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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Feb 26. 2017

영화 <라이언>

따뜻하고 놀라운 新 엄마찾아 삼만리

몇년 전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인도에서 길을 잃은 5살 소년이 호주의 한 부부에 입양되어 지내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존해 '구글어스'로 인도의 옛집을 찾아냈다는 소식이었지요. 당시 우리나라의 <써프라이즈 TV>에 소개되기도 했던 이 이야기는 감동과 놀라움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사루'는 1987년 5살의 나이로 호주로 입양을 가게 됐고, 2008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글어스'라는 프로그램을 소개 받은지 3년만에 인도의 집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하지요. 2012년에는 인도의 가족들과 꿈에 그리던 상봉을 했고, 2013년에는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릅니다.


2016년에 발표된 영화 <라이언 Lion>은 사루의 위 이야기와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기에 줄거리와 결과가 모두 예상된다는 태생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와 잘 담아낸 인도 배경,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는 음악과 영화의 디테일한 흐름에 빠져드는 재미를 어느 하나 놓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제작진이 참여해서인지 인도 배경이 꽤나 서사적이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할리우드의 터치가 묻어나서 아름답고 세련된 영화 한 편이 완성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총 7개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6개 부문과 골든글로브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거두었지요.

5살 사루(써니 파와르)는 인도 빈민가의 어린아이 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 구뚜와 사루가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타 생계를 위해 석탄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되지요. 귀염성과 애교를 장착한 작은 체구의 어린 사루는 늘 형을 따라다니며 일을 하고, 돌을 줍는 엄마 옆에서 심부름을 하기도 합니다. 사루 역의 배우를 찾기 위해 4천 명 이상의 숱한 오디션을 보았지만 결국 길거리에서 캐스팅됐다는 이 소년은, 영화의 많은 부분이 이 소년의 눈망울에 기대갈 만큼 정말로 맑고 깊고 큰 눈망울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도 사루는 형 구뚜를 쫓아 밤에 일을 나서지만, 사람들 많은 크고 혼잡한 기차역에서 형을 잃고 헤매이다 기차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머나먼 곳에 내려지고 말지요.

                                                  

제작진은 "눈 너머로 이야기를 담을 줄 아는 아이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써니 파와르는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캐스팅이었지요.
기차역에서 형을 잃고 "구뚜!"를 외치는 사루. 어른들의 다리 높이도 안되는 사루의 눈높이 시선으로 영화는 사루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표현해 냅니다.


광활한 인도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몇 달 동안 낯선 지역을 헤매이던 아이는 영민할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려, 몇 번의 위기에서 날쌔게 도망쳐 결국 인도 정부의 미아보호시설로 옮겨집니다. 시설로 찾아온 사람이 호주의 한 가정에 입양되도록 인도해주어, 사루는 엄마와 형, 여동생이 있는 인도 땅을 떠나 넓고 파란 바다가 펼쳐진 호주에서 성장하게 되지요. 호주의 부모님(니콜 키드먼, 데이비드 웬햄)은 사루를 가슴으로 안아주는 훌륭한 분들이었고, 사루는 어린 아이임에도 새로 만난 엄마의 아픔을 고사리 손으로 위로할 줄 아는 아이였어요.

20년이 흘러 청년으로 성장한 사루(데브 파텔)의 갈색 피부는 왠지 호주에 살며 조금은 옅어진 듯 하고, 남자 치고 긴 파마머리는 천성적으로 그가 지닌 자유롭고 긍정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하지만 체격도 머리도 큰 만큼 이제 그 청년에겐 어딘가 고뇌의 흔적도 생겨났지요. 마음 속에 꽁꽁 넣어두고 열쇠로 잠가버렸지만, 언젠가는 꺼낼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옛 고향 인도의 기억에서 기인한 고뇌들이요.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인도의 '젤라비' 과자를 발견한 사루는 어린시절 형에게 젤라비를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 앞에서 그만 무너지고 맙니다. 친구들에게 세계 곳곳을 볼 수 있는 '구글어스'라는 프로그램을 소개받은 사루는 그날부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매일 밤 떠나온 인도의 마을을 찾아나가기 시작해요.  
                                                  


많은 것과 단절하고 집을 찾는 작업만 3년. 마침내 떠나온 마을에 대한 가닥이 잡혀갈 때의 흥분과 간절함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점점 눈물이 고여가는 사루의 큰 눈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실제 인물 사루는 그때의 과정과 심정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전 정말 간절했어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매달려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모두들 인도의 수많은 기차역을 뒤지려면 평생이 걸릴 거라고 했죠. 가족도 여자친구도 저를 걱정할 정도로 모든 일상생활에서 발이 묶인 채 오로지 컴퓨터 속 위성 지도만 들여다보며 가족을 찾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그 과정이 정말 괴로웠지만, 저는 결국 그 지도에서 희미해졌던 기억의 조각들을 맞췄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았고,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마침내 인도의 집을 찾아내, 직접 인도를 방문해 어린 시절의 집을 찾아나가는 성인 사루의 모습입니다.


영화 <라이언>은 집을 잃었던 어린 소년이 성장해서 신기술을 이용해 집을 찾아간다는 큰 주제 뿐 아니라, 사루 외에 한 명을 더 입양했던 입양 가정의 고뇌도 적지 않게 비쳐주지요. 그녀의 경력에 비하면 크지 않은 역할임에도, 실제 입양아의 부모인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사루의 어머니 역은 한 고귀한 인간이 감당해내는 사랑과 고통의 크기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안아준다는 건,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 뿐 아니라 아픔까지 안아주기로 결심하는 것이니까요. 사루가 지금의 가족들에게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전하고 마침내 기다렸던 가족을 만나 상봉하기까지, 영화를 보는 동안 응축되어왔던 감동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더욱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영화 제목이 왜 <라이언>인지에 대한 이유도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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