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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Jun 03. 2017

오늘

어쩌면 사람의 수명이란 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2주 전 모임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얼굴로 밝게 인사했던 이가 열흘 전 갑자기 뇌출혈로 뇌사판정을 받아 오늘 새벽에 가시리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44세의 나이로 갑자기 가신 것이 기가 막힐 뿐인데 남겨진 사람들이 황망할 뿐 수명이란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건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작년 한 해 그 분은 '믿음'이란 것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며 신앙인이 되어가셨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생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기에 그렇게 급속도로 믿음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약속하시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인과관계를 거꾸로 해서 착실한 신앙인이 되어가는 중에 이런 일이 닥쳐버렸다고 생각하면 신도 원망하게 되고 사람들의 눈도 그리 곱지 않을테니,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은 것이다.


연락 받고 간 장례식장에는 작은 체구에 검은 상복을 입은 초2, 초3 아이들이 있다. 저 아이들이 이 상황을 알려나 안된 마음에 다가가서 말을 걸었더니 슬픈 기색이라곤 없이 천진하기 그지없다. 얘들은 아직 어려서 엄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구나. 차라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안타깝다.


장례식장 밥이 지겨울 것 같아 밥은 먹었냐고 맛있는거 먹으러 나가겠냐고 밖으로 이끌었다. 양손에 한명씩 잡고 병원 입구를 내려가는 길 녀석들은 내내 깔깔대며 종알거린다. 밥을 먹고 나같이 노는 거라며 똘똘하게 내게 약속까지 받아내면서 말이다. 김선생에 가서 냉우동과 온면, 참치김밥을 시켜놓은 사이 둘째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유튜브에서 즐겨보는 게임 영상을 능숙하게 튼다. 두 녀석은 내게 게임을 앞다투어 설명해 주며 한참을 영상 속에 빠져들어 있다.


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창을 병원 옆길로 올라가보았지만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둘째는 내 핸드폰을 들어주겠다며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내 손에 대신 자기의 사탕을 쥐어주었다. 마땅한 데가 없어 아이들이 이끄는대로 병원 공터로 가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다. 몇판을 신나게 하다 판이 깨졌다. 둘째가 자꾸 술래에 걸리는 통에 하기 싫다고 심통을 부렸던 탓이다. 누나는 어른스럽게 이번 판까지만 하고 화장실에 가겠다 하고, 나도 조금 무리되었던 오늘 일정에 뱃속 아기가 걱정되어 이제 이모도 그만하고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집에 가는 나를 데려다 주겠다며 아이가 병원 앞까지 손을 잡고 나온다.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있으라고 안아주고 돌아섰는데 몇 걸음 가지 않아 아이가 내게 폭 안겨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 돌아가셨어요."

아이들도 알고 있었구나. 꼭 안아주며 그제야 나도 엄마 얘기를 처음 꺼냈다. 더 해주고 싶었던 말도 같이. "그래 용아 엄마가 용이 아주 많이 사랑하시지? 우리 용이 똑똑하고 뭐든지 잘하니까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거야. 엄마도 계속 용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누나랑도 잘 지내고 아빠 말씀도 잘 듣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점점 철이 들어갈텐데 엄마의 부재가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너무 무거운 무게가 되지 않았으면, 최대한 오래 아이다움을 간직하고 힘들 때는 떼도 부리며 서로 의지하며 커나갔으면 싶다.

헤어질 때 속삭이던 아이의 말과 그 얼굴의 표정과 내게 안기던 자그마한 체구의 촉감이 마음에 남아 자꾸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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