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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18. 2016

전업작가로 산다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저는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유명한 소설가란 건 알지만 젊은이들의 바이블이라는 <상실의 시대>도 읽지 않았고, <1Q84>를 1984로 잘못 읽을 만큼 하루키의 작품에 무지했었어요. 그래서 이 책도 긴 여행에 동생이 들고 오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하루키의 자전 에세이인 이 책은 첫 소설을 어떻게 썼는지,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몇몇 사안들에 대한 하루키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마치 이름난 작가의 머릿속에 자리한 글쓰기 공장의 프로세스를 견학하고 있는 느낌이라 하루키에 대해 별로 알고 있는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많은 이야기들이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들여다 볼까요?


먼저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해요.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그건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고 모른척 살아가다가 '이제 슬슬 써도 될 것 같은데'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쓰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35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온, 60이 훌쩍 넘은 이 노작가는 지금도 이렇게 소설 쓰기를 행복해 할 수 있나 봅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57 제 2화 소설가가 된 무렵


첫 소설을 쓴지 3년 만에 운영하던 가게를 접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 하루키는 매일매일 달리기나 수영을 습관처럼 해왔다고 해요. 한때는 작가란, 문인이란 반사회적인 성향에 정상적인 생활을 내팽개치고 내키는대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적도 있지만, 사실상 30년이 넘도록 직업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지속력을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 지속력이란 매일매일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운동-집필-휴식 시간 속에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를 지켜내는 것이니 이름난 작가의 일상도 매일의 지리한 출퇴근을 반복하는 우리의 일상과 많이 달라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유산소 운동은 체력을 지탱하게 해줄 뿐 아니라 뇌에 지적인 자극을 주어서 갈수록 증강된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하루키가 말하는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드는' 운동의 필요성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 하루키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하루키의 소설은 적어도 계속해서 발전해 왔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는 장에서 하루키는, 오리지낼리티의 조건에 대해 1)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어야 하고 2) 스스로 버전업 할 수 있는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3)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타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하루키의 소설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하고 있는듯이 보이지만, 첫 소설을 쓴 이후 계속해서 본인의 소설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추가해왔다고 하니 독창성 못지 않은 자기혁신력을 갖춘 셈이겠지요. 새로운 시도란 인칭에 변화를 주는 것, 소설의 길이를 늘려가고 이전에 없던 캐릭터를 배합해 보는 일 같은 것들입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것은 일평생 소설가로 살아온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과 명성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겸양입니다. 유독 문단의 혹독한 비판을 많이 들어와서인지 이만치 물러서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할 때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는 습관이 배어있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 즐겁기 위해서라는 소설을 쓰는 제 1목적에 충실하며 자신의 세계를 천천히 넓혀가고 구축해가는 배짱이 하루키라는 사람이 가진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설을 쓸 수 있게 인생에 찾아온 기회에 늘 감사하는 마음도요.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었다고 하죠.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 하루키가 선정되었더라도 별 귀찮은 일에 말리기 싫어했을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자리에 불려다니고 문학적인 좋은 평가를 받는 것보다 '나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과 그것을 알아주는 독자의 존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요.


결국 책을 다 읽고난 뒤 남은 것은 한평생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경탄과, 운 좋게도 그것이 세상의 흐름과도 잘 맞아떨어져 든든한 독자층까지 넓혀가는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었네요. 이런 배짱과 노력, 직업에서든 그 외의 영역에서든 작지만 나의 영역에서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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