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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pr 27. 2017

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숱한 이들에게

이보다 더 발랄하고 산뜻할 수는 없다. 일본의 핫한 스타 이시하라 사토미가 주연한 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얘기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적지 않은 감동과 생각할 거리도 안겨준다.


시골 고등학교 출신으로 패션지 Lassy를 보면서 자란 코에츠는 Lassy의 편집자가 되기 위해 몇해 연속 출판사 경범사의 문을 두드리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창간호부터 Lassy를 너무나도 좋아해 잡지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몇번씩 보았고, 좋아하는 기획이나 특집 기사는 카피를 그대로 읊을 정도였으니 Lassy는 코에츠에게 단순한 패션잡지를 넘어선 무한한 상상력과 꿈의 발원지였다.


몇수 끝에 드디어 경범사의 합격 통보를 듣고 이제서야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뛸 듯이 좋아하지만, 코에츠가 배치받은 곳은 Lassy가 아닌 경범사의 교정교열부였다. 교정교열부란 책이 나오기 전에 글자의 오탈자를 확인하고, 표기의 통일성이나 표현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곳이다. 인생 내내 Lassy만을 바라왔던 코에츠는 경범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라 여기며 교정교열 부서를 거쳐 최대한 빨리 Lassy로 이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늘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코에츠에게 교정교열부란 얼마나 색채 없고 따분해 보이는 곳이었는지. 사무실은 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에 있고 직원들은 10년 전 정장을 읽고 출근하며(코에츠에겐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종일 교정쇄에 파묻혀서 자를 대가며 한글자 한글자를 뜯어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코에츠는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하나 허투로 넘기지 않았던 성격으로 교정교열 업무에도 차차 적응해 나간다. 일반적이라면 그냥 넘어가곤 할 사항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 쪽지를 붙이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답사나 외국인 설문도 불사하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교열부의 일원으로서 어디서든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궁금한 것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알아내는 코에츠로 인해 교열부의 분위기는 점차 밝아진다. 책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교열에 임하는 코에츠의 진정성에 감동하고, 다음 작품의 교열 담당자로 하나 둘 코에츠를 지명해온다. 작가들 뿐만이 아니다. 코에츠의 솔직하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은 좋아하는 남자도, 자신을 질투하던 후배도, 앙숙같던 문예 편집부의 동료도 서서히 자신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들로 만들어간다. 마침내 Lassy의 코너를 기획해보라는 눈앞으로 다가온 기회에 코에츠의 진로는 어떻게 될지?





드라마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열심히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교정교열부란 열심히 해봤자 빛도 못보고, 사고만 안나면 다행인 곳이 아니던가. 교열부 사람들처럼 세상엔 빛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놀이기구를 점검하는 사람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무언가를 공들여 만드는 사람들, 전기를 점검하는 이들.. 드러나지 않지만 세상은 그들로 인해 돌아가고, 또 움직인다. 드라마 제목처럼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드라마는 또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랜 시간 품어온 꿈에 대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다른 사정으로 유예한 꿈에 대해. 꿈을 이루었다 한들 모든 걸 다 가졌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고,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들 남은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투하고 있는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목표 달성으로 끝나지 않는 드라마의 열린 결말은 입체적인 세상 속에서 성숙해가는 주인공들의 현재를 응원하고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참 좋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드라마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 드라마는 현실과는 다른, 극화(劇化) 된 상황이기에 가능 이야기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광 파는' 일을 한 사람들이 훨씬 대우를 받고 묵묵한 사람들은 때로 불이익 마저 감수하지 않던가. 게다가 코에츠처럼 애초에 원치도 않았고 지식도 없던 분야에서 얼마 되지 않아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코에츠에게 교열의 소질이 있었다 한들 삼개월만에 주변을 모두 감화시키고 담당자로까지 지명받는 것은 분명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현실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수수해 보이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숱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무가치 하지 않고, 꿈을 이루지 못한 당신도 참 소중하다고 응원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었던 제작진 모두가 만들어낸 한 작품으로 현실의 우리가 이렇게 위로 받고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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