리 미래를 위해 한다고 믿었던 일들이 현재의 사랑에 균열을 내고, 그런 사랑에 상처받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영화의 가을.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할 것 같기에(그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바스찬은 좋아하지 않던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들어가 전국 투어를 하며 돌아다니고, 그가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랐기에 실망한 미아는 용기를 북돋아주던 연인이 없는 상황 속에서 큰 도전을 초라하게 마쳐냅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관계도 거의 끝난 것 같고 꿈도 완전히 포기한 듯 할 때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지요. 행운의 여신이 먼저 찾아든 것은 미아에게입니다. 여러번의 실패 속에 상처를 받고 포기하려던 그녀는 세바스찬의 손을 통해 찾아온 기회로 마침내 유명 배우로의 발을 딛게 되지요.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길가의 벽에 걸린 그녀의 포스터와 훗날 안정적이고 꽤 세련된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빠른 전개 속에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5년 후 예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미아의 남편이 세바스찬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덧 그녀는 예쁜 딸과 친절한 남편, 아이를 봐주는 보모까지 둔 유명배우가 되어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남편과 나간 저녁 데이트, 이번에는 남편 손에 이끌려 따라 들어간 클럽에서 그녀는 그를 마주치고야 맙니다. 지난 시절 그녀가 그에게 자신의 클럽을 운영하라며 이름을 지어주고 디자인까지 해주었던 'Seb's'라는 클럽에서 말이지요. 자기 클럽의 사장이 되어 익살스럽고 자신감 넘치게 곡을 소개하던 세바스찬 역시 미아를 발견하고 얼어붙지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조용히 피아노 앞으로 가 그녀와의 첫만남이 시작된, 함께한 사랑의 시간들이 떠오르 노래를 잠잠히, 마음을 다해 연주할뿐.

음악이 나오는 동안 돌아가는 필름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 그때 그녀와 바로 사랑에 빠졌더라면, 그때 그녀의 공연을 환호성으로 함께 했더라면,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찬란했던 시간들이었던가, 저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의 아이를 낳고 세 가족이 행복했더라면.. 이런 장면들은 연주를 하고 듣는 두 남녀의 생각인걸까요, 언제까지나 사랑한다는 연인의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관객들의 생각인 걸까요?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뮤지컬 영화로서 황홀한 음악과 환상적인 장면들을 마음껏 펼칠 뿐 아니라, 두 남녀의 성장과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관객의 추억과 감정을 이끌어내며 전개해 나간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남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과 마법같은 장면들, 그리고 쉬이 꺼지지 않는 달콤쌉싸름한 여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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