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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pr 17. 2017

영화 <문라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빛이다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주연 배우는 세 명이다. 어린 소년일 때 한 명, 고등학생일 때 한 명,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한 명. 세 명의 배우는 각기 다른 얼굴과 체구를 가졌지만 눈빛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늘 힘없이 내리깔며, 영혼 깊은 곳 가득 차있는 슬픔을 나타내는 그 눈빛.


어릴 땐 리틀, 학교 다닐 땐 본명 샤이런, 커서는 블랙이라고 불리우던 그는 마약에 찌든 편모 밑에서 자라난 흑인이다. 늘 주눅들어 또래로부터 동떨어져 있고, 늘상 괴롭힘을 당하지만 변변한 반박 한 번 하지 못한다. 밖으로 내뱉는 말은 세마디를 넘어가지 못하고, 꺼내지 못한 슬픔은 오랫동안 그의 내면에 침잠한다.


이 영화는 게이 이야기가 아니다.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샤이런은 그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었을까.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가끔 많이 울어서 눈물방울이 되어버릴 것 같다고 처음으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사람에게. 기억하지 않으려 했지만, 관계의 여운은 그가 성장하는 내내 지속된다.


영화는 철저하게 뒷골목과 길거리 흑인들의 세상을 조명한다. 어떤 백인들이 만들어 놓았을, 가두어 놓았을 세상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검둥이라 비하하며 뒷골목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양지가 아닌 음지에 서식하고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빛이다. 햇빛이 아닌 달빛 아래 그들은 푸르게 성장해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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