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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Mar 29. 2017

친구의 어머니

오랜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난소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가며 투병을 하신지 4년만이다. 중학교 때 별 용건 없이 친구 집에 자주 전화를 하면 "조금만 기다리세요~"하고 경쾌한 경상도 사투리로 친구를 바꿔주셨던 분이다. 오랜 시간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얼굴 뵌 적이 없었던 친구의 어머니를 2년여 전 항암 치료를 받고 입원해 계실 때 문병 간 병실에서 처음 뵈었다. 곱게 센 머리에 얼굴에도 고운 미소를 띤 모습으로. 그 옆에는 같은 미소를 띤 아버지도 계셨다. 

암 선고 이후 친구의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았다. 회사 퇴직 후 작은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최대한 아내의 곁에서 보내셨고, 친구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틈틈이와 주말을 엄마와 함께 보냈다. 날이 좋은 날에는 어머니가 좋은 공기를 쐬시도록 가족이 함께 인근으로 나들이를 떠났고, 꽃을 좋아하는 소녀같은 엄마를 위해 친구는 종종 꽃과 빠진 머리를 가려줄 모자 선물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투병이 길고 깊어지면서 가족들은 깊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집안에 환자가 있다는 것은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분위기가 24시간 지속된다는 것이다. 내 한 몸과 마음을 편히 쉬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계속 환자 곁에 있어주려 하지만, 가끔은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숨구멍이 필요하기에 아버지는 술로, 친구는 쇼핑이나 교회 수련회로 풀어야 했다. 종종 보내오는 친구의 카톡에는 어머니의 몸이 약해져 갈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안타까움, 우울함이 담긴 긴 글이 적혀있었다.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친구의 어머니는 전시회를 하셨다. 미대를 나온 어머니가 그동안 문화센터 등에서 그려왔던 그림들을 모아 생애 첫 전시회를 여신 것이다. 발길이 뜸한 삼청동 골목길, 방금 리모델링을 끝낸 작은 건물에 전업주부인 외숙모의 주도로 그동안의 꿈이 실현되었다. 예술적 감성이 다분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어머니는 경상도 종가집 그렇게나 보수적인 집안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바깥 활동을 접으셨다 한다. 아버지는 지난날 아내에게 잘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우신 건지 어머니의 투병 동안 가장 각별한 사이가 되어 내내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다. 임종 얼마 전 "이렇게 아픈 마누라여도 옆에 있으니까 좋죠?" "나는 당신이 식물인간이어도 좋으니 내 옆에서 숨만 쉬어줘요" 이런 대화를 나누시며.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오고가는 길에는 그 지역 유독 따뜻한 날씨로 꽃이 일찍 피어있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어머니와 가족들의 발걸음이 수없이 닿았을 곳에서 봄날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봄을 맞고 가셨나보다.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다고 눈시울을 붉히는 친구에게 이런 가족들이 있어 엄마는 행복한 분이셨다고, 마음의 무거움은 덜어내고 감사한 추억들로 앞으로를 채워보자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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