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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May 05. 2018

영화 <플로리다프로젝트>

그들은 무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텔에 사는 사람들

플로리다 어디엔가 자리한 모텔에는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모텔에 왜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고요? 거긴 집을 구할 수 없을 만큼 돈이 없는 사람들이 하루에 38달러씩의 숙박비를 내고 장기투숙을 하는 곳이랍니다. 모텔에 장기투숙을 하는 건 규정 위반이지만 나름의 편법을 써가며 살고 있지요. 그곳 사람들은 서로 애를 봐주기도 하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면서 방마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지냅니다.

모텔의 이름은 '매직캐슬'이에요. 예쁜 연보라색이 칠해져 가로로 넓게 뻗은 건물을 보고 있으면 동화같은 이름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거 같지요. 하지만 그곳에 모인 이들이 거처할 곳이 없어서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해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왔거나, 기부 빵을 타먹으려 줄을 서고, 하루하루 변변치 못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동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매직캐슬에서는 고성과 싸움이 그칠 줄을 모릅니다. 태양이 빛나는 밖에는 "웰컴 투 플로리다"라는 표지판이 사람들을 반기고, 모텔은 예쁘게 새로 도색되지만, 그곳 사람들의 삶은 변변한 것도 없이, 달라지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 이어가야 하는 그런 삶인거죠.



핼리와 무니

그곳에 한 모녀가 있습니다. 핼리와 무니가 그 주인공이지요. 미혼모로 무니를 낳았는지, 남편과 헤어졌는지 모를 핼리는 싱글맘으로 무니와 모텔방에 살지요. 야릇한 염색 머리, 문신이 가득한 몸, 얼굴의 피어싱,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친 언행으로 핼리의 과거를 상상해볼 뿐입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기에 상식적인 자녀교육도 없지요. 아이 앞에서 일상적으로 담배를 피는가 하면 성질을 건드리는 사람에겐 침뱉어 버리는 것을 불사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남의 호텔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니 엄마가 저래도 되나 싶습니다.

그런 엄마와 함께 지내는 무니의 인생은 재미만 넘쳐난답니다. 동네에 새로 들어온 차가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 차에 침뱉기 놀이를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깜찍한 거짓말을 해가며 생긴 돈으로 산 아이스크림을 친구와 한입씩 번갈아가며 핥아먹곤 하지요. 엄마 손을 잡고 향수를 팔러 다닐 땐 적재적소에 끼어들어 엄마를 거들고 때로는 대담한 장난도 서슴지 않지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발랑 까진 소녀의 천진함에 홀딱 반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니라고 해서 항상 신나고 세상이 재밌기만 한 건 아니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무니는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까요. 직장을 구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남자를 만나 잘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던 엄마의 한숨과 눈물을 이 꼬마 아이는 다 보고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무니는 영화에 다 나오지 않았던, 핼리가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지나왔을 좌절과 막막함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꼬마숙녀의 마음에도 같이 쌓였을 불안과 두려움을 날리기 위해 더 신나게, 말괄량이처럼 놀았을테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핼리와 무니는 서로가 있어 즐겁습니다. 불꽃놀이를 보며 딸 친구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비가 내리는 풀밭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빙빙 도는 그들 모녀를 보고 있노라면 핼리의 방식으로 딸에게 주는 사랑이 새삼 신기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지지요.


그들은 무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어느날 핼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그들이 사는 모텔방에 찾아왔습니다.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찾아온 아동국 직원이요. 자기도 딸을 변변한 환경에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언젠가는 아동국 직원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이미 경험한 적도 있는 거 같구요. 제일 싫은 상황은 그네들이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는 거죠. 하나뿐인 딸과 헤어지는 것, 그것만큼은 핼리가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것일텝니다.


관객은 핼리 못지 않게 무니가 슬퍼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사랑스럽고 똑똑한 무니 저런 환경에서도 제 살길을 찾아갈 줄 아는 아이로 자랄 것만 같은 믿음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볼 때 그렇게 되리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에도 가지 않고, 동네 부랑배들을 보며 자란 무니도 제 엄마와 같은 삶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아동국 직원으로 나오는 제도의 개입은 불가피한 일일 겁니다. 그 어떤 어린이도 정당한 교육과 의식주를 누리지 않을 권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비록 해야 하는 일이고 옳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핼리와 무니의 삶의 이야기들을 다 알 수는 없지 않을까요?실태조사를 하며 적어넣었을 서류와 진행한 인터뷰에는 무니가 엄마와 친구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테니까요. 우리가 보아왔던 핼리와 무니의 영화를 아동국 직원들도 본다면 그들이 취하는 조치가 조금은 달라질까요?


그래서 무니의 앞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해집니다. 혹시 똑똑한 무니가 좋은 가정에서 양육을 받고 잘 자라서 멋진 직업을 갖고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된다 한들, 아니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젊은이가 되고 주부가 된다 한들 어린 시절 겪어야했던 엄마와의 이별과 삶의 변화를 무니는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까요?친구들과 보냈던 날것 그대로의 시간들을 무니는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니에게는,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지 못했던 죄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니를 '빼앗기게' 될 핼리에게도요.


*플로리다프로젝트: 플로리다주 홈리스 지원정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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