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당신의 아버지
잠잠하다 싶으면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극장에서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를 보던 사람들은 간간이 웃음소리를 내다가 육성으로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지요. 개성 있고, 허를 찌르며, 재미있는 이 영화는 웃음 속에 나이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담아냅니다.
영화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34살의 아야(우에노 쥬리)가 54세의 남자 이토(릴리 프랭키)와 동거를 하던 중, 둘만 살던 조그만 집에 74세의 아버지(후지 타츠야)가 같이 살자며 들이닥치지요. 평생을 시골 학교의 교육자로 살아온 아버지에겐 그 나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 없이 유유자적 지내는 딸 아야가 마음에 들 리 없습니다. 아야보다 나이도 스무살이나 많고, 초등학교에서 급식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딸의 애인 이토씨는 더더욱 마음에 들 리가 없지요. 꼬장꼬장하고 성격이 불같은 아버지는 자라면서도 아야 가족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었는데, 딸의 집에서도 여전히 밥상머리에 놓여진 돈까스 소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문명인이라면 우스타 소스를!"이라고 외칩니다.
가급적 빨리 아버지를 원래 계시던 오빠 집으로 보내려는 아야 대신, 외려 아버지와 잘 지내는 것은 나이 많은 애인 이토씨 입니다. 연륜에서 오는 부드러움을 갖추고 어른을 위해드리는 이토씨 덕분에 전혀 안어울려 보이던 세 사람의 동거는 그럭저럭 발을 맞춰가는 듯 하지요. 잘 지내던 와중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도난 사건에 아버지는 쪽지 한장만 남겨두고 가출을 감행하고, 아야와 이토씨, 그리고 아야의 친오빠는 수소문 끝에 시골집으로 아버지를 찾아나섭니다.
영화는 코믹한 상황과 대사에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가슴 한켠이 저며오게 만드는 쓸쓸함도 안고 있지요. 매일같이 어딘가에 외출했다 들어오곤 하는 아버지는 마트의 숟가락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홀로 까먹고, 석양이 내려앉은 동네에서 등을 구푸리고 외로이 앉아계셨어요. 나이든 노인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다른 게 없었기에 소일도 되지 않는 일상을 매일 홀로 견뎌야 했던 아야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요. 반가워 않는 자식들 집을 옮겨 다니는 처지가 되어서도 젊을 때의 혈기 넘치는 성격은 여전하지만, 이제 그 괴팍한 성격은 나이 든 초라함을 애써 내비치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의 보호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부모를 위해주려고 한들, 자녀는 영원히 부모의 곁지기가 될 수는 없지요. 아야가 효도 한 번 해보겠다며 준비한 나들이 코스에 정작 아버지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세대가 다른 아버지를 위해 아야가 생각코 벌인 일들은 아버지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 에너지를 써야 한번쯤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런 효도를 매일같이 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야에겐 일상의 소소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토라는 상대가 있지만, 나이든 아버지에겐 그의 정서와 속내를 모두 받아줄 수 있는 자식은 없지요.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것은 일상적이기 보다는 특별한 이벤트일 수밖에 없다는 가슴 아픈 사실 또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막바지, 꼬장꼬장하고 제멋대로였던 성격 그대로 이번에도 아버지는 자식과 아무런 상의 없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길은 끝끝내는 자식에게 폐가 되지 않는 길을 스스로 택하는 부모의 모습이었지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성큼성큼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아야와 이토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빛나는 캐릭터를 표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로 한층 더 살아나는 듯 합니다. 선머슴처럼 변신한 우에노 쥬리와 언제나처럼 편안한 연기를 보여주는 릴리 프랭키, 앞모습은 짱짱하지만 뒷모습은 한없이 짠했던 아버지를 연기한 후지 타츠야 덕분에요. 완벽하던 영화가 중반 이후부터 느슨해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지만, 소소한 웃음과 감동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그 이상을 선사하는 영화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