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사인 친구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보면 열에 아홉이 부모의 문제인 경우가 많더라고 했다. 자녀에게 관심이 없거나 가혹한 양육을 하는 부모들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부모가 자녀를 잘못 키우는데 자녀가 엇나가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한편, 어려운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한결같은 믿음과 지지가 있다면 그 아이는 절대로 잘못되지 않는다는 말에도 나는 자주 공감을 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이란 그만큼 크고 깊다고 생각하는 데 별 의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은 나에게 첫 부분부터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어머니가 꽤 두꺼운 고백록을 쓴 것도 그렇거니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평소의 나의 생각을 완벽하게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난 가해자 딜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흔히들 범죄자의 부모에 대해 생각하는 폭력적이거나 결함 많은 부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딜런의 집은 언제나 가정을 살뜰히 가꾸고 아이들을 살피기 위한 부모의 노력으로 가득했던 집이었다. 가족이 같이 식사를 하고 거실에서 자주 어울려 영화를 보며, 아침이면 일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건설적인 하루를 빌어주는 더없이 이상적으로 보이는 가정 말이다.
딜런은 특유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있었으되 그것을 면밀히 살핀 부모의 양육으로 그 기질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친구관계에서도 언제나 쾌활하고 웃음이 많던 아이였단다. 어머니 수는 언제나 온 마음과 노력을 다해 아들을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표현했다고 고백한다.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는 매우 친밀해서, 하교 후에 딜런은 늘 집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함께 간식을 먹고 스포츠 얘기를 나누곤 했다. 딜런의 어머니는 자녀 양육에만 힘쓴 것이 아니라, 장애인 분야에서 일하는 만큼 늘 약자를 돕는 데에 기쁨을 느끼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의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한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딜런의 가정에 대한 모든 묘사가 그간 범죄자의 가정환경에 대해 내가 가져왔던 생각을 와장창 깨뜨리고 있었다. 놀라움이 클수록 '이런 따뜻하고 훌륭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도대체 왜??' 라는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머니 수 역시도 이 지점에서 아주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듯 하다. 가정에서 늘 보아왔던 다정하고 쾌활한 모습의 아이와, 수십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다치게 한 후 자기의 목숨마저 끊어버린 아이가 어떻게 같은 아이일 수 있을까?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을 힘겹게 벗겨내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수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알 수 없었던, 딜런의 한없이 우울하고 절망적이던 내면에 대해서. 사건 직후 경찰이 압수해 갔다가 돌려받은 딜런의 일기 속에는 딜런이 얼마나 생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지, 크고 깊은 사랑을 갈망하는지(부모가 큰 사랑을 줌에도 불구하고), 또 분노하고 있는지가 쓰여있었다. 서랍에서 발견된, 부모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꽤 오랜시간 복용한 것으로 보이는 항우울제 약물과 함께.
책을 읽으며 나의 지난날이 궁금해져 오래된 일기장을 십수년 만에 펼쳐보았다. 십대가 지난 시기에 쓴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일기 곳곳에는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외로움,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과 피곤함 등이 가득 적혀 있었다. 어쩌면 딜런의 일기에서 발견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내면이었다. 그때 일기장에 털어놓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 역시도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말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 부모님은 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 날이 많았다 해도 더 이야기해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쟤가 저러다 말려니' 하셨을 것이다. 세심했던 딜런의 부모 조차도 그러했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 대신 내가 이야기했던 상대는 친구였다. 일기장의 또 다른 한 면에는 내 고민에 공감해주고 먼저 그 고민을 지나왔음을 털어놓은 친구가 나의 마음을 얼마나 명쾌하게 밝혀주었는지 적혀 있었는데, 그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십대 이후에도 계속된 성장기의 힘들었던 시간을 친구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지나왔을 것이다.
딜런의 경우에는 정신적 취약함이 폭력적인 친구를 만나 분노와 폭력으로 증폭된 경우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지금까지 받아온 도덕적 교육이 마비되고 다른 사람들을 무참히 죽일 계획을 할 수 있었는지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어머니 수 역시도 이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가 다음 단계로 주목하게 된 것은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하고 불가항력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작용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충동을 느낄 수는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충동을 억제할 줄 알고 누군가는 그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폭력을 저지른 이들 중 누군가는 갖고 있는 뇌 건강의 문제로 풀어보려고 한 것이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쾌활한 정신을 갖고 살아왔던 수는 사고 이후의 충격과 혼란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공황발작과 불안장애를 얻으며 어찌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 갇히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절대 딜런이 저지른 일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신적 이상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끔찍한 일에 대해 자각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범죄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한 권의 책을 무겁고 놀라운 마음으로 다 읽은 지금,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다 읽은 후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방식이 말이다. 먼저,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예비엄마로서 나는 이제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 주고 아이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겠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과 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런지. 두번째로, 비극적인 일들을 겪은 이들에게 편견과 공격 보다는 인간으로서 전해줄 수 있는 위로가 먼저라는 생각을 한다. 수의 가족이 끔찍한 폭풍을 겪고, 모든 언론과 전세계가 그들을 질타하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중에도, 그들 가족에게 위로와 공감과 친절을 보여주었던 또다른 무수한 이웃들을 나도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비극이란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지 않아도 아픈 사람들에게 화살이 먼저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고도 사건 이후 16년 간의 고통 속에서 알게 된 것들을 펴내준 딜런의 어머니 수에게 슬프고 벅찬 마음으로 경의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