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단상 #1. 2017년 서울청년예술단으로 활동하면서
히트텍 한 벌 껴입은 기분
일가친척 또는 주변 지인에게 나는 뭐하고 다니는지 모를 이상한 사람이다. 대학은 졸업했는데 직장이 없다. 구직활동도 안한다. 페이스북을 보면, 어떤 때는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고 어떤 때는 기업의 광고를 찍고 있으며,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직업이라고 할 만한’ 활동은 하나도 없다. 가끔은 나도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모르겠다. 설명하려는 시도를 그만둔 지 오래다. 이해를 못하기도 하거니와, 끝에 후렴처럼 따라붙는 질문 때문이다. “그걸로 벌이가 돼요?”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속이 훤히 보여서 얄밉다. 답답하기도 하다. 아마도 처음부터 이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럴 땐 그저 웃는 게 최고다. 이제 답답함은 그들의 몫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벌이가 된다. 외주 작업(Client Job)으로 돈을 벌어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게 얼룩말공작소의 기조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안정적인 재정구조 덕분에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춥고 시린 프리랜서 시장에서 히트텍 한 벌 껴입은 기분, 나에게 서울청년예술단은 그런 의미다.
<청년예술 리포트 2017> 포럼의 발제를 의뢰받았을 때 중간점검의 기억이 떠올라서 속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때처럼 ‘계량화’되고 ‘도식적인’ 데이터, 통계자료의 수치와 정책 담론을 꺼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참여팀으로서의 솔직한 심정을 공유하는 것이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의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동료 참여팀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년여 동안 서울청년예술단의 일원으로서, 또 ‘(지원금을 받는) 예술 하는 젊은 것’으로서 느낀 감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참여자로서 느낀 지원사업의 작동원리는 ‘통제’와 ‘의심’이다. 네거티브 규제와 포지티브 규제가 섞인 사업추진 가이드라인을 볼 때마다 혼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해서 될 일과 안 될 일,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목록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보조사업자의 위법이나 횡령 등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이해하기에, 회계처리 기준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꼼꼼하다. 과거에 이 같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을 마련했을 거라 짐작하지만 엄살이 지나치다. 예산집행 기준을 보고 있으면, 내가 공공사업 참여자가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것 같아 서글프다. 굳이 이 정도의 제재를 가할 필요가 없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공공기관의 지원사업과 달리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창작활동비를 별도로 지급한다. 사업비를 횡령하려는 동인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는데도 은연중에 배어오는 이러한 모습은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업참여자의 마음을 공공지원사업에서 멀게 하는 한 요인이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업지침도 문제다. 물품의 주요 판매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간편결제, 네OO페이 같은 새로운 결제방식이 보급되는 2017년에도 공공기관의 사업비 지출·증빙 방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투명한 재정을 위해 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지만 오프라인 매장 보다 온라인 매장에서 다양한 물품이 제공되는 요즘에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 또한 온라인을 통한 간편결제나 스마트결제, 해외원화결제(SNS 게시글 홍보 등) 등은 채주와 은행명을 알 수 없어 증빙이 불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용할 수 없는 방식이다.
얼룩말공작소의 <개발의 추억>을 예로 들어본다면 이렇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실된 공간에 가서 과거의 공동체적 기억을 퍼포먼스로 재현하는 영상’이 우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고증이 필수적인데, 추억의 물건을 파는 소품 전문 오프라인 매장이 의외로 적다. 렌탈 샵이나 앤티크 샵 등에 구비되지 않은 애매한 시기의 물품도 상당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물품을 찾았다고 해도 넘어야할 산은 아직 많다. 이것도 ‘자본성 경비’로 분류될까 담당 부처에 사전문의를 하고, 업체에 해당 증빙자료를 요구하고, 지출결의서에서 또 다시 이 지출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는 의회에 의한 감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거의 영혼을 해치는 수준의 감사다. 환수조치라는 엄포에 겁을 집어먹고, 그저 안전하고 확실한 부분에만 예산을 쓸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내재화한 자기검열은 참여자의 활동을 소극적으로 바꾸어 사업의 본 취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위협요인이 된다.
실제로 서울청년예술단에 참여하는 여러 팀들이, 창작활동비를 각출해 이렇게 증명하기 애매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지출을 충당하고 있다. 원래의 사업취지대로라면 창작활동비가 아닌 사업비로 썼어야 하는 항목들이다. 주로 다수의 인원이 모인 회의·행사 시 필요한 다과류나 식사, 무겁거나 거대한 소품·장비를 옮길 때의 교통비 등이 그렇다. 필요한 곳에 제때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면, 그 사업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제한된 지출항목과 결제방식은 역설적으로 양심적인 참여자에게 횡령 등의 일탈을 부추긴다. ‘사업을 위해 써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항목에 지출을 할 수 없어 사비를 쓰기 시작하면 속된 말로 ‘본전’ 생각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지출 가능 항목의 현실화와 결제 방식의 다양화는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부적절한 지출의 경계에 있는 항목, 예를 들어 식비나 교통비 등은 문구류처럼 전체 사업비의 20%로 제한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더불어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참여자에 대한 신뢰가 구조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공무원은 여러분의 변호사가 아니에요.”
가이드라인에 나오지 않는 방식의 예산 집행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증명을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를 묻었을 때 내가 들은 답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공무원은 공공의 이익에 따라 정해진 원칙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다. 만일 자신의 판단에 의해 집행이 가능하다고 했다가 감사에서 환수조치가 떨어지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게 그 까닭이다.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채기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참여자가 담당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어디에 요청하나요.” 결국 다른 공공지원기관에 문의해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동료 참여팀 중에는 회화·디자인 작업에 필요한 인쇄장비를 대여했다가 나중에야 환수조치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사례를 든 것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일선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합리적 판단에 의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행정체계는 담당자의 결정권이 거의 없는 데에 비해, 문제가 발생 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과도하다. 일정 비목의 일정 금액(비율) 안에서 담당자의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책임을 준다면 어떨까. 또는 조직의 일원의 실수에 의한 오류는 조직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권한의 불균형을 해결해야만 참여자나 담당자 모두 서로에게 미안하지 않은 사업진행이 가능하다.
꼬리에 흔들리는 몸통
동료 참여팀에게서 청년예술단에 대한 의견을 구할 때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은 활동일지였다. 3일 안에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이 과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일 단위의 활동일지 제출을 ‘일기 검사’로 묘사하며 불쾌감을 토로한 팀, ‘단체 활동일지는 누군가 맡아서 할 수밖에 없는데, 단체 활동일지 작성한 것을 개인 활동일지에 쓸 수는 없지 않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있었다.
예술창작활동은 회사일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업무를 해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날에 모여서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고, 창작 ‘준비’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활동일지 시스템이 1일 1회에 한하여 창작활동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이 일지 기록에서의 일탈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활동 증명의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활동일지는 아카이빙의 의미마저 퇴색케 한다.
기타 행정업무도 마찬가지다. 월별로 제출하는 교부금 신청서나, 보조금 시스템을 이용한 지출결의 및 증빙 등의 업무를 하느라 정작 창작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예술창작 활동에 익숙한 참여자들에게 행정서류는 ‘복잡하고 낯선 데다 미적으로 형편없는’ 숙제지일 뿐이다. 이는 활동일지와 맞물려 참여팀의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별히 우려되는 점은 세금에 대한 것이다. 사업 초반, 원천징수나 부가세 등에 익숙지 않은 참여팀에서 실수가 있어 안내메일을 자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사업 때문에 개인사업자나 법인, 고유번호증을 낸 참여자에 대한 세무·행정 교육 지원은 전무했다. 유일하게 받은 교육은 우리은행 보조금시스템에 대한 것이었고, 이도 2시간 남짓의 교육으로 갈음했다. 진짜 문제는 올해가 아닌 다음해에 발생한다. 사업소득이나 부가세 신고 등의 신고납부기간에 6개월~1년의 텀이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어떠한 교육지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팀의 대표자는 내년에 있을 사업소득세 신고 대상이라 원천징수를 하지 않고 있다. 이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끝까지 관련 부처가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다.
투입-산출의 관점을 버려야 할 때
예술은 뽑기자판기(가챠폰 ガチャポン)이 아니다. 일정금액을 넣는다고 그에 상응하는 정량의 재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 있던 중간정산보고서에서 투입 대비 산출의 비교분석이라는 안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니 추진 실적이라든지 성과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투입산출에 대해서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예술을 가르치던 모교가 ‘취업률’이라는 지표 때문에 부실대학에 선정되었던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공공성을 지닌 사회적 서비스·재화다. 여기에 ‘경제적 효용’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이 지원사업의 존재 이유와 가치는 훼손된다. 설사 사업에서 투입 대비 산출이 발생했다한들, 유·무형의 가치와 효과를 어떻게 일괄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나 유행어가 되어버린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사업 앞에 달았을 때 차용되는 이미지, 즉 도전·열정·실험은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 한 단어이기에, 더더욱 이러한 용어사용과 인식은 타파되어야 한다. 꼭 실적이 나야만, 결과가 측정 가능해야만 그 사업에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앞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끊임없는 자기증명의 현실적 제약을 끊어내야만 서울청년예술단이라는 사업의 시도가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주택청약을 들었습니다
사회인이 되고 처음으로 적금을 두 개 들었다. 그중에 하나가 주택청약 적금이다. 서울청년예술단의 창작활동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달이 고정수입이 발생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삶, 규모 있는 가계, 장기적 미래 설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고서 머릿속에서 지웠던 삶의 모습이다.
흔히 지원 사업을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말한다. 지원 받을 때는 좋지만 점점 의존도가 높아져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일정한 금액의 고정 수입을 통해 개인의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 예술적 성취의 시간 확보 등 다방면에 걸친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원사업에 대한 의존보다는 그와 같은 안정적인 창작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자생성을 기르는 원동력이 된다.
본 지원 사업의 목적에서 밝히고 있듯, 서울청년예술단은 젊은 예술인이 경력을 쌓고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하는 사다리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했다. 이는 멘토 컨설팅 등의 기회제공과 함께 경제적 지원이라는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은 창작지원이면서 동시에 예술인 복지의 측면도 가지고 있다. 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이러한 지원 사업이 더욱 다양해지기를 바란다.
*본 글은 2017년 12월 4~5일 양일간 열렸던 서울청년예술단 성과공유워크숍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