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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Mar 12. 2024

96회 오스카가 보여준 시상식의 4분면

아카데미 어워즈를 통해 본 'K-시상식'이 아쉬운 이유


오스카(Oscar)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의 별칭이자 트로피의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아카데미란 이름을 가진 시상식은 영국에도 있고, 홍콩과 일본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개최된 적이 있다. 하지만 보통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오스카를 지칭한다.


별들의 화려한 대관식
제96회 오스카의 주인공은 오펜하이머다.

오스카는 대관식이다. 왕관은 모두 24개다. 비경쟁 부문인 공로상은 헌정되고, 경쟁 부문인 작품상, 주연상, 조연상,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 등 23개의 왕관이 수여된다. 여우 조연상으로 시작, 작품상으로 마무리되는 4시간의 대관식은 꿈처럼 화려하다. 대관식에 참석한 스타들은 자신의 호명을 기다리며 긴장한다. 누가 왕관의 주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96회 오스카의 주인공은 '오펜하이머'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7개 부문 왕관을 휩쓸었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배우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비롯한 제작진은 2024년 대관식의 주인이 되었다. 10개의 작품상 후보를 비롯해서 수십 편의 영화가 왕관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올해 결과는 여기서


세상을 향하는 선포식
오스카 사회자 지미 키멜(Jimmy Kimmel)

오스카는 선포식이다. 세상을 향해 굵직한 메시지를 발산한다. 차별에 저항하며, 권력을 비판한다. 2020년, 오스카는 제96회 시상식부터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작 과정에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혹은 장애인이 상당 부분 참여한 영화만 작품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고질적인 인종차별과 대비된다.


오스카의 사회자 지미 키멜은 ABC를 대표하는 방송진행자로 미국 심야 토크쇼 중 가장 오래 진행을 맡은 MC다. 그리고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오스카의 권력비판적 성향을 드러내는 심벌이다. 제96회 시상식에서도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마무리 멘트에서 11월 대통령 후보로 다시 등장한 트럼프를 향해 '감옥에 갈 시간 아니냐'라고 저격했다. 


새별을 비추는 수상식
다섯의 별을 위해 다섯의 별이 모였다.

오스카는 누가 수상을 하느냐만큼 누가 시상을 하느냐에도 관심이 쏠린다. 수상소감만큼 시상자의 발언도 회자된다. 시상은 보통 전년도 수상자가 하지만, 특별한 시상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96회 오스카 작품상 시상자는 배우 '알 파치노'였다. 그의 등장은 영화 '대부 3부작'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였다. 대부 3부작은 모두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 


올해 시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체시상이었다. 한 명의 수상자를 위해 다섯 명의 시상자가 등장했다. 96회 수상자들인 브렌든 프레이저, 양자경, 제이미 리 커티스, 키 호이 콴 등이 역대 오스카 수상자들과 함께 등장해 후보자 한 명 한 명을 호명했다. 최종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그들 모두가 수상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별은 별을 비출 때 영원히 빛난다.


기억을 울리는 기념식
고(故) 이선균 배우를 추모한 오스카

올해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무대였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아들이 함께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가 시상식장에 울려 퍼졌다. 음악이 흐르는 배경에는 이제 고인이 된 매튜 페리, 라이언 오닐, 류이치 사카모토, 안드레 브라우어 등의 생전 모습이 등장했다. 그리고 故이선균 배우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쳤다. 


스크린 속 이선균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불과 4년 전,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은 기생충의 배우였다. 당시 이선균은 시상식에 직접 참석해 수상의 영광을 함께 누렸다. 중계방송을 진행한 이동진 평론가는 “이선균 씨의 모습을 오스카에서 보니 마음이 무척 무거워진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시상식은 한국의 한 배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쉬운 우리의 시상식
96회 오스카 한국 진행자들. (안현모, 김태훈, 이동진)

한국 영화 시상식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62년 처음 시작되었고, 올해로 62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올해 77주년을 맞는 칸느 영화제보다 16년 늦게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영화 시상식은 전무하다.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건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주체의 문제다. 칸느는 심사위원장이 시상식을 주도하고, 오스카는 9,500명의 회원들이 결정한다. 우리는 언론사가 주체인 경우가 많다. 둘째, 자본의 문제다. 칸느는 공공의 지원을 기반으로, 오스카는 영화인들의 자발적인 회비가 기본이다. 우리는 스폰서십에 크게 의존한다. 셋째, 참여의 문제다. 시상자, 후보자 모두 참석하는 시상식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 외에도 우리 시상식이 아쉬운 점은 많다. 물론 잘하고 있는 분야도 많다. 올해로 27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대한민국 최대의 비경쟁 영화제다. 현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물론 적잖은 논란이 있었지만, 부산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경쟁이냐 비경쟁이냐의 논쟁을 넘어 이제 우리만의 K-시상식을 준비할 때는 아닐까?


나의 아저씨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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