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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Feb 13. 2017

영화 <재심>


* 이 글은 <브런치> 서비스의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초대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세속적인 또라이와 억울한 양아치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또라이는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크게 한탕 잡을 생각만 가득했던 영화 <재심>의 주인공 이준영(정우 분) 입니다. 억울한 양아치는 전라도 어드메 촌구석에서 학교도 잘 안나가는 양아치로 살아가다가, 10대의 나이에 살인죄 누명을 뒤집어쓴 또다른 주인공 조현우(강하늘 분) 이지요. 이준영 변호사는 '지잡대 공대' 출신으로 꽤나 놀았던 과거를 갖고 있기에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덤비는 또라이고, 조현우는 겉모습만 껄렁한 양아치일 뿐 사실은 홀어머니(김해숙 분)와 함께 살아가던 여린 심성의 젊은이 입니다. 부당한 수사에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살인죄를 자백하고 억울한 양아치가 되어버렸지요.   


영화는 이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경위를 파헤치고, 10년형을 살고나온 범인과 변호인이 다시 무죄를 주장하는 재심을 청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2015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도 방영되었던,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 영화이지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사에 의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둔갑되고, 당시의 수사가 미심쩍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발견한 한 변호사에 의해 재심 청구의 움직임이 일자, 사건 은폐의 움직임도 빨라집니다. 영화는 이런 단순한 플롯과 명확한 캐릭터 위에 두 주인공의 변화와 사건의 해결, 그리고 죄없고 미약한 개인에게 법이 가한 되돌릴 수 없는 폭력을 큰 무리 없이 그려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두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현우보다는 변호사 준영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준영이 속한 변호사의 세계란 수임 이익이 회사의 목표가 되고, 대외 이미지를 중시하며, 소위 '광' 파는 일에 몰려드는 일반 직장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준영 또한 현우를 맡고나서도 한동안 현우를 이용해서 이슈를 터뜨리고 일자리도 보장받으려 했던 '세속적인 또라이'인데, 그에게 필요했던 안전망도 마다하고 현우의 사건에 전력으로 매달리는 '정의로운 또라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펼쳐보이는 남루한 집에서 멀어버린 눈으로 갯벌에서 일해 생계를 이어가는 홀어머니와, 살인자란 낙인을 짐진 채 희망 없이 살아가던 현우와 점점 가까워지며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믿음과 연대가 생겨난다는 것만으로는 드라마가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요. (어쩌면 준영에게 더욱 극적이고 짠한 사연을 기대했던 개인적인 감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아쉬움은 변호사 준영이 현우의 사건에서 발견한 이상한 수사 방식과 결과에 분노하고, 법 권력이 평범한 개인의 삶을 짓밟아버린 부당한 현실에 눈뜨기까지의 과정 또한 아주 무게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와 자주 비교되는 <변호인>에서는 주인공이 5번의 공판을 겪으며 국가의 부당함과 공권력의 폭력에 점점 더 눈을 뜨고 분노하며 항거해가는 과정을 그린 것과 달리, <재심>에서는 주인공들을 압박하는 거대한 조직적인 힘도, 그 대상에 부딪쳐가는 그들의 날갯짓도 <변호인>의 그것보다는 더 작고 개인적으로 느껴지니까요. 영화 촬영을 마칠 때까지 실제 '재심'이 진행 중이라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영화 마지막에 준영이 외치는 '사법부는 개인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외침이 어쩐지 허전한 메시지로 들리는 것은 그런 점에서 기인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자주 등장하던 깡패들 대신, 홀로 고군분투하던 준영이 그러한 현실에 눈뜨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라도 몇 있었다면 이야기에 더 몰입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시커먼 갯벌에서 눈 먼 모정을 연기한 김해숙, 또다시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연기한 정우, 여전히 곱상하지만 쏙빠진 얼굴살과 몸으로 연기한 강하늘의 연기는 눈가에 남습니다. 그들을 담아낸 그릇과 이음새가 조금 아쉬웠다 할지라도요. 관객에게는 실제 사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배우들에게는 도약이 되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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