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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23. 2016

여기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원오,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작년 12월, 아파트 청약을 넣고 당첨되는 기쁜 일이 있었지요. 별 기대 없이 넣었는데 예기치 않은 내집 마련이라니, 출근 준비를 하던 중에 날아온 당첨 문자를 확인하던 순간 신랑과 저는 얼싸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뭐든지 자기가 경험하고 관심을 가져봐야 배우게 되는 걸까요? 부동산에 일말의 관심도 없고 분양이니 청약이니 하는 것도 몰랐던 저는 어느새 예비입주자 카페를 매일 들락거리고 부동산 뉴스가 뜨면 관심있게 눌러보며 괜시리 모델하우스 영상을 보며 설레이는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터닦기 작업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한다는 기대감과 내집 마련의 기쁨 속에 마음 한켠 불편한 감정과 궁금한 마음이 한번씩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방법으로 집을 산 건 아니지만 재개발을 하면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이렇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우리 뿐이 아닐진대, 새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좋아하고 아파트 P값이(이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지요) 얼마가 오를 거라고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 원래 이 동네에 살던, 새 아파트에 살 힘이 안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되나?


이 책은 그런 관심과 궁금증 속에 펼쳐든 책이에요. 현 성동구청장인 저자가 우리의 현실 속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론적 공부와 발로 뛴 경험담을 담아 내놓은 책이지요. 생소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는 사실은 알고 보면 신촌, 이대, 홍대앞, 상수, 서촌, 경리단길 등 오래 전부터 우리 주변에 있던 현상을 일컫는 말이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싸고 낙후된 동네에 창의적인 예술가나 상인들이 들어와 거리의 풍경이 산뜻하게 바뀌고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점차 땅값과 건물값,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오른 부동산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그 동네의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기여한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예요. 사람들의 발길은 점차 끊어지고 더이상 임대를 원하는 상인이 없어 특색을 잃고 공허해진 도시에서 가장 이익을 본 건 건물을 미리 매점해 두었다가 팔고 나간 부동산 투기세력 뿐입니다.

상권 뿐 아니라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 여의도, 목동, 상계동 서울의 곳곳들이 국가와 시에서 주도한 도심 재개발의 역사와 함께 해왔지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조합과 건설사도 이에 동참했구요. 화려하게 올라가는 아파트와 건물 뒤편에는 보상을 받은 자들과 받지 못한 자, 강제이주를 당하고 용역에 의해 철거를 당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엔 모두가 문패를 당당히 내건 '내 집'의 꿈을 꾸었지만 내 집을 마련한 이후에도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서의 아파트 매매는 계속되었습니다. 부동산으로 시세차익을 거두는 것은 불안정한 미래와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 살아가는 서민들이 재산을 불리는 몇 안되는 방법이기도 할 겁니다(그나마도 여력이 되는 중산층에게 한정될 테지만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외양만을 추구하는 획일적인 도시계획과 건물 대신 미래로 갈수록 사람과 문화, 창조력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지요. 사람과 문화가 어울려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단기적 이익으로 막아버린다면 그곳에서 피어날 수 있었던 많은 이야기와 내실 있는 경제적 번영은 영영 묻혀버리게 될 것입니다. 시장 경제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낙후되었던 지역을 개발해 그 성과를 나누는 것이 왜 나쁘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그것은 공정한 시장경제가 아니며 그 지역이 개발되는 대신 그로 인해 떠나게 되는 세입자와 자영업자들의 상실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젠트리피케이션을 치유하기 위한 저자의 행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낡은 공장지대였다가 사회혁신가, 문화예술인, 청년사업가들이 모여들면서 활력 넘치는 동네로 변모한 성동구 성수동을 중심으로요. 이미 홍대 합정, 서촌 등에서 사업 근거지와 생활공간을 마련했다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에 쫓겨난 경험이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성수동 역시도 언제 그 전철을 밟지 모른다며 불안해 했다고 해요. 이 곳이 알려지면서 실제로 국내 대기업들이나 IT중견 기업들이 소리소문 없이 공장부지와 창고 터를 매입하고 있었고, 기획 부동산이 들어와 땅값 올리기를 부채질하며 유명 연예인이 빌딩과 창고 터를 매입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으니까요.


먼저 이 현상을 진단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실증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성수동 일대의 자영업 창/폐업 지수, 식음업종 구성 현황, 교통량 변동 등을 분석해 젠트리피케이션의 초기 단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데이터로도 확인했지요. 다음은 민관 협치를 수행할 '상호협력주민협의체'를 운영하고 건물주와 상가 세입자 간 '상생 협약'을 추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협약은, '건물주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임대료 상승 가이드라인 9%를 준수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계약 의사를 피력한 상가 세입자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상가 세입자는 쾌적한 영업 환경과 거리 환경 조성 등 상권의 지속적 성장과 활성화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성동구청 간부급 공무원들이 건물주를 하나씩 담당해 직접 찾아다니며 협약을 맺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 동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 127명의 관내 건물주 중 91명과 상생 협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또 필요한 일은 이 내용을 조례로 제정하고 재원을 자산화하는 일이었습니다. 현행법에서 규정하지 못한 법률적 공백을 지방 자치 차원에서 세부적으로 제정해 집행하고, 공공자산화를 통해 영세 자영업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장기 안심 상 운영을 추진했지요. 이 일련의 활동들은 근본적이자 최종적으로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재개정하여 약자인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역상권상생발전법>을 제정함으로써 협치를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서울시와 몇몇 국회의원들의 발의로 법안이 통과되길 바라고 있다고 하네요.

책에도 나와있는 사례이지만, 얼마 전 유명 연예인으로 건물주가 바뀌면서 이전부터 장사해왔던 세입자를 쫓아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건물주는 법에 의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 상대가 연예인인 점을 악용해서 억지를 부리는 듯한 식당 사장을 공격하는 글들로 가득했지요. 그러나 때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법 마저도 약자를 보호해 주기에는 구멍난 부분이 많이 있을 수 있고,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튼튼한 사회라는 거지요. 내가 그런 일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건물주든 세입자든), 또는 그런 상황을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일이 일어난 배경을 좀더 알아보고 주변과 사회를 한 번은 고려하는 선택을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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